“호랑이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라” 《후한서(後漢書)》〈서역전〉에는 ‘서역삼절삼통(西域三絶三通)’이라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는 후한을 세운 광무제(光武帝, 서기 25~56년) 때부터 안제(安帝, 서기 106~125년) 때까지 약 1백 년에 이르는 동안 서역과 세 번 단절되었다가 세 번 개통된 일을 지칭하는 말이다. 후한 초기에 흉노는 북흉노와 남흉노로 갈라져 서로 상반된 길을 가고 있었다. 대체적으로 남흉노는 후한에 대하여 종속적 관계를 취하였지만, 북흉노는 시시때때로 후한을 공격하여 결과적으로 서역과의 교류를 막는 방해꾼 노릇
6. 기만전술 고구려군 선봉장 연수는 평양성 군사들을 길잡이로 삼아 1만 5천의 병력을 이끌고 수곡성 인근에 이르렀다. 야트막한 산 하나만 넘으면 너른 들판이 나오고, 그 들판 끝에 높다란 성벽의 수곡성이 있었다. 햇빛에 반사되어 더욱 희게 보이는 화강암 성벽 위로 황색 깃발들이 나부끼는 가운데, 공성전투에 대비한 백제 방어군의 기세가 자못 날카로웠다.척후의 보고에 의하면 수곡성을 지키는 백제군은 불과 5천 정도라고 했다. 1만 5천대 5천이면 싸워서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여건이지만, 적이 맞서 싸우지 않고 성 안에서 농성을 한다면
5. 매복 “작전상 수곡성을 비워주겠다니, 말이 되오?”백제 대왕 구는 장군 막고해에게 침착하게 물었다.수곡성 영내에서 대왕 구와 장군 막고해가 탁자 위에 지도를 펼쳐 놓고 머리를 맞댄 채 긴밀히 작전을 짜고 있었다. 밀정 사기가 물러가고 나서 단 둘이 있게 되었을 때, 막고해는 수곡성을 고구려 선봉군에게 비워주자고 말했다. 그러자 대왕 구는 잘못 들은 것으로 착각하고 재차 물었던 것이다. “허허실실의 전법을 쓰자는 것이옵니다. 먼저 비워주고 나서 다시 찾으면 그뿐이옵니다.”막고해 역시 침착했다.“허허실실이라니? 장군! 알아듣게 설
4. 밀정의 정체 패하 북변 언덕 위에 높다랗게 솟아오른 수곡성은 강가의 남쪽 방향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천연의 요새였다. 그리고 동서북 3면으로는 높다랗게 석성을 쌓아올려 제법 웅장한 위용을 자랑했다. 성 양편에 깊은 계곡을 끼고 있는 데다 패하를 뒤로 하여 강변의 언덕을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북쪽으로 열려 있는 너른 들판을 굽어보고 있는 형국이었다. 따라서 성루에서 바라보면 시야가 확 트인 3면의 너른 들판이 한 눈에 들어와 경계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이미 고구려 원정군이 수곡성을 치기 위해 군사를 모으고 있다
3. 전쟁불가론 왕자 이련까지 전투에 참여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고구려 조정에서는 다시 한 번 전쟁불가론이 불거져 나왔다. 이미 보릿고개를 넘어서서 군량미 보급에 큰 지장은 없었으나, 한 달이나 지속되는 가뭄으로 가을걷이할 농작물들이 채 결실을 맺기도 전에 말라죽을 판이었다. 더더구나 출전을 앞두고 연일 맹훈련을 거듭하는 군사들 사이에서도 일사병에 걸려 쓰러지는 자가 속출하고 있었다.편전에는 대신들이 모여 있었고, 국상 명림수부가 대왕 사유 앞에 부복하여 아뢰었다.“폐하! 지금 군사를 일으킬 때가 아닌 줄로 아옵니다. 한 달 이상 계
2. 바람의 순리 동부의 군사 1천을 이끌고 국내성에 당도한 두충은 일단 성의 동문 밖에 군막을 쳤다. 그리고 그곳 들판에서 군사들을 조련시키던 어느 날 밤, 그는 갑옷을 벗고 평복으로 갈아입었다. 그의 옆에는 말구종으로 따라온 사기가 있었다. 사기는 기마부대 소속으로 기마대장 해평의 수하가 되었으나, 그가 스스로 두충에게 찾아와 간절히 이번 출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하는 바람에 그 소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평복으로 옷을 갈아입는 두충을 보고 사기가 물었다.“어디를 가시려고요?”“성내에 좀 다녀올 일이 있다.”“그러면 소
1. 화농성 종기 국내성은 출정을 며칠 앞두고 어떤 미묘한 긴장감과 믿기지 않는 호승심으로 들떠 있었다. 이미 지방의 동서남북 각 부에서 보낸 군사와 말갈족을 합하여 1만, 전국에서 모병하여 훈련시킨 군사와 국내성 중앙군인 경군과 숙위군에서 차출한 병력 1만 5천 등 도합 2만 5천의 병력이었다. 또한 원정 도중 평양성에서 5천의 군사를 차출하여 총 3만의 대군이 출전할 예정이었다. 그 중 전국에서 모병한 장정들은 전쟁 경험이 없어 두려움에 떨었고, 변방을 지키던 군사들과 말갈병은 사기가 충천하여 들뜬 분위기 속에서 출진 명령이 떨
7. 충정 하대곤의 예상대로 국내성 사자가 책성을 다녀갔다. 고구려 변방을 지키는 각 성에도 동시에 사자들이 대왕의 군대 동원령을 가지고 떠났다고 했다. 한 달 안에 가려 뽑은 군사를 국내성으로 보내라는 어명이었다. 군대의 규모는 정해져 있지 않았는데, 이는 각 성에서 어떤 성의를 보이는지 두고 보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하대곤은 고민 끝에 보병 1천의 군사를 보내기로 했다. 기병도 보내고 싶었으나, 그럴 경우 해평을 기마대장으로 삼아야 하는데 보병 전체를 지휘하는 두충까지 두 장수가 빠지게 되면 책성의 공백이 너무 컸다. 그래서
6. 밀사 해는 서산의 등고선 끝자락에 올라앉아 곧 그 너머로 굴러 떨어질 듯 위태로운 자세로 버티고 있었다.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노을빛은 초록의 들판을 검붉은 빛깔로 수놓았고, 그 노을을 등지고 말을 탄 검은 그림자가 책성의 성문 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말의 속도는 결코 느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말 위의 사내가 크게 서두르는 기색도 없어 보였다.주변 산세와 잘 어울려 제법 높다랗게 지붕을 이고 있는 성문은 자못 중량감이 느껴졌다. 좌우로 이어진 석성의 높이는 두세 길은 좋이 되어 보여, 들판 멀리서도 성안이 잘 들여다보이
5. 큰 보물, 작은 보물 책성으로 돌아온 두충은 곧 동부욕살 하대곤과 독대했다.“그래, 서찰은 제대로 전했느냐?”“네, 장군! 대사자 어른께서도 전부터 그런 계획을 갖고 계신 듯했습니다. 별도 인편으로 서찰을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별도로?”하대곤의 오른쪽 눈썹이 치켜져 올라갔다. 상대방의 말에 의심이 들 때면 간혹 그의 표정 속에 나타나는 일종의 버릇 같은 것이었다.“서찰을 받아오려 했으나, 대사자 어른께서 소인을 아직 믿지 못하는 것 같았사옵니다.”“흐음, 딴은 그렇겠군!”하대곤은 굳게 입을 다문 채 실눈을 뜨고 한동안 깊은
4. 거래의 법칙 다음 날 늦은 아침에 두충은 장터 마당으로 나가 전날 초피를 팔아 챙긴 은화를 모두 털어 고급 비단을 샀다. 뒤따라온 사기는 두루마리로 된 원단을 말 위에 실었다.“이걸 어디로 가져가시려는지…?”사기가 은근히 물었다.“넌 알 것 없다. 말이나 끌고 따라오너라.”두충은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었다. 해는 벌써 중천에서 놀고 있었다.왕궁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기와집들이 즐비했다. 그 중 솟을대문이 높다랗게 올려다 보이는 집 앞에 당도한 두충은 기침을 크게 한 번 한 뒤 점잖게 소리쳤다.“이리 오너라!”문을
바이올리니스트 여근하는 클래식 음악 전공자로는 드물게 역사와 음악의 관계성에 관심을 가지고 널리 알리는데 매진하는 연주자다. 서울시 홍보대사로 봉직하면서 음악으로 서울의 방방곡곡을 알리고 소개하는데 일조했으며 생활 곳곳에 클래식의 향기를 심으며 상처와 치유의 메신저로서 귀감이 되고 있다. 한국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깊은 관심은 행동으로까지 이어져 독도에 가서 자신의 편곡한 곡을 연주하는 등 필설로 다할 수 없을 만큼의 왕성한 에너지를 가진 예술인이다. 훈민정음 탑 건립을 위해 각계각층에서 모인 인사들 중에 음악인 바이올리니스트 여근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12월 26일이다. 바로 3년 전인 2018년 12월 26일, 남북철도 연결 착공식이 북한 개성 판문역에서 남북 양측과 중국, 러시아 대표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날이다. 이날을 기념해 코레일에서는 행사를 진행했다. 지난 11월 26일 취임한 나희승 코레일 사장은 이날 행사에 사단법인 평화철도, 사단법인 희망래일,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통일열차 서포터즈, 전국철도노동조합의 대표와 담당자들을 초대해 용산역에서 도라산역까지 동행, 남방한
‘정보’로 부(富)를 창출하는 리더십 처음 장건이 한무제(漢武帝: 재위 기원전 156~141년)의 명을 받고 사신으로 서역을 다녀온 것을 ‘제1차 서역착공(西域鑿空)’이라고 한다. 착공은 ‘아무도 가지 않은 곳을 뚫는다’는 의미다. 가지 않은 길은 뚫으면, 그 길을 통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문명교류’의 시발점이 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장건은 ‘제1차 서역착공’ 이후 다시 무제의 명을 받아 제2차 서역착공을 수행한다. 그는 먼저 제1차 서역착공을 다녀와서 무제에게 자신이 두루 거쳐 온 서역 여러 나라에 대해 보고했다. 그는
1. 초피 장사꾼 말 잔등에 짐을 잔뜩 실은 사내가 국내성 시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초피로 된 벙거지에 짐승가죽으로 옷을 해 입은 그는, 그 차림새만으로도 금세 초피 장사꾼임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말에 싣고 온 짐도 모두 초피였다. 태백산과 개마고원 일대에서 나는 초피는 짐승의 가죽 중에서도 최상품으로 치고 있었다. 초피는 담비가죽으로, 날씨가 추운 북방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았다.시장은 제법 시끌벅적했다. 미천왕 시절 고구려가 요동을 점령했을 때에는 발해만을 통하여 큰 배들이 압록강 중류까지 닿았으므로, 당시엔
5. 애증 하대곤으로부터 친부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해평은 고구려 대왕 사유와 왕자 이련의 얼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가촌에서 처음 대왕을 알현했을 때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었다.그때 분명 대왕 사유는 해평을 보고 낯이 많이 익다고 말했었다. 아마도 대왕은 왕제 무를 쏙 빼어 닮은 해평을 보고 문득 그런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대왕은 해평에게 대부가 되고, 왕자 이련은 사촌동생이 되는 셈이었다.‘너는 고구려의 피를 이어받았다. 장차 고구려를 위해 네 한 몸 바칠 수 있겠느냐?’해평은 동부욕살 하대곤을 만나기 위해
4. 야심 고구려 동부의 본성인 책성으로 돌아온 이후, 동부욕살 하대곤의 심사는 사뭇 뒤틀려 있었다. 종제 하대용이 그렇게 표변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대용은 딸 연화를 왕자 이련과 맺어주고 싶은 욕심을 갖고 있음에 틀림없었다.‘괘씸한 놈!’하대곤은 이를 부드득 갈아붙였다.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대용은 연화의 배필로 해평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정식으로 혼사가 오간 적은 없지만, 하대곤과 구두로 그런 이야기를 나눈 바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해평이나 연화도 어른들 사이에 은연중에 그런 말이 오간 적이 있다는 사실
[이순신 역사평화기행 3] 해남·진도, 명량대첩의 전승지 10월 23일(토) 평화철도는 「이순신 역사평화기행」 1박 2일 일정의 현장 탐방을 진행했다. 1편 통영에 이어 2편 여수 그리고 3편에서 명량대첩의 현장인 해남과 진도의 울돌목을 찾았다. 지난 2편에서 ‘이순신 광장’에 관한 사진 자료 중 몇 가지가 빠져있어 3편 앞부분에 올리고 살펴본 뒤 이어가고자 한다. 이순신 광장에는 벽을 세워 이순신 장군의 업적과 공적을 기리고 있는데, 의병의 활동과 공적들도 함께 기록되어 있다. 또한, 지난 2편의 ‘진남관 유물전시관’에서 유물 관
1. 불안의 씨앗 숲속 별채에서 은은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어디선가 뻐꾸기가 울었다. 아미(蛾眉) 같은 초승달이 소나무 가지 끝에 걸려 있었다. 나무 그늘의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별채의 들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호흡을 안으로 삼켰다.별채는 환하게 황촉불이 켜져 있었고, 그 문 앞에 근위병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봄바람이 소나무 가지를 저울질할 때마다 초승달이 수줍은 듯 얼굴을 갸웃거렸다.잠시 후 별채의 문이 열리며 호롱불을 앞세운 여인이 나타났다. 소나무 그늘에 숨은 사내는 그 걸음걸이를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그는
■ 힌두쿠시를 넘어서리더를 망치는 병, ‘자만과 과욕’ 페르시아를 점령한 이후 알렉산스로스는 점차 동양적 전제군주 통치에 맛을 들였다. 다리우스 3세를 죽인 박트리아 기병대장 베소스가 스스로 페르시아 왕을 칭하자, 알렉산드로스는 휘하 장수 프톨레마이오스를 보내 그를 추격토록 하였다. 그러자 베소스는 박트리아에서 피신해 옥수스강을 건너 소그디아나로 도망쳤으나 결국 추격하던 마케도니아 군대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다리우스 3세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러준 알렉산드로스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생포해온 베소스를 페르시아의 관례에 따라 극형에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