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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광개토태왕] 음모-5

엄광용 전문 기자
  • 입력 2022.01.10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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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꿈
제1부, 광야에 부는 바람
제1권, 흙비 내리는 평양성

5. 큰 보물, 작은 보물

 

책성으로 돌아온 두충은 곧 동부욕살 하대곤과 독대했다.

“그래, 서찰은 제대로 전했느냐?”

“네, 장군! 대사자 어른께서도 전부터 그런 계획을 갖고 계신 듯했습니다. 별도 인편으로 서찰을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별도로?”

하대곤의 오른쪽 눈썹이 치켜져 올라갔다. 상대방의 말에 의심이 들 때면 간혹 그의 표정 속에 나타나는 일종의 버릇 같은 것이었다.

“서찰을 받아오려 했으나, 대사자 어른께서 소인을 아직 믿지 못하는 것 같았사옵니다.”

“흐음, 딴은 그렇겠군!”

하대곤은 굳게 입을 다문 채 실눈을 뜨고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장군! 이번에 국내성에서 큰 보물을 하나 건졌습니다.”

두충은 머릿속에 석정의 얼굴을 떠올리며 하대곤을 주시했다.

“큰 보물?”

하대곤이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현무, 집안 오회분 5호묘(集安五盔墳五號墓) 널방 북벽
현무, 집안 오회분 5호묘(集安五盔墳五號墓) 널방 북벽

 

“초피 판 돈을 모두 투자해 건진 보물이옵니다.”

“허어, 어떤 보물인지 보고 싶군! 설마 국내성에서 데리고 온 그 말먹이꾼은 아니겠지?”

하대곤은 두충을 따라온 사기를 떠올리며 물었다.

“아니옵니다. 그 작자가 작은 보물이 될지 아직은 모르겠사오나, 큰 보물은 국내성에 두고 왔사옵니다.”

“음, 그렇게 투자를 해놓고 국내성에 방치해두면 누가 도둑질해갈 수도 있을 터…….”

“그 점이라면 염려 놓으십시오. 흙 속에 묻힌 진주는 발견한 사람이 임자입니다. 보물이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눈이 어두우면 발견하지 못하는 법이지요. 이번에 국내성에서 찾아낸 보물은 진주임이 분명하나, 아직 흙 속에 묻혀 있으니 보통 사람들은 그저 돌덩이인 줄 알지요.”

두충의 이죽거리는 투가 내심 자신만만하다는 표정이었다. 전에 없던 일이어서 하대곤은 그의 다음 말이 기다려졌다.

“갑갑하구먼. 자네는 스스로 흙 속의 진주를 발견한 눈 밝은 자라고 자부하는 모양인데, 나는 아직 느낌이 안 오는군. 그것이 진주임을 확신할 수 있도록 나를 설득시켜보게나.”

“전진의 부견이 보낸 밀사가 분명하옵니다. 석정이란 중인데, 아직 흙 속에 묻혀 있어서 그렇지 잘 닦아서 공들여 가공하면 큰 보물이 될 것이 틀림없사옵니다. 옥도 가공하기에 따라 보물이 되고 옥새도 될 수 있는 것이 아닐는지요?”

“뭐? 보물이 되고 옥새가 돼? 해괴한 말장난이 아니냐?”

“아니옵니다. 장군! 분명히 석정이란 중은 가공하기에 따라 우리 고구려에 반드시 필요한 중요한 인물이 될 것입니다.”    

두충은 그러면서 석정에게서 들은 대로 그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하대곤에게 털어놓았다.

“국상에게 고급 비단을 바친 것은 잘한 일일세. 석정이란 중이 곧 구부 태자를 만나게 되겠구먼. 지금 대왕은 백제를 치겠다고 전쟁에 광분하고 있으나,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지. 한 발만 더 나가면 낭떠러지인 줄도 모르고 대왕은 백제와의 전쟁을 고집하고 있네. 전쟁은 확실히 적군을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이 설 때 군사를 일으키는 것이야. 서로 군세가 엇비슷하다는 판단이 서더라도 함부로 싸움에 나서면 패할 가능성이 높아. 무엇보다 지금 우리 고구려에 필요한 것은 안정인데, 석정은 그런 면에서 세상을 꿰뚫어보는 눈을 가지고 있는 자임에 틀림없어 보이는군.”

두충이 찾았다는 보물에 대해 하대곤은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옥도 가공하기에 따라 옥새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이명처럼 그의 귓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석정은 소인을 초피 장사꾼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전진의 부견은 국가 기강을 튼튼히 하고 주변 나라를 복속시켜 강력한 군주로 떠올랐습니다. 이미 연나라까지도 정복했으며, 그 다음은 동진입니다. 화북에 이어 강남까지 차지해 중원을 통일한 다음에는 우리 고구려이므로, 지금이야말로 전진과 교린관계를 맺을 절체절명의 순간입니다. 전진은 군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깊이가 있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부강한 나라입니다. 석정을 이용하면 전진과 고구려의 교역을 선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인은 앞으로 아예 장사꾼으로 나서보고 싶사옵니다. 우리 동부는 지금 군사력을 키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재화를 창고 가득 쌓아놓아야 할 때입니다. 군사력은 일차적으로 재력에서 나오는 것, 장군께서 종제이신 하대용 대인을 부러워하는 것도 사실은 그러한 부의 축적이 아니겠사옵니까? 이제 하대용은 우리 동부보다 국내성에 정성을 들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동부 자체적으로 재화를 모을 궁리를 하지 않으며 안 될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두충은 누에가 명주실을 뽑아내듯, 자신의 가슴속에 담고 있던 말들을 술술 풀어냈다.

“허허, 자네 이제 내 호위무사 노릇을 하는데 실증이 난 모양이로군!”

하대곤은 그러나 과히 싫지는 않은 눈빛으로 두충을 바라보았다.

“장군! 소인이 호위무사를 싫다고 한 적은 없사옵니다. 그러나 이제 보다 큰 호위무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장군만을 곁에서 지키는 호위무사가 아니라, 장군을 포함한 우리 동부 전체를 지키는 호위무사가 되고 싶사옵니다.”

“동부 전체를 지킨다?”

“장군!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두충의 거듭되는 요청에 하대곤은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사실상 하대곤은 지금까지 동부의 군사를 기르는 데 있어서 종제인 하대용의 재력에 많이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왕자 이련이 나타나면서부터 하대용의 생각이 바뀌어 동부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말았다.

만약 왕자 이련과 연화가 맺어진다면 하대용의 후원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말 것이었다. 그때부터는 쌓아놓은 재화를 왕실로 실어 나르는데 바쁠 것이기 때문이었다.

“동부 전체를? 자네의 꿈이 고작 그 정도란 말인가?”

하대곤은 짐짓 두충의 심리를 자극해보았다.

순간 두충의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 하고 움직였다. 그는 하대곤이 오래 전부터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드러내 놓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두 사람 다 암묵적으로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사옵니다. 축지법이라 해서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로 건너뛸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반드시 두 발로 땅을 밟고 내를 건너야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옵니다. 동부를 지켜 안정되면, 그 다음에는 우리 고구려 전체를 탄탄한 기반 위에 올려놓아야겠지요.”

“흐음, 국가를 튼튼히 하는 것은 군사력만이 아니라 재력이라 그 말이렷다?”

하대곤은 한참 동안 두충의 얼굴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부국강병책이 다른 것이겠나이까? 먼저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군사력을 강화해야 다른 나라가 감히 얕잡아보지 못할 강국으로 부상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자네는 하대용보다 더 큰 대상이 될 자신이 있는가?”

“하 대인은 스스로 일어선 대상이옵니다. 이는 한계가 있사옵니다. 그러나 소인은 나라와 나라의 물자 교류를 통하여 국가의 재화를 불려나가고자 하옵니다.”

“허허헛! 그만하면 자네 배짱을 알만 하이. 차차 두고 생각해 보세나. 허면 자네가 석정을 큰 보물이라 했는데, 작은 보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저 말먹이꾼은 어떤 자인가?”

하대곤은 두충이 국내성에서 데려온 사기에 대해 묻고 있었다.

“그 자는 장군께서도 알만 한 인물이옵니다. 전에 하가촌 종마장에서 말을 기르던 자이올시다.”

“하가촌에서?”

“재작년 백제와의 전투 때 장군께서 군사를 내지 않자 하 대인께서 말 1백 두를 동부의 명의로 국내성에 보낸 적이 있지 않사옵니까? 그때 저 사기란 놈이 말먹이꾼으로 따라갔었습니다. 전쟁에 지는 바람에 말을 다 잃고 떠돌이 신세가 된 것을 국내성에서 발견해 데리고 온 것이옵니다.”

그러면서 두충은 하대곤에게 국내성에서 사기를 만나게 된 사연을 들려주었다.

“한갓 말먹이꾼에 불과한 놈이 무슨 보물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우리 동부는 하가촌과 소원해져 있사옵니다. 사기란 놈이 말구종으로라도 써달라고 해서 데려오긴 했습니다만, 잘만 다독이면 우리 동부의 기마대를 더욱 강하게 키우는 데 일조케 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하 대인이 말 1백 두를 전쟁터로 보낼 때 놈을 말먹이꾼으로 고용한 것은, 말을 돌보는데 남다른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옵니다. 기마대는 기마병도 중요하지만, 우선 그 말이 건강해야 전쟁터에서 잘 달릴 수 있습니다. 사기는 말을 먹이는 일에서부터 말발굽 가는 일까지 두루두루 꿰뚫고 있는 숙련된 기술을 갖고 있는 자이옵니다. 이는 그 자가 하가촌에 있을 때부터 소인이 눈여겨 보아온 일이옵니다.”

“알겠네. 허면 일단 저 사기란 자를 특별히 잘 살펴보기로 하지. 우리 동부에서는 개마무사를 앞으로 5백 정도 확보해둘 생각이네. 그만큼 좋은 말들이 많이 필요하게 되니, 자네 말대로 사기가 작은 보물쯤은 될 것 같기도 하군.”

하대곤은 빙긋이 웃으며, 손짓으로 두충을 그만 물러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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