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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광개토태왕] 순풍과 역풍-3

엄광용 전문 기자
  • 입력 2022.02.0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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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꿈 제1부
광야에 부는 바람 제1권
흙비 내리는 평양성

3. 전쟁불가론

 

왕자 이련까지 전투에 참여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고구려 조정에서는 다시 한 번 전쟁불가론이 불거져 나왔다. 이미 보릿고개를 넘어서서 군량미 보급에 큰 지장은 없었으나, 한 달이나 지속되는 가뭄으로 가을걷이할 농작물들이 채 결실을 맺기도 전에 말라죽을 판이었다. 더더구나 출전을 앞두고 연일 맹훈련을 거듭하는 군사들 사이에서도 일사병에 걸려 쓰러지는 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편전에는 대신들이 모여 있었고, 국상 명림수부가 대왕 사유 앞에 부복하여 아뢰었다.

“폐하! 지금 군사를 일으킬 때가 아닌 줄로 아옵니다. 한 달 이상 계속되는 가뭄으로 백성들의 가슴이 타들어가고, 민심 또한 흉흉하옵니다. 불볕더위에 지친 군사들도 원성이 높사옵니다. 가만히 있어도 겨드랑이에서 줄줄 땀이 흘러내리는데, 어찌 백잔(百殘: 백제의 비칭)과 싸워 이길 수 있겠나이까? 백잔은 앉아서 우리를 맞이하는 입장이고, 우리 고구려군은 고단한 원정길에 나서는 어려움이 있사옵니다. 찌는 듯한 더위에 원정길의 험난함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고, 전장까지 가는 동안 군사들은 지쳐 적과 싸울 힘조차 없을 것이옵니다. 이때를 기다려 백잔의 군사가 힘을 모아 아군을 들이친다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니, 원정은 가을걷이를 끝낸 다음으로 미루는 게 옳은 줄로 아뢰옵니다.”

“국상! 또 그 소리요? 어찌 같은 소리를 반복하여 입에 담는 것이오. 이미 변방의 군사들까지 동원된 마당에 그들을 다시 돌아가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오. 군사들의 사기 문제도 있고, 국력 소모도 이만저만이 아님을 왜 모르시오?”

대왕 사유는 지극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국상을 노려보았다. 짜증이 끈적끈적하게 땀으로 묻어나는 그 얼굴에선 진노한 표정이 역력했다.

“곧 우기가 닥칠지도 모르옵니다. 우기에 원정을 나가는 것은 군사들을 더욱 지치게 만들 것이옵니다.”

대사자 우신은 국상과 같은 전쟁불가론을 주장하는 핵심 인물이었다.

“그 말 한 번 잘했소. 지금 한 달 동안의 가뭄으로 압록강은 수심이 낮아 군사가 도강하기 딱 알맞은 때요. 우기가 시작되기 전에 강을 건너 수곡성(水谷城: 신계)을 쳐야만 하오. 패하(浿河: 예성강) 또한 물이 줄어들었을 것이니, 수곡성을 되찾고 나서 강을 건너 쫓기는 백잔의 군사들을 추격해 모조리 격퇴시켜야만 하오. 이태 전 수곡성을 빼앗겼을 때의 일을 잊으셨소? 그 분통 터지던 원한을 이제 갚아야 할 때가 왔단 말이오. 태백산에서 베어낸 통나무를 뗏목으로 엮어 띄우고, 그것을 모아 부교까지 만들어놓은 공력을 이제 와서 헛수고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오. 예정대로 이틀 후 출정할 것이니 그리 아시오. 지금 이후 더 이상 전쟁불가론을 거론하는 자가 있다면 이 칼로 엄히 다스릴 것이오.”

대왕 사유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칼 걸이에 걸려 있던 환두대도를 손으로 움켜잡았다. 칼집에서 직접 칼을 빼어들지는 않았지만, 편전 안에는 일순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무도 대왕의 말에 나서는 대신들이 없었다. 편전에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한동안 침묵만 이어졌다.

다시 대왕의 날선 목소리가 편전을 울렸다.

“감히 목숨을 내놓을 자가 있다면 어서 말해보시오. 이 자리에서 곧 처단하겠소.”

대왕의 눈엔 핏발이 서 있었다. 증오심으로 이글이글 불타는 그 눈은 대신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돌아가며 노려보고 있었다.    

편전은 열탕처럼 찌는 더위 속에서 숨 막히는 침묵만 계속되고 있었다.

“예정된 날짜에 출정할 것이오. 그리 알고 돌아들 가시오.”

대왕 사유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조금 누그러진 듯 했으나, 그 결기는 단호했다.

그로부터 이틀 후, 마침내 출전의 날이 밝았다. 7월 초로 접어든 날씨지만 이슬이 내린 새벽에는 더위도 한풀 꺾여 신선한 공기를 맛볼 수 있었다.

새벽부터 동서남북 각 부에서 온 군사들이 국내성 동문 앞으로 집결했다. 국내성 중부 군사들과 급히 모병하여 훈련시킨 병사들, 그리고 말갈족 병사들까지 모두 집합하자 2만 5천의 군사가 대열을 이루어 자못 의기충천해 있었다. 군사들마다 하늘을 향해 치켜든 깃발과 창칼이 새벽공기를 더욱 총기 있게 만들었고, 압록강에서 둑을 타고 슬금슬금 넘어온 안개가 들판을 자욱하게 점령하여 군사의 대열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장엄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 많은 병력이 압록강을 건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출전하기 며칠 전부터 뗏목을 엮어 부교를 만들었는데, 대군이 도강을 하려면 시간도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뗏목이 끊어져 강물에 휩쓸려 내려갈 위험도 있었다. 뗏목 위에서 더위와 싸우고, 때론 물에 빠져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군막 안에서는 대왕 사유가 각각 부대를 이끄는 장수들을 불러 원정에 앞서 작전회의를 열고 있었다. 대왕 옆에 왕자 이련이 서 있었고, 그 맞은편으로는 고구려 서북변 요새인 신성의 성주로 군사 3천을 끌고 온 선봉대장 연수(然遂)를 비롯한 지방 각부의 장수들, 중군의 3군대장군 고계(高稽)와 그의 휘하 장수들, 보급부대를 호위하는 후군의 장군 양정(楊丁) 등이 둘러선 채 그 가운데 탁자 위에 펼쳐진 지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부터 도강 작전에 들어갈 것이오. 문제는 도강 완수 후 어느 방향으로 수곡성까지 대군을 진군시킬 것인가에 있소. 의견들을 말해보시오.”

“일단 압록강을 건너고 나서 평양성까지는 선봉군, 중군, 후군 순으로 이동하면 무난할 것입니다. 그 다음은 각 군이 길을 나누어 수곡성까지 진군토록 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3군대장군 고계가 먼저 지휘봉으로 지도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평양성에는 5천의 군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고구려 남변의 지리에 밝으므로 선봉군에 편입시켜야 할 것이고, 따라서 우리 선봉군은 평양 군사와 함께 가장 빠른 길을 택해 수곡성까지 이동해야 합니다. 지도상으로 보면 평양에서 수안을 거쳐 수곡성으로 빠지는 길이 지름길입니다.”

선봉대장 연수가 말했다.

“그럼 선봉군은 평양성 군사와 합류하여 그들의 길안내를 받아 수곡성으로 진군토록 하시오. 다음 중군은 어느 길을 택할 것이오?”

대왕 사유는 그러면서 중군을 이끌 3군대장군 고계를 바라보았다.

“우리 중군은 평양성에서 일단 황주를 거쳐 재령천을 따라 사리원까지 가고, 거기서 다시 서홍천 동북 천변으로 해서 수곡성에 이르는 길을 택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 길은 약간 우회하는 길이나 천변을 따라 가는 노선이라 진군하기에 편리하므로, 중군의 뒤를 이어 보급부대를 이끄는 후군도 이 길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고계는 그러면서 둘러선 휘하 장수들의 의견을 물었다. 후군을 맡은 장군 양정도 말없이 고개만 주억거리고 있었다. 두 갈래의 원정길은 누가 보더라도 달리 방도가 있을 수 없으므로 장수들 모두 이견(異見)이 나올 리 만무했다. 이는 사전에 대왕 사유와 각 군을 이끄는 세 명의 장군들이 설정해놓은 노선이므로, 이 작전회의는 휘하 장수들에게 길을 인지시키기 위한 의례적인 것에 불과했다.

“선봉군은 지름길을 택해 빠르게 진군하여 먼저 수곡성을 급습하도록 하시오. 백잔들이 방어태세를 미처 갖추기 전에 성을 함락시켜야 하오. 시간을 많이 지체하게 되면 백잔의 원군이 패하를 건너 수곡성으로 입성하게 되기 때문이오. 패하 북변 요새에 자리한 수곡성의 경우 적은 병력으로도 농성이 가능하고, 물의 수급이 어렵지 않아 장기전에 돌입하면 우리 원정군이 도리어 불리하게 될 우려가 있소.”

이 같은 대왕 사유의 말은 2년 전 백제에게 빼앗긴 수곡성을 되찾기 위하여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작전회의가 끝나고 군막을 나오자 자욱하게 끼었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말 위에 높게 올라앉은 대왕은 전열을 가다듬은 군사들을 바라보았다. 금빛 투구와 갑옷이 구름 사이에 비쳐드는 햇살에 반사되어 번쩍거렸다. 바로 그 옆에 왕자 이련이 역시 투구를 쓰고 갑옷을 차려입은 모습으로 자못 위엄을 보이며 서 있었다.

“출진하라!”

대왕은 3군대장군 고계에게 출진 명령을 내렸다.

“출진이다! 대왕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고구려 만세!”

고계가 큰 소리로 외쳤다.

“대왕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고구려 만세!”

2만 5천의 군사가 창과 칼을 하늘 높이 치켜 올리며 고함을 질러댔다. 총칼의 번뜩임이 자못 군기의 날카로움을 느끼게 했다.

도강은 선봉군, 그 다음이 본대인 중군, 보급부대와 경계 병력인 후군 순으로 진행되었다. 고구려군의 선봉에선 개마무사들이 기마대를 이끌고 먼저 뗏목으로 만든 부교를 통해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원정군의 선봉은 기마대를 비롯하여 말갈부대, 지방 4부의 정예군까지 1만이었다. 그 다음은 중군으로 대왕 사유가 이끄는 중앙군과 이번 전투에 처음으로 차출된 농민군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며, 군사는 역시 도합 1만이었다. 그리고 후군은 건초와 군량미를 실은 보급부대와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배치한 병력으로 5천이 그 뒤를 따랐다.

예상했던 대로 도강은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도강하던 중 뗏목으로 만든 부교가 몇 번이나 끊어져 말과 군사가 강물에 빠져 떠내려가는 사태가 속출했고, 그때마다 배를 띄워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인마를 구해내고 끊어진 뗏목을 다시 잇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무사히 2만 5천의 군사가 도강을 다 마치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도강하다 수장당한 군사와 도중에 겁을 먹고 도망친 군사들까지 합하여 기백을 헤아렸다. 특히 급히 차출해 훈련시킨 농민군 중에서는 일부러 뗏목 위에서 강물로 떨어져 죽는 시늉을 하다 헤엄을 쳐 도망치는 경우가 많았다.   

선봉대로 도강을 끝낸 두충은 말구종으로 따라온 사기가 보이지 않자, 처음에는 뗏목이 끊어질 때 강물에 빠져 죽은 줄로 알았다. 그러나 늘 그의 곁에 붙어 있었으므로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렇다면 다른 한 가지 가능성은 전쟁이 벌어지기도 전에 무서워서 도망쳤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충주 고구려비충청북도 충주시(옛 중원군) 중앙탑면 용전리 입석마을에 있는 고구려의 석비. 높이 203㎝. 국보 제205호. 한강 유역이 삼국의 쟁패지였음을 알 수 있다.(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심한 놈이로군!”

그러면서도 두충은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어 자꾸만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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