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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광개토태왕] 순풍과 역풍-5

엄광용 전문 기자
  • 입력 2022.02.1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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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꿈 제1부
광야에 부는 바람 제1권
흙비 내리는 평양성

5. 매복

 

“작전상 수곡성을 비워주겠다니, 말이 되오?”

백제 대왕 구는 장군 막고해에게 침착하게 물었다.

수곡성 영내에서 대왕 구와 장군 막고해가 탁자 위에 지도를 펼쳐 놓고 머리를 맞댄 채 긴밀히 작전을 짜고 있었다. 밀정 사기가 물러가고 나서 단 둘이 있게 되었을 때, 막고해는 수곡성을 고구려 선봉군에게 비워주자고 말했다. 그러자 대왕 구는 잘못 들은 것으로 착각하고 재차 물었던 것이다.

 

악대, 수산리벽화고분(修山里壁畵古墳) 널방 동벽(복원)(사진=동북아역사재단)

 

“허허실실의 전법을 쓰자는 것이옵니다. 먼저 비워주고 나서 다시 찾으면 그뿐이옵니다.”

막고해 역시 침착했다.

“허허실실이라니? 장군! 알아듣게 설명해보시오. 성을 비워주면 다시 찾기가 결코 쉽지 않은 일 아니겠소?”

“폐하! 이번 전쟁에서는 전력적인 측면에서 확실히 우리 백제군이 불리합니다. 고구려 선봉군은 이제 하루나 이틀 후면 이곳 수곡성에 당도하게 됩니다. 평양성에서 차출한 군사들을 길안내로 삼아 지름길로 진군한다는 사기의 말이 옳다면, 그 기세가 자못 장마철의 거친 물살과도 같을 것이옵니다. 더구나 개마무사로 표현되는 고구려의 기마대는 처음부터 질풍노도와도 같이 수곡성을 들이칠 것이 틀림없사옵니다.”

막고해는 여기서 잠시 말을 멈추고 대왕을 쳐다보았다.

“그래서, 그런 고구려 선봉이 무서워 성을 비워주자는 말은 아닐 테고…….”

“손자병법 세편(勢篇)에 보면, 세찬 물은 돌도 뜨게 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바로 기세(氣勢)라고 하는데, 그런 군대에 맞서는 것은 당랑거철(螳螂拒轍)과 같이 어리석은 일이옵니다. 이는 피해야 합니다. 적은 지금 두 갈래로 나누어 진군하고 있는데, 폐하는 군사 1만으로 고구려왕 사유가 이끄는 중군을 치십시오. 이곳 수곡성 서북변의 패하 인근에는 군사를 숨길만한 곳이 많습니다. 그곳에 매복해 있다가 중군이 지나가는 허리를 끊으면 농민군으로 이루어진 오합지졸들을 쉽게 격퇴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런 다음 그 기세로 뒤에 따라오는 후군인 보급부대를 들이쳐 군량과 건초를 불태우면 원정군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물러갈 것이옵니다.”

막고해는 ‘수레바퀴 앞에 버티고 선 사마귀’, 즉 ‘당랑거철’의 고사를 거론하며 대왕 구를 설득시키려고 애썼다.

“그렇다면 장군은 어찌할 셈이오?”

“소장은 군사 5천으로 수곡성을 지키되, 처음에는 적의 선봉을 맞아 나가 싸우는 척하다가 그들을 성안으로 끌어들일 것이옵니다. 그런 연후 성을 비우고 패하로 내려가 미리 대기해놓은 배를 타고 도망치는 작전을 펼치려고 하옵니다.”

“도망을 친다?”

“이를 두고 허허실실이라 하옵니다. 도망치는 척하되, 성내에 고구려 군복을 입힌 우리 군사를 일부 남겨놓겠습니다. 그러다 폐하께서 이끄는 백제군이 적의 중군을 기습할 때를 기다려 성안에 남아 있던 우리 군사들로 하여금 일시에 불을 질러 적의 선봉이 가져온 군량과 건초를 불태우도록 할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적의 기마대와 보병의 기세를 단숨에 꺾어 놓으면, 수적으로 불리한 우리 군은 그 배가 넘는 적군을 충분히 무찌를 수 있습니다. 성안에서 불길이 오르는 것을 신호로 하여 패하를 건너갔던 우리 군이 다시 도강하여 수곡성을 들이치면 고구려 선봉군은 성을 지키기 위해 불을 끄기에 급급한 군대와 폐하가 격퇴하여 수세에 몰린 중군을 구하러 가는 군대로 갈라져 어지럽게 될 것이옵니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군사 조련이 잘 된 1만 5천의 고구려 선봉군이라 하더라도 우리 백제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사옵니다.”

“과연! 막고해 장군의 전술은 신출귀몰하단 소리를 들을 만하오!”

백제 대왕 구는 무릎을 쳤다. 작전상 성을 적에게 내준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대왕 역시 병법에는 일가견을 가지고 있어 지장 막고해의 전략에 손을 들어주었다.

이때부터 수곡성의 백제군은 일사불란하게 군대를 재편성했다. 대왕 구를 따라 고구려 중군이 오는 길목을 지킬 군사 1만과 막고해와 함께 성내에 주둔할 군사 5천으로 나누었다.

그날 밤, 대왕 구는 군사 1만을 이끌고 수곡성을 빠져나왔다. 군사들에게는 발자국 소리까지 죽이도록 엄명을 내렸고, 말들에게도 재갈을 물려 주변 백성들까지도 군대의 이동을 눈치 채지 못하게 했다.

수곡성 서북쪽 10리 남짓한 곳에서 패하는 지류인 서홍천과 연결되고 있었으며, 그 양편으로는 갈대가 우거져 군사를 숨기기에 좋았다. 또한 그 지류를 타고 서홍에서 수곡성으로 이르는 길이 이어져 있어, 고구려 중군과 후군은 반드시 이곳을 통과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물줄기가 에도는 곳에는 절벽이 있고, 절벽과 이어지는 산과 산 사이로 고갯길이 나 있었다. 그 양쪽의 숲속은 전략상 매복 조건에 딱 알맞은 지형이었다. 숲이 울창하고 바위들이 많아 군사를 숨기기에 좋았으며, 그 아래 외통수의 고갯길이 나 있어 적이 통과할 때 공격하기에 최적의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곳에서 매복한다. 여기 고갯길에서 기다리다가 고구려 중군의 허리를 끊어놓는다. 그러면 적은 머리와 꼬리가 따로 놀게 되니, 용빼는 재주가 없는 한 지리멸렬될 것이다. 소라고둥과 북소리로 공격 신호가 울리면 사정없이 적들을 밀어붙여 강물 속에 수장시켜라.”

대왕 구는 휘하 장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또한 적군이 나타날 때까지 은폐와 엄폐를 철저히 하여, 사전에 들길 염려가 없도록 하라고 단단히 일렀다. 수곡성에서 나올 때 군사들에게 이틀 분의 비상식량을 각자 휴대케 했으므로, 일단 매복을 하고 있으면 더 이상 번거롭게 군사를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 장수들이 타고 온 말들도 적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깊은 숲속의 안전한 곳에 숨겨두었다.

다음 날 새벽은 안개가 짙었다. 대왕 구는 휘하 장수들을 불러 고갯길이 난 양쪽 산등성이에 통나무와 바윗돌을 대량으로 준비해 두라고 명했다. 통나무 자른 것이 눈에 띄면 곤란하므로 다른 지역에서 베어오도록 했으며, 산등성이와 강가에서 주워온 바윗돌도 나뭇가지와 잎으로 덮어 육안으로 보아도 적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철저히 주의를 시켰다.

젊은 시절 요서 지역을 개척할 때부터 야전에 익숙해 있던 터라 대왕 구는 쉰을 넘긴 나이지만 체력적으로 큰 무리가 없었다. 오히려 요서경략을 하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남다른 감회에 젖을 수 있었다. 20대의 젊은 시절이었던 당시부터 그는 수하의 군사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여, 잠자리나 먹는 음식이 그들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는 일반 병사들과 똑같이 미숫가루를 이틀 분 준비했고, 매복 지점에서 노숙하는 걸 당연시 여겼다.

“음, 오랜만에 신선한 새벽 공기를 맛보는군!”

장수들에게 제반 작전지시를 하달한 후 대왕 구는 산 능선 위에서 그 아래 패하의 지류를 내려다보았다. 안개에 휩싸여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안개 속에 유장하게 전개되고 있는 또 다른 흐름을 보았다.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과거가 굽이치는 물결처럼 도도한 역사의 이정표로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왕자 시절 구는 부왕인 비류왕(比流王)의 곁을 떠나 요서로 건너갔다. 차남이었던 그는 장남인 형이 있었으므로 장자계승 원칙으로 따지면 부왕의 대를 이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태자인 형이 마음 편하게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자원하여 바다 건너 요서 지역으로 진출했던 것이다.

당시 중원은 서북 변방의 흉노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나라가 갈래갈래 찢겨져 5호16국시대의 혼란스러운 상태여서, 요서 지역을 경영할 만한 여력을 가진 부족이 딱히 없었다. 그들 중 가장 큰 세력은 강남의 동진과 화북의 전진이었는데, 이 두 나라는 장강을 사이에 두고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따라서 공백상태에 있는 요서 지역을 경략하기 위해 왕자 구는 백제 초기부터 산동 지역에 터를 잡고 살던 유민들을 주축으로 삼아 점차 세력을 구축해나갔다.

산동을 중심으로 하여 요서 지역 남북으로 세력을 팽창해간 왕자 구는 백제 유민 중 세력가로 알려진 진씨(眞氏) 가문 출신을 아내로 삼았다. 바로 그 진씨녀의 오빠는 왕자 구와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요서 지역을 경략한 진정(眞淨)이었다.

왕자 구와 진정이 요서 지역을 경략하고 나서 한창 요동 진출을 도모하고 있을 때, 본국인 백제에서 부왕이 훙거(薨去)했다. 이때 장자인 태자가 왕위를 이어야 하는데, 당시 백제의 대신들은 비류왕의 선왕인 분서왕(汾西王)의 장자를 다음 왕으로 추대했다. 예전에 분서왕의 장자가 너무 어려서 비류왕이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에, 당연히 다음 왕계는 분서왕 계열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대신들의 한결 같은 주장이었다.

결국 비류왕과 분서왕 양대 계열의 대신들 사이에 벌어진 세력 다툼에서 비류왕 계열이 패배했다. 따라서 비류왕의 장자인 태자는 분서왕 장자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나서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동생인 왕자 구가 경략한 요서 지역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왕자 구는 태어날 때부터 체구가 우람했으며, 자라나면서 경전을 탐독하여 나이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식견이 높았다. 그래서 충분히 왕자(王者)의 기상을 타고난 인물이란 소리를 들었으나, 위에 형이 있었으므로 형제간에 왕위를 놓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할 수 없다고 하여 그 스스로 바다를 건너 요서 지역으로 갔던 것이다.

태자인 형이 왕위에서 밀려나 요서 지역으로 오자, 왕자 구는 분연히 떨치고 일어섰다. 당연히 부왕인 비류왕이 정한 태자가 있는데, 선왕인 분서왕의 장자가 왕위에 오른 것은 대신들 간의 권력 다툼에서 형이 억울하게 희생된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때 왕자 구는 형 태자에게 요하 지역을 관장케 하고, 처남인 진정과 함께 휘하 군사들을 이끌고 바다를 건넜다. 그런데 당시 백제 왕실에선 대신들이 권력을 잡고 있었으므로, 새로 왕위에 오른 대왕은 그들의 입김에 놀아나는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비류왕 다음으로 왕위를 이어받은 계(契)는 강직하고 용감하며 특히 활을 잘 쏘았다고는 하나, 그때 이미 나이가 들은 데다 지병까지 앓고 있었으므로 나라의 정사를 대신들이 좌지우지했다.

그러다 보니 왕자 구가 요하 지역의 군사들을 이끌고 귀국했다는 소식을 듣자, 대왕 계는 은근히 그들에게 기대를 걸었다. 왕자 구가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는 대신들을 물리치고 왕권을 회복할 수 있게 해주기를 은근히 바랐던 것이다. 그리하여 계왕(契王)은 대신들 몰래 밀사를 왕자 구에게 보내 구원을 요청했다.

왕자 구도 당시의 대왕을 물리치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반역이 되므로, 왕권을 회복하여 국가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명목으로 백제의 대신들과 맞섰다. 백제의 대신들은 그런 왕자 구를 반역으로 몰면서 토벌군을 보냈으나, 요서 지역 경략으로 전쟁 경험이 풍부한 왕자 구의 군사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백제 대신들이 보낸 토벌군을 간단하게 물리치고 한성으로 입성한 왕자 구는 대왕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권력을 휘두른 간신배들을 일거에 처단했다. 그러고 나서 국가 기강을 바로 잡아 왕권을 강화하려고 할 때 지병을 앓던 계왕이 돌연 훙거하고 말았다. 왕위를 계승한 지 3년만의 일이었다.

이렇게 되자 비류왕계의 대신들은 자연스럽게 왕자 구를 다음 왕으로 추대했다. 이때 왕자 구는 요서 지역에 가 있는 태자를 다시 모셔 와야 한다며, 여러 번 자신이 왕위를 잇는 것이 마땅치 않음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신들이 적극적으로 그를 추대했고, 요서 지역에 가 있는 태자인 형도 지병을 핑계로 왕위를 사양했다. 따라서 왕자 구가 계왕의 대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이었다.

새롭게 백제 대왕이 된 구는 요서 지역 경략과 백제의 간신들을 몰아내는 데 공헌한 손위 처남 진정에게 조정좌평(朝定佐平)의 벼슬을 하사했다. 조정좌평은 장형옥사(掌刑獄事)의 직임을 맡아 형옥관계(刑獄關係)의 일을 관장하는 직책이었다.

조정좌평 진정은 대왕 구의 측근이었으므로 백제 6좌평 중에서도 그 세도가 하늘을 찔렀다. 조정좌평을 뺀 나머지 5좌평은 모두 진정의 세도에 밀려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허수아비가 되었다. 원래 성질이 거칠고 어질지 못한 진정은 그와 뜻을 같이하지 않는 대신들에게는 죄를 덮어씌워 엄한 형벌로 다스렸다. 이렇게 되자 대신들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원성도 높았다.

대왕 구는 왕후를 생각해서 웬만하면 진정의 흠은 덮어주려고 했다. 그러나 백성들에게까지 진정의 포악함이 알려지자, 대왕은 결국 그를 요서 지역으로 돌려보냈다. 진정은 요서 지역에 가서도 그 기질을 꺾지 못해 대왕 구의 형과 반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진정은 무수한 전쟁을 겪으면서 뛰어난 전략전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대왕 구는 형에게 요서 지역을 맡기고, 진정에게는 북쪽의 요동 지역 경략에 나서라고 명했다.

이렇게 백제가 진정으로 하여금 요동 경략에 나서게 하자 다급해진 것은 고구려 대왕 사유였다. 그래서 백제의 요동 진출을 봉쇄하기 위해 역으로 백제의 북변을 공략하게 된 것이었다. 바로 그 무렵, 한창 세력을 키워온 전진이 동북방의 연나라를 공략하면서 백제는 더 이상 요동 진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대왕 구의 고민은 고구려보다 전진의 압박에 있었다. 전진의 세력이 더욱 커지게 되면 요동은 물론이거니와 요서 지역도 방관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정보에 의하면 전진은 고구려와 교린관계를 맺으려고 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백제는 동진과 가까워지지 않으면 북방 세력을 견제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동진 역시 전진처럼 동북 지역으로 진출을 꾀하고 있었는데, 그 세력이 점점 더 커지면 요서 지역이 곧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흐음…….”

대왕 구는 숲속에 몸을 숨기고 저 멀리 패하 지류의 물줄기를 바라보며 신음을 깨물었다. 갈대밭을 자욱하게 점령하고 있던 안개가 어느 사이 깨끗이 거치고 아침 햇살이 점점 뜨거운 입김을 불어대고 있었다. 하안(河岸)에서 올라오는 지열과 하늘에서 내리쬐는 태양열 때문에 매복한 백제군은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고갯길 숲속에서 뻐꾸기가 울었다. 그 아래 풀숲에 납작 엎드려 있는 백제 군사들은 언제 고구려 원군이 당도할지 몰라 바짝 긴장에 싸여 있었지만, 여름날 뻐꾸기 소리는 그저 평화로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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