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민중항쟁 이후 '빨갱이'라는 단어가 생겼다이 단어는 온갖 진실과 정의를 덮었다우리 속의 적을 만들어냈다선량한 사람을 적으로 둔갑시키며 갈등을 키웠다인격 말살의 대표 언어로 자리잡았다갈등의 언어들이 마구 생겨나기 시작했다보수와 진보좌와 우극좌와 극우노와 사나의 일과 너의 일아버지와 아들어머니와 딸촛불과 가짜 태극기종북좌파와 수구꼴통세대와 세대남과 여페미니즘과 남성우월주의구세대와 신세대꼰대와 철부지개인과 공동체군부독재와 검찰독재곳곳 구석구석 갈등의 언어들이 춤춘다때로 경계 구분짓기 힘는 언어들까지 가세
2. 전륜성왕 편전에서 물러나왔을 때 석정은 마치 하늘에서 은가루를 뿌리듯 부서져 내리는 햇살을 올려다보았다. 궁궐의 기와지붕 위에 떠 있는 하늘은 쪽빛 바다처럼 푸르렀다. 거기, 바다 위에 떠 있는 흰 돛배처럼 구름 몇 조각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날씨는 평화롭구나!’석정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뇌면서 다른 한편으론 긴 한숨이 터져 나오는 걸 숨길 수가 없었다. ‘과연 평화의 세상은 언제 올 것인가?’너무도 아득하다는 생각이 석정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작금의 고구려는 풍전등화(風前燈火)와도 같았다. 이미 백제에게는 고구려가 허
목소리 나는 당신 말소리만 들어도 행복해집니다.당신 목소리에 새겨진 나를 듣기 때문입니다.내 말을 들어 주면 당신 안에 나의 흔적을 남깁니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각자의 살아온 길을 그 안에 담습니다.그 삶을 나와 함께 했음에 익숙하고그와 함께 했음에 행복합니다. 방금 전친구 목소리를 들었습니다.늘 활기찼고 뿜뿜뿜 했던 녀석의 목소리였는데나를 슬프게 합니다.내가 내는 목소리 안에는 내 영혼이 담김니다. 또 다른 친구가 안부 목소리를 전합니다.제가 한 전화입니다.봄이 오는 물기 어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덩달아 봄기운이 전해집니다. 내
사진은 육사 님의 소년미 있는 모습을 올렸다. 이육사는 1904년 5월 18일(음력 1904년 4월 4일) 경상북도 안동 도산면에서 차남으로 태어나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일본 총영사관 감옥에서 옥사한다.본명은 이원록, 아명은 이원삼이며 형제들과 의열단에 가입한 독립운동가 시인, 평론가, 수필가, 시나리오 작가, 기자이다. 퇴계 이황의 14대손이고 어머니는 의병장 딸이다. 1920년 예안보문의숙에서 한학을 공부했고 대구 교남 학교를 나와 조선혁명군사정치 간부학교를 다녔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대구형무소 수형 번
1. 낙타풀 수곡성 전투에서 백제군에게 패하고 국내성으로 돌아온 고구려 대왕 사유의 심사는 매우 복잡했다. 두 번이나 백제에게 패하다니, 그런 수모가 없었다. 그는 스스로 욕심이 지나쳤다고 생각했다.이번 전투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3만 병력 중 전사자가 3천을 헤아렸고, 백제군에게 포로가 된 고구려 병사도 그와 버금갈 정도였다. 더더구나 농민들 중 차출한 병력의 반 이상은 도망쳐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졌다. 그래서 회군할 때의 고구려군은 겨우 절반에 불과했다.대왕은 오래도록 울분을 삭일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과
恨 어디에도 없는데 여기만 있다 하여 苦悶을 해 봤습니다. 恨은 記憶입니다.記憶 중에도 가슴 部分에 머무는 記憶입니다.잊으려 해도 잊혀질 수 없는... 恨은 情입니다.時間에 正比例하는 것은 아닙디다.나와 네가 같은 空間에서 숨 쉬고 숨 나눈 일들에 대한그리움이 쌓인... 恨은 背信입니다.말없이 곁이 있어 준 時間의 바퀴를 한 瞬間에 거꾸로 돌려 놓는 者에 대해 怨望하는... 恨은 終局에는 사랑입디다.어쩔 수 없이 괴로워하다스스로의 괴로움에 가위 눌려꿈에서도 비지땀을 흘리다가나를 위해 너를容恕하는... 사랑입디다. 그 지겨운...
봄은 왔으나 봄같지 않은 시간이 너무 길다방향 잃은 찬바람 산기슭 맴돌고동굴 속에 매달린 고드름 아직도 녹지 못한다발을 동동 구르며 촛불을 밝히던 그 겨울 추운 밤이어두운 곳에서 속으로 속으로 엉겨붙어 꽁꽁 얼어붙는 것일까그래도 봄인데 고드름들 눈물방울 뚝뚝 흘리고내용은 이겼으나 형식으로 진 패배의 나날이 지나간다졌다고 인정해야하는 현실이 억울하고 서럽다잠들지 못하는 봄 밤 우울이 깊어지고봄이 오지 않은 봄길 걷는 나그네 발길 철없이 시리다상식과 자연을 거부하는 시간이 갈수록 거칠어지고메마른 가슴마다에는 고드름만
그녀의 뜰에 핀 무궁화는 / 김주선 고등학교 졸업식도 못 치르고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 간 친구가 있다. 곱슬머리에 주근깨가 많고 사리에 밝은 영민한 친구였다. 오 년 전이었을까. 집 근처 농장에서 무궁화(Rose of Sharon) 묘목을 샀다며 현관 출입구 왼쪽 화단에 심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 잘 자랄지 걱정을 하더니 해마다 꽃나무의 성장기를 알려왔다. 작년 여름에는 백송이 넘게 피었다며 분홍색으로 활짝 핀 무궁화꽃 소식을 전했다. 한국에서 자라는 것처럼 나무가 크진 않지만, 근성이 있는 꽃나무라 낯가리지 않고 잘 자라
8. 삶과 죽음 사이 수곡성 앞 너른 들판에서는 백제군과 고구려군의 공방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백제의 복병이 고구려 중군을 추격하여 수곡성 앞까지 왔을 때, 성안에 있던 고구려 선봉대장 연수는 급히 군사를 끌고 중군을 돕기 위해 출전했다.이렇게 되자 백제군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는데, 수곡성 안에서 느닷없이 불길을 치솟자 고구려군은 적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길이 솟는 것을 신호로 성 밖의 동편과 서편에 숨어 있던 백제군들이 동시에 수곡성을 들이쳤던 것이다. 성 안에 머물고 있던 백제 잔류 병력이 불을 지르고 성문을
수필과 프레임 인생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다른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인생에 대해 갖고 있는 비유가 다른 경우가 많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프레임이라고 한다. 프레임은 삶을 바라보는 고정관념이 이거나, 사건을 해석하는 가정이나 전제, 경험의 순서 등 개인에게 내재된 삶에 대한 틀이기도하다. 수필에서 프레임은 삶의 애매함 너머 숨어있는 진실을 찾아 내는 방식으로 작가의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세계관이 보편적 감동을 일으킬 때 깊은 감명을 주게 된다. 프레임에 삶에 대한 목적의식이나 방향, 근원적 질문이 들어갈수록 작가의 세계관은
풀꽃 1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Grass flower 1See closely;prettySee longly;lovelySo are you.화이트데이다. 사탕처럼 달콤한 나태주 시인의 시를 필자가 영번역했다. ; 세미콜론을 사용하면 시 영번역이 간결해진다. and, or, then, but 의미로 여기선 , and 그러면이나 then 그때, 그러면의 의미다.s 두운과 y각운을 맞춰 시적으로 표현했고 원문 순서를 살렸다. 어느 번역에서는 예쁘다 자세히 보면 이런 식으로 순서를 바꾸는데 원 시
7. 패전의 쓰라림 찌는 듯한 7월의 불볕더위는 진군하는 병사들의 걸음을 마냥 더디게 했다. 서홍천의 둑은 진흙이 말라 쩍쩍 갈라진 상태였고, 고구려 중군의 행렬이 지나가는 길도 먼지로 자욱했다. 폭우가 내릴 때 서홍천이 범람하면서 쌓인 진흙이라, 군사들이 진군하면서 일으킨 미세 먼지들이 구름처럼 자욱하게 일어났다.군사들은 옷이며 얼굴까지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써서 마치 일부러 진흙을 칠해 굳어진 것처럼 보였다. 줄기차게 땀이 흘러내리는 데다 먼지가 뒤엉켜, 도무지 누가 누군지 얼굴조차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걸어가는 군사들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