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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지『한국산문』2022.4 작가월평 -수필과 프레임

김주선 작가, 전문기자
  • 입력 2022.03.16 13:42
  • 수정 2023.09.1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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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아 작가의 월평- 수필과 프레임 (김주선 작가의 「엄마의 무두질」)

월간 문예지 『한국산문』 2022.4월호에 조진아 작가의 월평이 실렸다.
월평은 2022.1월 격월간지『 에세이스트』에 발표한 김주선 작가의 「엄마의 무두질」이다.

수필과 프레임

 인생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다른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인생에 대해 갖고 있는 비유가 다른 경우가 많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프레임이라고 한다. 프레임은 삶을 바라보는 고정관념이 이거나, 사건을 해석하는 가정이나 전제, 경험의 순서 등 개인에게 내재된 삶에 대한 틀이기도하다. 수필에서 프레임은 삶의 애매함 너머 숨어있는 진실을 찾아 내는 방식으로 작가의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세계관이 보편적 감동을 일으킬 때 깊은 감명을 주게 된다. 프레임에 삶에 대한 목적의식이나 방향, 근원적 질문이 들어갈수록 작가의 세계관은 넓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에세이스트 1,2월호에서는 자신만의 프레임을 제목으로 사용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배혜금의 <원점>과 허문홍의 <잿빛사랑> 김인숙의 <서리> 백남경의 <까치밥> 등이다. <원점>은 인생의 모진 풍파를 계속해서 헤쳐나가지만 계속해서 몰려오는 어려움을 묵묵히 견디고 원점처럼 또다시 고난이 찾아오는 사람에대한 이야기이고, <잿빛사랑>은 계속되는 오해와 어긋남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성인이 되어 과거 아버지의 묵묵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내용이며, <서리>는 인생의 고난을 서리라고 재정의 했으며, <까치밥>은 자신을 위해 마지막 통장을 건네는 어머니를 까치밥이라는 은유로 변주하여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이중 가장 감동적인 작품은 김주선 작가의 <엄마의 무두질>이다. 엄마의 무두질은 어머니의 아픈 인생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무두질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다룬 작품이다. 가난한 살림에 아이들에게 따뜻한 귀마개를 해주기 위해 어머니는 도축장 옆 가죽 염장집에 가서 무두질을 배우신다. 하지만 무두질은 만만치 않고 많은 실패를 하시게 된다. 아무리 따뜻한 귀마개를 해 주고 싶은 거였다고는 해도 왜 어머니는 낯선 무두질에 몰두하셨을까? 라는 궁금증이 들 무렵 이야기에 혼자 집에 두었던 아기를 사고로 잃고 만 어머니의 인생 무두질이 오버랩된다.

작가약력

혼자 집에 있던 아기가 사고로 죽은 것이다. 뱃속에 돌이 찼다던가 장이 꼬였다던가... 겁에 질린 오빠 걱정에 엄마는 울지도 못하고 가슴에 돌무덤을 만들었다. 젖도 못 먹고 죽은 아기가 생각나는지 비라도 오는 날엔 젖몸살이 느껴진다며 아파했다. 가슴만 남은 쪼그라든 젖가슴을 따뜻한 물수건으로 문지르고 주먹으로 두드리던 모습이 엄마의 무두질은 아니었을까.

실제 가죽에 행하던 무두질과 아이를 잃은 죄책감과 땅문서를 들고 집은 나간 오빠에 대한 울화통으로 평생 자신의 가슴에 행하는 어머니의 무두질은 하나로 합쳐진다.

역겨운 냄새가 나는 물건을 말갛게 헹구듯이 엄마 마음도 깨끗하게 헹궈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두질하는 날엔 엄마의 속 섞는 냄새도 우물에서 나는 듯했다. 시골 아낙의 일탈은 손바닥만한 가죽 한 장도 못 만져보고 끝이 났지만, 어쩌면 무두질을 핑계로 무너지는 억장을 추스를 심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속 썩이는 자식놈들 두들겨 팰 수는 없고 자신의 복장뼈가 으스러지도록 두드리던 엄마의 가슴만은 부드러운 가죽 북이 되었으려나, 젖몸살을 앓던 마음자리엔 잔잔한 주름 무늬가 아롱아롱 새겨졌으리라.

평생 자신을 무두질을 하고 살던 어머니. 그래서 어머니의 삶은 그래서 비참했을까? 그렇지는 않다. 어머니의 무두질은 가슴 아프지만 가슴 아픈 만큼 그것을 지켜보는 자식에게 어머니의 가슴앓이 사랑은 더욱더 숭고해 보이는 것이다.

 

조진아 (sweetres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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