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함 나라를 잃었을 때 그 시대를 살아 가신 어른들은 얼마나 답답하셨을까?살벌한 고등계 형사와 일본 순사, 검찰 밑에서 더 악랄하게 동포를 괴롭히던 앞잡이 놈들 '그대가 조국' 영화를 봤다.내내 갑갑함과 분노 속에서 두 시간이 흘렀다.종영 후 아무도 말이 없었다.아무 말없음은 무수히 많은 말들의 표현이다. 침묵은 동조가 아님을, 순종이 아님을...끝없는 자기 부정과 자기 성찰임을...이 답답함은 마그마가 지표를 뚫고 나오려는 순간임을... 해방 이후 근 8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노덕술은 여전히 존재하며왜놈 밑에서 배운 조작질은 여
2021년 김수영(1921-1968) 시인 탄생 백 주년을 기념하여 백낙청, 염무웅 등 문학평론가와 연구자, 시인, 작가 등 학술문화예술인들이 기획한 추념 도서가 2022년 6월 출간됐다. 시대의 양심이며 살아있는 지성의 거목인 김수영 시인의 100년 발자취를 추적하고 정리하는 이 책은 오늘의 시대에 시인 김수영의 의미와 위상이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성찰하도록 돕는다.『애타도록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도화)는 총 4부로 구성되었다.1부는 원로 문학평론가 백낙청, 염무웅과의 대담을 실어 “김수영이 한국 현대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
오늘은 단오다. 음력 5월 5일. 창포로 머리 감는 날이다. 이젠 아무도 창포로 머리 감지 않는다. 창포 샴푸면 몰라도. 서거정 시에서 창포가 들어간 7언 절구 시를 골랐다. 한글과 영어 필자가 다 번역했으며 시의 간결성을 위해 관사나 조사를 거의 생략했다.복수보다 단수를 좋아해서 단수 위주로 했다. 붓 잡고 시 쓰는 순간은 하나의 시를 쓰니 즉사의 의미도 연관된다.즉사는 바로 눈 앞에 벌어진 일을 말한다. 가을날 보여진 모습을 그린다. 술 먹은 포도라고 번역한 사람도 있지만 술이 된 거니 술 빚은 게 맞다. 와인은 서양 포도주니
너그러움 모기 한 마리가 온 밤을 성가시게 합니다.조금은 너그럽게 대하면 내가 편안할텐데... 다짐을 했습니다.여름엔 모기랑 더위에 너그러워지기로...고까짓 작은 녀석에게 시달리고고까짓 더위에 힘들어하며 살아가는 내가 초라해 보입니다. 겨울에는 추위에 너그러워지려 합니다.봄엘랑 사랑에 너그러워질 겁니다.가을에는 온갖 풍성함에그리고 보름달처럼 환한 사람들에게 너그러워지려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내려 놓음입니다.이제내가 나에게 너그러워지며 살아가렵니다. 이 밤 모두 안녕히 주무세요.
언저리 산유회를 가다 그저산 언저리에서 그저시의 언저리에서 그저삶의 언저리에서 그저술청 언저리에서 저 황혼의 초췌에 비칠거리는 영혼끈적한 눈길 옛날걔네들 아직도그대로네 망가질 듯오오냐, 망가지지 않는다 시작 메모우리는 모든 중심과 중앙 패권 거절했다. 권위 부 저잘남 안위 지성 사색 따위 다 거절했다. 외모 따위 거절했다. 다들 존만했다. 문학이고 사랑이고 시대고 언저리를 맴돌았다. 실패하고 찢어지고 갈라지고 채이고 밤마다 절망에 절어서 깔창을 몇 장씩 날리곤 마침내 연못시장 보은 연지 새집 호텔들에 떼거지로 망가졌다. 새처럼 깃들
못 볼 뻔했다. 안 그래도 하루가 머다하고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 다른 연주회들 때문에 예당에 출근하다시피 하고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어 보상심리일지 아니면 이게 3년 전 봄의 당연했던 우리 일상이었는지 어딜 가나 인산인해를 이루는 마당에, 더군다나 요즘같이 야외 활동과 여가를 즐기기에 최적의 날씨를 보이는 와중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이고 표를 구하기 힘들 거라는 걸 예상 못 하고 안이했다. 아차! 이제 코리안심포니가 아니지... 어엿한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라 정기연주회니 그럴 수밖에 없지
인생수업료 / 김주선 죽고 싶지만 죽을 수 없는 운명의 도깨비와 기억상실증 저승사자가 매력을 뚝뚝 흘리며 TV 화면을 가득 채웠던 2017년 봄, 금요일이었다. 그날 밤, 큰아들은 늦은 귀가를 했다. 나는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재방송 드라마 《도깨비》를 몰아보던 중이었고, 남편은 맥주 안주로 북어포 살을 발라내던 중이었다. 서울북부지방법원의 소인이 찍힌 봉투 하나가 아들의 안주머니에서 툭, 떨어질 때 내 심장도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입대 날짜를 받아놓고 마음을 잡지 못해 방황할 무렵, 아들은 아프리카TV에서 진행하는 ‘여자도
싸가지 신랑 /김 주 선 더위가 한풀 꺾였는지 꿀잠을 잤다. 잠결에 홑껍데기 이불을 끌어다 덮을 정도로 제법 선선했다. 주말인데도 남편은 출장을 가는지 새벽부터 커피 텀블러에 얼음 채우는 소리가 들렸다. 요깃거리라도 챙겨줄까 하다가 모르는 척했다.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우리는 맞벌이 부부고 그이가 아내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는 배려로 티스푼 젓는 동작 하나도 살살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를 ‘싸가지 신랑’이라고 휴대전화에 저장한 지도 십 오륙 년이 넘었다. 그 사람 휴대전화에 나는 ‘집사람’으로 뜨는데 말이다. 언젠가 남편에게
노트- NO. 3 / 김주선 그동안 강산이 변해도 네 번은 변했을 텐데, 기억도 가뭇한 노트가 택배로 왔다. 좀 벌레가 오줌을 지린 듯 얼룩이 많은 사륙배판 크기의 대학 노트였다. 나의 청춘에 묻은 얼룩인 양 창피해서 얼른 감추었다. 그리고 두어 달이 지났을까. 모처럼 마음먹고 책상에 앉아 자물쇠가 걸린 일기장을 열듯 내 청춘 노트를 다시 펼쳤다. 서러운 장구 소리 / 육신의 뼈마디가 결리는 / 애달픈 몸짓 // 피의 아픔이 터져 / 넋 잃은 수천 개의 눈동자가 / 집시의 얼굴을 뒤진다 // 타오르는 젊음의 / 흩어진 머리채 //
槐陰晝枕 老槐偃蹇如虯龍綠陰滿地涵淸風 珠箔錦幕深復深淸晝睡味如粥濃 又 一夢賭得南柯天南柯日月無中邊 枕上片時百年樂不必羽化登神仙 회화나무 그늘에서 낮잠 늙은 회화나무 뿌리 용과 같아녹음 가득 땅 맑은 바람 스민다구슬발 장막같이 깊고 또 깊어낮잠 죽처럼 달다이에꿈속 남가국 가니남가국 시간은 중간도 끝도 없네베개머리 한 때 백년 즐거움이니날개 단 신선 비할 데 없다 Nap under sophora shade Old sophora root is like horn dragon;clear wind permeates into ground full of
상실, 허전함 상실무언가를 잃어버린 상태함께 했던 소중한 인연이랑 헤어졌을 때가족, 연인, 친구, 반려동물 등 원했던, 원치 않았던 그들과의 헤어짐은 상실입니다.그들과 따뜻함을 공유하다 갑자기 그 따뜻함이 멀어집니다.내 마음의 온도는 혼자 견디기에는 춥습니다. 허전함채워졌던 공간이 빈 상태빈 공간에 나만 덩그마니 남아 있는마음의 허기를 음식으로 채우려는 무모함 마음의 공간은 생각보다 넓습니다.공간에 함께한 이들의 흔적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습니다.어려운 일이지만 시간으로 치유하며 인정해야 합니다. 상실, 허전함을 받아들이는 5단계부정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 연예인과 유명인들이 자기만의 공간을 찾아서 해방의 시간을 즐기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그들은 가족과 잠시 떨어져 오직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데, 전직 농구선수 허재 감독이 피아노 학원을 방문해서 피아노를 배우는 모습이 소개된 적이 있다.어린아이들 옆에 커다란 50대의 남자가 앉아 음악 공책에 음표를 그리고 악보 읽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드디어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는 건반에 꽉 차는 커다란 손가락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한 음 한 음 건반을 눌렀다. 서툴고 거칠지만 그가 누르는 건반들이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