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촌 윤 한 로산 호랑이 같은 가난,허물어진 굴뚝자리 곁말발굽을 엎어놓았다여름 이엉 썩는 빈 집삐뚜딱한 돌절구 아가리 깊숙이 실낱 거미줄 치고말라비틀어진 쥐똥 몇 알서껀고작 오가리 한 장 매달았을 뿐별 묘리 없어라미욱하니 마소 구융으로나 쓸 밖에진종일 영감타구 혼자 끙끙 앓는책상물림 다산의 적성촌숭의전 붉은 벼랑 쓸고 가는 강물 소리만 배불러 터지누나시작 메모다산 정약용의 연천 ‘적성촌’ 집들은 북풍에 이엉이 걷혀 서까래만 앙상하다. 묵은 재에 눈이 덮여 부엌은 차디차고 쳇눈처럼 뚫린 벽엔 별빛이 비쳐 든다. 집 안 곡식이라곤 개
리얼 스토리(real story) 윤 한 로아파트 주차장 여중생 성추행범이 잡혔다범인은 땅딸막한 사십대 일용노동자로 처자식도 다 거느린 사내였다 해거름쯤 평소와 같이 연장 가방을 챙겨들고그 일 벌써 새까맣게 잊었겠구나뒷주머니에 스포츠 신문 한 장 쿡 찔러 넣고 웬일로 좀 일찍 들어온다 싶더니 붙잡혔다, 오든마튼번짐 처리 얼굴에서 꼭 애 것도 같고 고양이 것도 같고 어찌 보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변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어어, 당신들 도대체 뭐야 하며둬 번 딱 잡아떼다간 갑자기 꼬리를 내린다무슨 생각을 했는지? 죄송하다며, 자기가
이리하여 문화체육계의 주요 인사 배삼지 국장이, 집으로 가다 말고 들른 동네어귀의 ‘수상한 카페’에서 마담 ‘살찐 뱀’과 함께 한, 꿈결 같고 거짓말 같고 금쪽같은 두어 시간이 지나고, 만나면 헤어지는 인간사의 섭리에 따라, 두 사람은 사랑의 증표 대신 계산서와 카드 영수증을 주고받으며 가슴 아픈 이별의 장면을 펼쳐 보이고 있었다. 함께 한 시간이여! 함께 했던 이 자리여! 가슴과 가슴이, 눈빛과 눈빛이, 굵은 허벅지와 빈약한 허벅지가, 만나고 교환하며 은밀히 부딪쳤던 열락의 시공간이여! 배삼지 국장은 초혼을 부르짖는 김소월처럼 자
한 자리에 앉은 남녀가 헤어질 땐 이별의 아픔이 밀려오는 법이었다. 여기가 대동강 부벽루는 아니지만, 눈앞에 강이 흘러 눈물을 보탤 수는 없지만, ‘수상한 카페’라고 남녀가 동석하는 무대가 있고, 위장으로 흘러드는 술이 있어 눈물보다 뜨거운 욕망이 솟구치니 남녀의 이별은 언제 어디서나 가슴을 울린다 하겠다. 특히 만지면 느낌이 바로 오고 만지지 않아도 느낌이 시나브로 오고 있는 마담 ‘살찐 뱀’을 현장에 두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배삼지 국장의 가슴은 크게 쓰라렸다. 쓰라렸다기보다 아려왔다. 왜 우리는 만난 지 두어 시간 만에 헤어
토빗 윤 한 로나 토빗은낯설고 먼 아시리아 니네베에 안나와 아들 토비야와 많은 동포들과 함께 포로로 끌려왔다 그러나 나 토빗은 한평생 선을 베풀고 의를 행했다늘 조심하여 이민족의 음식을 먹지 않았고고아와 과부들을 돌보았다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으며헐벗은 사람들에겐 입을 것을 주었다억울하게 죽어 성 밖에 던져진 동포들의 주검을 보면 남몰래 묻어주었다온 마음과 온 힘을 다 해 죽음을 무릅쓰고 진리를 따랐다 애오라지 선만을 바라 뚜욱 하니, 올곧던 토빗높은 자리에서 떨려나 쫓기는 몸이 되었건만비록 가난에 지치고 늙어 힘마저 빠졌
소공원 윤 한 로*어데서 물쿤개비린내가 온다노을에 탄 고동색 얼굴 쨀쭘한 눈 벤치에 구겨져 자꾸만 무신 새끼란다종이컵 소주 커피 게우, 한 모금 손에 들곤*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 : 백석 시 ‘비’에 나오는 구절시작 메모시인들이 좋아하는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 백석 시인이다. 나도 그렇다. 그런데 백석 시인 시 가운데서는 좋아한다는 시는 거의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이다. 뭐, ‘어느 사이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하는 아주 긴 시다. 허나 난 ’아카시아들이 언제 흰 두레방석을 깔았나 / 어데서
수상한 카페의 마담 ‘살찐 뱀’이 21만8천원이 기재된 계산서를 대령하자 배삼지 국장은 카드를 뽑더니 11만8천원만 결재하라고 주문하였다. 이게 무슨 말인가? 팁 30만 원을 줬다고 그새 아까워서 술값을 반으로 후려치나? 살찐 뱀은 곧 자신의 방정맞은 판단을 회개하였다. 사내가 현금 10만원을 따로 건네 왔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카드는? 살펴본바 법인 카드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카드결제는 법인에 제출하는 영수증 처리와 관련이 있다는 게 영업점을 운영하고 있는 마담의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이 빈약해 보이는 40대 남자는
갑을 여인숙 윤 한 로시 쓰는 △△△, ○○○이 술만 먹으면 아아, 개가 되어 들던 곳여자들 다 도망가고가방도 시계도 몽땅 잽히고이른 아침 언제나 나만 홀로 눈떴다하릴없이 하릴없이 쳐다보는 쥐오줌 얼룩과떠블류엑스와이 그딴 냄새불현듯 큰 머리 하나 일어벌컥벌컥 물 마셨지원효 해골처럼엉망진창 팔다리 조용, 단순 춤추던 방 시작 메모시 쓰는 사람들. 조심해야 한다. 철물점 주인 아저씨처럼 착하다가도 술만 먹으면 난폭해진다. 어느새 소주잔을 아그작아그작 씹으며 여자들한테 욕을 하고, 술판을 쓸어버리고, 아무 화단에나, 차에나 오줌을 누고,
배삼지 국장이 수상한 카페의 마담 ‘살찐 뱀’에게 내린 30만 원이 한 여인과 여인이 꾸려가는 가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우리는 지난주에 좀 살펴보았다. 살찐 뱀의 가정을 이루고 있는, 고 3아들과 중3 딸과 이제 겨우 나이 60인 할머니가 살찐 뱀이 30만 원을 챙긴 사실을 알면 바로 환호를 하였겠지만 그들은 그런 건 모르고 세계 각국의 수영복 미녀가 줄지어 나타나도록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이 야밤에 이 드레스 꺼내 입었다 저 청바지 꺼내 입었다 하며 뒤태를 보거나, 몸빼 차림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드라마가 나오는 18인치 컬러
이슬비 윤 한 로개똥갈이 밭 두럭부슬부슬 비 내리네 아주까리 피마자 잎사귀에도양은 종재기에도여름 오늬라, 새파란 고초 밭 평생 땅강아지솔 수퐁 속꺼꺽푸드데기 날아오르네시작 메모어머니는 학력이 없으시다. 물어보면 옛날 소학교 4학년까지 다니다 말았다고 얼버무렸다. 아주까리 밭 두럭에 앉아 베보자기 밥 한술 뜨는 둥 마는 둥, 고무신 흙 똘똘 털며 다시금 호미를 잡으셨다. 평생을 흙 속 땅강아지로 살며 고추니, 무니, 깨니, 곡석들 자식 보듬듯 키우며 사셨다. 흙 알갱이에 닳아터진 손으로 ‘새파라니 잘 살기여, 잘 크기여’ 한 줌 또
수상한 카페의 마력적인 마담 ‘살찐 뱀’이 이제 겨우 환갑이 된 어머니와 고 3 사내놈과 중3 계집애와 반전세집에서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이 지난주에 밝혀졌다. 고 3이 집안에 하나 있다면, 사내건 여자아이건 그 놈은 완전히 집 안의 공기를 바꿔놓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또는 동네 학원에서 고액 비밀과외까지 돈이란 돈은 있는 대로 빨아들이는 흡혈귀이자, 때로는 기울어가는 집 안의 희망으로 앞날에 뭐가 될지 모르는 꿈나무로 벌써부터 그 존재감이 두드러져 보이는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중3으로 말하자면, 될
수상한 카페의 마담 ‘살찐 뱀’은 문화체육계의 주요 인사인 배삼지 국장으로부터 옷값 명목으로 30만 원을 받아 챙겼다. 옆에 붙어 앉아 마력과 같은 살내음을 풍기고 몇 차례 허벅지를 밀착시킨 대가치곤 적다 할 수 없는 돈이었다. 이에 살찐 뱀은 먹먹해진 가슴으로 배삼지를 응시하며 그의 손을 만지작거리니, 배삼지는 배삼지 대로 올바른 행위를 했을 때의 뿌듯함과 밝은 앞날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배 국장은 문화체육계의 인사답게 문화와 체육, 즉 정신과 육체, 인간을 구성하는 주요 양대 요소 중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공일 윤 한 로사슬이 뚝 끊어진다대롱대롱 베란다 빨랫줄 끝 맑은 물방울 깨진 타이루 위로 공일날 햇살 쏟아지곤웬 새들 불나게 시끄럽다, 그것들 후박나무 가지 속에 염치불문 교미하는 것이리라구름 한 점 없이 말간 영동 하늘 또 다시 시작되는 푸진 잔소리멸치처럼 잔뜩 꼬부린다시작 메모발끝이 드러나도록 홑이불을 뒤집어쓴다. 아령, 화초, 사슴대가리, 보행기, 약탕기 이런 차마 빼내지 못하는 베란다 풍경들이 펼쳐진다. 빨랫줄 끝에 맺힌 맑은 물방울 몇 압권이로다. 똑똑 듣는 그 물방울들이야말로 햇살을 쏟아지게 하고, 여자들 잔소리를 더 푸
배삼지 국장이 수상한 카페의 마담 살찐 뱀에게 ‘옷이나 한 벌 사 입으라며’ 악어가죽에서 꺼내 든 5만 원 권 지폐는 도합 여섯 장이었다. 그러니까 술값 외에 가외로 내놓은 돈인데, 살찐 뱀은 감격한 가운데서도 “정말 옷 사 입으라고 주시는 거에요?”하고 반문해 봐야했다. 왜냐하면 ‘수상한 카페’를 연 지 3년 간, 5만 원이나 3만 원 내놓은 인간이 몇 있었고 상품권 10만 원짜리 내놓은 인간이 딱 하나 있었던 것이다. 현금 10만 원 이상을 그것도 옷이나 사 입으라고 내놓은 인간은 지금 바로 옆에 앉아있는, 몸매가 빈약한 이 중
강촌 윤 한 로 살풋 잠을 깬다새파란 하늘 아래겹겹 봉우리들저래, 많은 아부지 코들생각에 생각으로 잠자코, 펄럭거리는큰 코들끝 떨어져 나가다시는 주워오지 못하는문둥이 마늘씨 코들사이를 내며끈처럼 긴 강물 흐르네시작 메모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어데 가면서 겹겹 산 봉우리를 볼 때마다 그 모습에 머리를 헹구며 쭉 생각해 왔다. 소나 낙타, 보리쌀자루, 울퉁불퉁한 어머니 배, 젖, 맑은 눈, 이마 따위로. 그런데 이번 야외백일장을 하러 강촌에 가는데 불쑥 그게 코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무 것도 아닌데 비로소 인생 답을 얻은 느낌이었
비 오는 날 윤 한 로싸구려 분내를 풍긴다돈짝만학 벚꽃 이파리들이 한 움큼씩 진다 밟힌다봄비 내리는 유원지울긋불긋한 놀이기구도 젖고개천 축대 위 갑을 하숙도 이미 젖고길게 머리 푼 반동가리 버드나무들음울타가난하고 다리 저는 처녀 화가 애가 나오던가문득 손창섭의 ‘비 오는 날’이 생각난다오늘 같은 날은컴컴한 골방 구석에 틀어박혀다시 한번 읽고 싶다, 그 소설사타구니 쓸며 쓸며고리타분하게시작 메모생각만 해도 음울한 ‘비오는 날’ ‘잉여인간’의 손창섭. 육이오 전후의 밑바닥 현실과 가난과 침통의 작가. 음울하고 음울타. 우리 한국 문학을
문화체육계의 주요 정책 집행자이며 일남 일녀의 부친 되시며 각종 피로연에 아내 천휘순 여사와 함께 참석해 덕담을 나누곤 했던 배삼지 국장은 오늘 밤 이 시간만은 그저 40대 중반의 한 사내인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 사내는 동네 어귀의 수상한 카페에서 눈앞에 수삼과 과일과 위스키를 놓고 앉아 있었는데, 혼자가 아니라 주지하다시피 ‘살찐 뱀’이라는 이 일대에선 보기 드물게 풍만한 마담과 함께였다. 이 마담의 몸매에 대해서라면 여러 차례, 시간 나는 대로 언급한 바 있다. 한 마디로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일반적인 표현으로는 풍만
개나리 2 윤 한 로아직 새파란 철부지 적청바지에 스모르에 백구두에 벌건 대낮부터 확확 술에 꼴아 약대 앞 잔디밭 노란 개나리 덤불 속쑤셔박혔지 히히거렸지노상 담배꽁초 다 찌그러진 우유곽 한 개와 함께 시 쓴답시고시작 메모약대 애들, 예술대 애들, 문리대 애들, 수강신청, 오리엔테이션, 축제, 깔깔거림. 대학이라는 데는 사람을 잔뜩 주눅 들게 하는 데였다. 그래서 맨 정신으로 맨송맨송 다니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나같이 연천에서 올라온 애들은 더 쪽팔렸다. 그 깔깔거림들이 괴로웠다. 그래서 청바지에 스모르 작업복에 언제나 흰 고무신인
개나리- 김유정의 ‘따라지’에 바치다 윤 한 로헌 양말짝 때 전 속옷 울가망 궤짝 집숟갈총으로 질렀던 쪽문을 열어젖힌다장독대로 수채가로사납배기 아끼꼬가 손 담그던요강 단지 타고도활짝 피었다삼십년대 사직동 산비탈한 끗 따라지들그런 데 나갔지시작 메모김유정 ‘따라지’에서 영애도 나오고, 얼짜도 나오고, 구렁이도 나오고, 톨스토이도 나오는데 아끼꼬는 왜 아끼꼬일까? 왜정 때니까 못살고 배운 것 없는 아버지들이, 우리나라 영희, 순이, 언년이 부르듯, 다들 그러려니, 갖다 붙였을까. 까페 여급을 나가니까 손님이란 작자들이 너도 나도 이쁘고
누가 봐도 배삼지 국장과 천휘순 여사만큼 평온하고 고요한 집안은 없었다. 정년까지는 10년도 더 남은 데다, 언제 차관이 되어 브라운관에서 국가정책을 설파하고 이 나라의 문화체육 방향을 손가락을 들어 가리킬지 모르는 남편과 40대 초반으로선 적지 않은 165센티미터의 키에 프랑스 화장품이 잘 먹히는 글로벌 피부에다 백화점 강좌를 여섯 개나 들어 다방면에 기초 지식을 취득하고 그 활용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아내라면 이 집안에서 흠을 찾아내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지레짐작할 수 있다. 물론 누구 닮았는지 몸뚱어리가 차돌처럼 단단한 중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