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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55) - 여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서석훈
  • 입력 2011.04.2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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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문화체육계의 주요 정책 집행자이며 일남 일녀의 부친 되시며 각종 피로연에 아내 천휘순 여사와 함께 참석해 덕담을 나누곤 했던 배삼지 국장은 오늘 밤 이 시간만은 그저 40대 중반의 한 사내인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 사내는 동네 어귀의 수상한 카페에서 눈앞에 수삼과 과일과 위스키를 놓고 앉아 있었는데, 혼자가 아니라 주지하다시피 ‘살찐 뱀’이라는 이 일대에선 보기 드물게 풍만한 마담과 함께였다. 이 마담의 몸매에 대해서라면 여러 차례, 시간 나는 대로 언급한 바 있다. 한 마디로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일반적인 표현으로는 풍만한, 개인적으로는 숨 막히는, 뭉클한 감동을 주는 그런 차원의 몸매였다. 이것은 배삼지 국장이 평소에 갖고 있던 여체에 대한 정의와 여체에 바치는 헌사에 일치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여자는 길거리나 식당이나 지하철, 심지어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보기 쉽지 않은 건데 이렇게 동네 어귀에 홀로 의연히 존재하고 있다니, 이 어인 까닭인지 알 길이 없었다.
보기만 해도 큰 기쁨인데 이렇게 나란히 앉아 있으니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배삼지 국장은 이 여인을 위해서, 여인의 가열찬 서비스 정신과 누려야 할 여자의 기쁨을 위해서 내가 뭘 할 수 있겠냐고 자문해 봐야 했다. 안주 몇 개와 위스키 두병만으로 과연 할 일을 다 했다 할 수 있는가? 마담의 살찐 허벅지가 자신의 빈약한 허벅지에 닿을 때 바르르 떤 것만 가지고 참된 반응을 했다고 할 수 있는가? 여성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진정성을 갖고 고민해본 적 있는가? 뭔지 모를 가정사의 불행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내색 없이 진심을 다한 서비스를 하고 있는 여인에 비해 너는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그녀를 대하고 있는가? 그녀의 숨은 아픔에 어떻게 동참할 것인지 고민해 보았는가?

이러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배 국장으로 하여금 어떤 중대한 결심을 하기에 이르게 하였던 것이다. ‘중대한’이란 어떤 남자에게는 그냥 습관적인 동작이고 거의 무의식적인 행위일 수도 있고 때로는 합리적인 판단 하의 결행일 수도 있으나, 배 국장에겐 오로지 중대 결심 하나로 수렴되는 그 무엇이었다. 그것은 바로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여자에게 건네는 것이다. 이때 건네줄 때, 아이 학용품이나 부모님 건강식품이나 남편의 용돈 을 언급해서 남의 가정사를 건드리면 안 된다. 그저 스커트 하나 선물하고 싶지만 내가 살 시간은 없고 그대가 이 돈을 들고 가서 대신 구입하면 안 되겠냐고 부탁을 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마담에게 드릴 말까지 머릿속에서 한 번 연습해보고 오른 손을 들어 양복 안주머니의 지갑을 끄집어내는데, 마담은 이미 이 연결 동작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지갑에서 어떤 종류의 화폐가 몇 장 집혀 나올 건가까지 짐작해보고 있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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