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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57) - 돈이 진정 필요한 여인

서석훈
  • 입력 2011.05.0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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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배삼지 국장이 수상한 카페의 마담 살찐 뱀에게 ‘옷이나 한 벌 사 입으라며’ 악어가죽에서 꺼내 든 5만 원 권 지폐는 도합 여섯 장이었다. 그러니까 술값 외에 가외로 내놓은 돈인데, 살찐 뱀은 감격한 가운데서도 “정말 옷 사 입으라고 주시는 거에요?”하고 반문해 봐야했다. 왜냐하면 ‘수상한 카페’를 연 지 3년 간, 5만 원이나 3만 원 내놓은 인간이 몇 있었고 상품권 10만 원짜리 내놓은 인간이 딱 하나 있었던 것이다. 현금 10만 원 이상을 그것도 옷이나 사 입으라고 내놓은 인간은 지금 바로 옆에 앉아있는, 몸매가 빈약한 이 중년사내가 처음이었고 앞으로도 또 있을 성싶지 않았다. 그리고 ‘옷이나’그 말엔 다른 중요한 뜻이 숨어 있지 않나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옷을 입으려면 옷을 벗어야 하는데 바로 거기에 남자의 바람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들었던 것이다. 어떤 놈이 돈을 그냥 내놓나? 남자들도 전부 약아빠져버린 이 시대에 한 번 어떻게 해보려는 의도 없이 그냥 돈을 내놓는다는 게 말이 되나? 숫기가 없다 보니 말을 돌려서 한 것 아닌가? “오빠, 혹시....” “응? 혹시 뭐....” “혹시 그런 생각 하고 있는 거야?” “그런 생각이라니,” “그런 생각이 그런 생각이지 뭐 있겠어?” “아, 아니야. 그런 뜻으로 주는 거 아니라니까. 진짜 옷이나 한 벌 사라고 주는 거야.” “나.... 오빠 좋아지려고 해. 그래도 돼?” 이러한 대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살찐 뱀은 돈을 재빨리 드레스 주머니(업소용 드레스는 현금 등 귀중품을 보관하는 주머니가 달려 있다)에 넣고는 허벅지를 보다 강하게 밀착시키고 남자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현금 30만 원이 야기하는 이러한 훈훈한 일련의 행위는 배삼지 국장의 마음에 깊은 물결을 일으켰다. 앞으로 마담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적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사실 배 국장이 아무데서나 지갑을 열고, 그것도 30만 원의 현찰을 건넨다는 건 평소의 그답지 않은 일이었다. 문화예술계나 체육계 인사들로부터 얻어먹는데 익숙한 그가 마담이나 옆자리 아가씨의 팁을 챙기는 일은 드물었고, 그저 잠시 즐기다 일어나면 그만인 그런 자리에 어느 정도 물려 있기도 했다. 그러한 배 국장이 자진해서 이러한 자선 행위를 하고 지금도 후회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마담 살찐 뱀이 어느 정도 강한 마력을 품고 있는지 짐작케 한다. 30만원을 아내 천휘순 여사에게 건넸다면 어떤 결과가 있겠는가? ‘어머, 고마워요.` 이 한 마디면 끝날 것이다. ‘피곤하실 터인데’ 하며 꿀물이나 한 잔 갖다 주겠는가? 얼른 주머니에 넣고 다음날 낮에, 만날 뭉치는 그 여편네들과 한정식 식당에서 남편 흉이나 보며 호호 헤헤 할 것이다. 그러나 같은 돈이라도 진정 필요한 여인에게 그 돈이 갈 때는 이렇게 다른 반응, 즉 진정한 교류의 장이 열리는 것이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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