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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58) - 한 밤 중에 내린 축복

서석훈
  • 입력 2011.05.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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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수상한 카페의 마담 ‘살찐 뱀’은 문화체육계의 주요 인사인 배삼지 국장으로부터 옷값 명목으로 30만 원을 받아 챙겼다. 옆에 붙어 앉아 마력과 같은 살내음을 풍기고 몇 차례 허벅지를 밀착시킨 대가치곤 적다 할 수 없는 돈이었다. 이에 살찐 뱀은 먹먹해진 가슴으로 배삼지를 응시하며 그의 손을 만지작거리니, 배삼지는 배삼지 대로 올바른 행위를 했을 때의 뿌듯함과 밝은 앞날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배 국장은 문화체육계의 인사답게 문화와 체육, 즉 정신과 육체, 인간을 구성하는 주요 양대 요소 중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고자 했다. 해서 밤의 여왕인 마담과도 정신적인 교류와 함께 가벼운 신체 접촉 및 가슴골에 대한 깊은 응시 등으로, 정신과 육체의 균형적인 발전을 꾀하고자 했다. 많은 술꾼들이 여인의 정신적인 면을 간과하고 무식하게 들이댐으로써, 여인에게 혐오감과 함께 큰 상처를 준다는 걸 배 국장은 잘 알고 있었다. 밤의 여인이라 해서, 아니 오히려 그러한 여인이기 때문에 더욱 더 정신적인 허기에 시달린다는 것도 국장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현금과 함께 정신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때 여인은 그만 허물어질 만큼 강한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살찐 뱀 같은, 밤의 여인들 중에서도 특히 돋보이는 이런 마력의 여자는 쉽게 감동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고 그 냉혹함과 지배하는 관능으로 사내들을 휘어잡으려는 경향이 있다. 허나 그러한 여인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감동의 잔물결이 일고 있다고 보아야 했다.
여기까지가 배 국장의 생각이고 ‘살찐 뱀’은 30만 원이 들어옴과 동시에 이 돈의 용도에 대해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우선 두 새끼가 있었다. 18살짜리 고3 아이와 15살짜리 중 3계집애가 이제 겨우 환갑을 맞이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마담의 엄마는 마담을 20살에 낳았고 마담 또한 일찌감치 사내를 만나 23살과 26살에 각각 하나씩 내질렀다. 애들 아비는 미용실 주인 년과 바람이 나서 12년 전에 집을 나가 사내 아이 하나를 낳더니, 거기서도 집을 나가 이번엔 기획부동산 경리 년과 딸을 낳고 그리고 또 집을 나가 행방불명된 상태였다. 공고를 졸업하고 육군하사로 전역했는데 사교춤을 잘 추고 클럽 영업부장 경력이 있고 노름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언변이 좋고 여자에게 선심 쓰는 걸 좋아하는데 처음엔 공을 들이다 제 여자가 되고 애를 낳으면 그때부터 남의 남자가 되는 놈이었다. 책임감이라곤 10원어치도 없는 자라서 인생에서 재빨리 사라져준 게 다행이다 싶었다. 자식이야 낳았으니 길러야 하는 게 어미 된 의무고, 그 동안 몇몇 남자를 만났지만 선택해야 할 경우 언제나 숙명처럼 아이 곁으로 돌아왔다. 아빠가 70세의 나이에 여러 합병증으로 돌아가시자 엄마를 모셔와 연립주택 반전세집에서 3대가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한밤중에 갑자기 생긴 30만 원은 이 가족에겐 벼락같은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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