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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54) - 남편과 아내, 살찐 뱀과 현빈

서석훈
  • 입력 2011.04.16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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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누가 봐도 배삼지 국장과 천휘순 여사만큼 평온하고 고요한 집안은 없었다. 정년까지는 10년도 더 남은 데다, 언제 차관이 되어 브라운관에서 국가정책을 설파하고 이 나라의 문화체육 방향을 손가락을 들어 가리킬지 모르는 남편과 40대 초반으로선 적지 않은 165센티미터의 키에 프랑스 화장품이 잘 먹히는 글로벌 피부에다 백화점 강좌를 여섯 개나 들어 다방면에 기초 지식을 취득하고 그 활용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아내라면 이 집안에서 흠을 찾아내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지레짐작할 수 있다. 물론 누구 닮았는지 몸뚱어리가 차돌처럼 단단한 중 3 아들과 가출 경력 한 번에 락 밴드에 애인이 있는 여고 2학년 딸이 말썽을 일으킬 순 있지만 언제나 그래왔듯 해결 지을 능력이 이 부부에게는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부부에겐 결여되어 있는가? 쉽게 얘기해서 그것은 사랑인가? 또는 신뢰라는 건가? 그것을 설명하기 전에 우리는 이 부부의 생활을 좀 더 들여다보자.
천휘순 여사가 수목 드라마에서 현빈 비슷한 놈을 보고 가슴이 두방망이질 쳐 오렌지주스로 그 박동을 진정시키고 또 열기를 식힌 후, 뒤뚱뒤뚱 걷는 배 불뚝 남편이 귀가하기 전에 잠들어버리려고 하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물론 그 전에 그녀는 딸의 방에 들려, 딸이 카페창 하나 블로그창 하나 구석에 조그맣게 공부 창 하나를 띄워놓고 또 스피커에서는 최신음악(신중현 표현으로는 현대음률)이 흘러나오게 하여 감성과 지성과 커뮤니케이션을 동시에 발달시키고 있는 광경을 목도하고는, 그렇게 어지럽게 살려면 다 때려치우고 미용이나 배우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고 수학 열 문제만 풀고 자라고 딱 한마디만 하고 나왔다. 그리고 아들 방에 들려 후다닥 컴퓨터 장면 전환시키는 걸 보고, ‘저 자식을 그냥’ 머리를 쥐어박고 싶었으나 어린 것이 얼마나 정에 굶주리고 할 게 없었으면 하는 생각에 참외 접시를 내려놓고 일찍 자라는 당부만 하고 나왔다. 그런 다음에야 침대에 가서 누웠는데 배삼지가 뒤뚱비틀 들어올까봐, 들어와서 술 냄새에 삼겹살과 한치와 땅콩 냄새 풍기며 옆에서 비벼댈까 봐 겁이 나는 거였다.
배삼지 국장은 천휘순의 그런 염려와는 달리 동네 어귀의 수상한 카페에서 이쑤시개에 꽂힌 딸기를 먹고 있었다. 수삼 안주 다음에 뭐 먹을 게 없나 물어봤더니 과일이 있다고 마담이 사실대로 밝혔던 것이다. 마담 입장에선 과일은 일부러라도 먹어줘야 하는 건데 손님이 시키면 그 자리에서 깎아주며 같이 먹는 게 또 별미였다. 값은 일반 안주보다 만 원정도 비쌌다. 배삼지 국장은 살찐 뱀 같은 마담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이정도 몸매를 갖고 있는 여자라면 위스키 두 병과 낙지 소면과 수삼과 과일 안주 정도로는 뭔가 부족해보였다. 그리하여 국장은 어떤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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