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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윤한로 詩)

서석훈
  • 입력 2011.04.3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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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윤 한 로

싸구려 분내를 풍긴다
돈짝만학 벚꽃 이파리들이
한 움큼씩 진다 밟힌다
봄비 내리는 유원지
울긋불긋한 놀이기구도 젖고
개천 축대 위
갑을 하숙도 이미 젖고
길게 머리 푼
반동가리 버드나무들
음울타
가난하고 다리 저는
처녀 화가 애가 나오던가
문득 손창섭의 ‘비 오는 날’이 생각난다
오늘 같은 날은
컴컴한 골방 구석에 틀어박혀
다시 한번 읽고 싶다, 그 소설
사타구니 쓸며 쓸며
고리타분하게



시작 메모
생각만 해도 음울한 ‘비오는 날’ ‘잉여인간’의 손창섭. 육이오 전후의 밑바닥 현실과 가난과 침통의 작가. 음울하고 음울타. 우리 한국 문학을 빛낸 수많은 시인, 작가들 속에서 이제 손창섭은 한참 눈을 찌그린 다음에야 겨우 알아 볼 수 있는 얼굴이다. 문득, 깊고 컴컴한 복도 끝에 서 있는 외골수 교감 선생님 같다. 비가 오는 평일 날 유원지 같은 데서 더욱 생각나는 작가. 비 오는 날은 손창섭의 ‘비 오는 날’을 읽고 싶다. 하숙집 골방에 틀어박혀, 곰팡내 맡으며, 고삐리 때처럼 사타구니 쓸며 쓸며, 지독한 가난과 침통과 음울의 마수에 빠져들고 싶다. 만끽하고 싶다. 무슨 잡놈처럼 날뛰느니.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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