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피아 소설가 엄광용 전문기자가 연재하던 '대하소설 광개토태왕'을 작가의 개인 사정으로 인하여 연재를 중단한다.이후 엄 전문기자는 새로운 소설 '검은새의 춤'이라는 무협 형식의 소설을 미디어피아를 통해 다시 연재하기로 했다.
2. 전륜성왕 편전에서 물러나왔을 때 석정은 마치 하늘에서 은가루를 뿌리듯 부서져 내리는 햇살을 올려다보았다. 궁궐의 기와지붕 위에 떠 있는 하늘은 쪽빛 바다처럼 푸르렀다. 거기, 바다 위에 떠 있는 흰 돛배처럼 구름 몇 조각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날씨는 평화롭구나!’석정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뇌면서 다른 한편으론 긴 한숨이 터져 나오는 걸 숨길 수가 없었다. ‘과연 평화의 세상은 언제 올 것인가?’너무도 아득하다는 생각이 석정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작금의 고구려는 풍전등화(風前燈火)와도 같았다. 이미 백제에게는 고구려가 허
1. 낙타풀 수곡성 전투에서 백제군에게 패하고 국내성으로 돌아온 고구려 대왕 사유의 심사는 매우 복잡했다. 두 번이나 백제에게 패하다니, 그런 수모가 없었다. 그는 스스로 욕심이 지나쳤다고 생각했다.이번 전투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3만 병력 중 전사자가 3천을 헤아렸고, 백제군에게 포로가 된 고구려 병사도 그와 버금갈 정도였다. 더더구나 농민들 중 차출한 병력의 반 이상은 도망쳐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졌다. 그래서 회군할 때의 고구려군은 겨우 절반에 불과했다.대왕은 오래도록 울분을 삭일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과
8. 삶과 죽음 사이 수곡성 앞 너른 들판에서는 백제군과 고구려군의 공방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백제의 복병이 고구려 중군을 추격하여 수곡성 앞까지 왔을 때, 성안에 있던 고구려 선봉대장 연수는 급히 군사를 끌고 중군을 돕기 위해 출전했다.이렇게 되자 백제군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는데, 수곡성 안에서 느닷없이 불길을 치솟자 고구려군은 적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길이 솟는 것을 신호로 성 밖의 동편과 서편에 숨어 있던 백제군들이 동시에 수곡성을 들이쳤던 것이다. 성 안에 머물고 있던 백제 잔류 병력이 불을 지르고 성문을
7. 패전의 쓰라림 찌는 듯한 7월의 불볕더위는 진군하는 병사들의 걸음을 마냥 더디게 했다. 서홍천의 둑은 진흙이 말라 쩍쩍 갈라진 상태였고, 고구려 중군의 행렬이 지나가는 길도 먼지로 자욱했다. 폭우가 내릴 때 서홍천이 범람하면서 쌓인 진흙이라, 군사들이 진군하면서 일으킨 미세 먼지들이 구름처럼 자욱하게 일어났다.군사들은 옷이며 얼굴까지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써서 마치 일부러 진흙을 칠해 굳어진 것처럼 보였다. 줄기차게 땀이 흘러내리는 데다 먼지가 뒤엉켜, 도무지 누가 누군지 얼굴조차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걸어가는 군사들보다
6. 기만전술 고구려군 선봉장 연수는 평양성 군사들을 길잡이로 삼아 1만 5천의 병력을 이끌고 수곡성 인근에 이르렀다. 야트막한 산 하나만 넘으면 너른 들판이 나오고, 그 들판 끝에 높다란 성벽의 수곡성이 있었다. 햇빛에 반사되어 더욱 희게 보이는 화강암 성벽 위로 황색 깃발들이 나부끼는 가운데, 공성전투에 대비한 백제 방어군의 기세가 자못 날카로웠다.척후의 보고에 의하면 수곡성을 지키는 백제군은 불과 5천 정도라고 했다. 1만 5천대 5천이면 싸워서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여건이지만, 적이 맞서 싸우지 않고 성 안에서 농성을 한다면
5. 매복 “작전상 수곡성을 비워주겠다니, 말이 되오?”백제 대왕 구는 장군 막고해에게 침착하게 물었다.수곡성 영내에서 대왕 구와 장군 막고해가 탁자 위에 지도를 펼쳐 놓고 머리를 맞댄 채 긴밀히 작전을 짜고 있었다. 밀정 사기가 물러가고 나서 단 둘이 있게 되었을 때, 막고해는 수곡성을 고구려 선봉군에게 비워주자고 말했다. 그러자 대왕 구는 잘못 들은 것으로 착각하고 재차 물었던 것이다. “허허실실의 전법을 쓰자는 것이옵니다. 먼저 비워주고 나서 다시 찾으면 그뿐이옵니다.”막고해 역시 침착했다.“허허실실이라니? 장군! 알아듣게 설
4. 밀정의 정체 패하 북변 언덕 위에 높다랗게 솟아오른 수곡성은 강가의 남쪽 방향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천연의 요새였다. 그리고 동서북 3면으로는 높다랗게 석성을 쌓아올려 제법 웅장한 위용을 자랑했다. 성 양편에 깊은 계곡을 끼고 있는 데다 패하를 뒤로 하여 강변의 언덕을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북쪽으로 열려 있는 너른 들판을 굽어보고 있는 형국이었다. 따라서 성루에서 바라보면 시야가 확 트인 3면의 너른 들판이 한 눈에 들어와 경계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이미 고구려 원정군이 수곡성을 치기 위해 군사를 모으고 있다
3. 전쟁불가론 왕자 이련까지 전투에 참여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고구려 조정에서는 다시 한 번 전쟁불가론이 불거져 나왔다. 이미 보릿고개를 넘어서서 군량미 보급에 큰 지장은 없었으나, 한 달이나 지속되는 가뭄으로 가을걷이할 농작물들이 채 결실을 맺기도 전에 말라죽을 판이었다. 더더구나 출전을 앞두고 연일 맹훈련을 거듭하는 군사들 사이에서도 일사병에 걸려 쓰러지는 자가 속출하고 있었다.편전에는 대신들이 모여 있었고, 국상 명림수부가 대왕 사유 앞에 부복하여 아뢰었다.“폐하! 지금 군사를 일으킬 때가 아닌 줄로 아옵니다. 한 달 이상 계
2. 바람의 순리 동부의 군사 1천을 이끌고 국내성에 당도한 두충은 일단 성의 동문 밖에 군막을 쳤다. 그리고 그곳 들판에서 군사들을 조련시키던 어느 날 밤, 그는 갑옷을 벗고 평복으로 갈아입었다. 그의 옆에는 말구종으로 따라온 사기가 있었다. 사기는 기마부대 소속으로 기마대장 해평의 수하가 되었으나, 그가 스스로 두충에게 찾아와 간절히 이번 출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하는 바람에 그 소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평복으로 옷을 갈아입는 두충을 보고 사기가 물었다.“어디를 가시려고요?”“성내에 좀 다녀올 일이 있다.”“그러면 소
1. 화농성 종기 국내성은 출정을 며칠 앞두고 어떤 미묘한 긴장감과 믿기지 않는 호승심으로 들떠 있었다. 이미 지방의 동서남북 각 부에서 보낸 군사와 말갈족을 합하여 1만, 전국에서 모병하여 훈련시킨 군사와 국내성 중앙군인 경군과 숙위군에서 차출한 병력 1만 5천 등 도합 2만 5천의 병력이었다. 또한 원정 도중 평양성에서 5천의 군사를 차출하여 총 3만의 대군이 출전할 예정이었다. 그 중 전국에서 모병한 장정들은 전쟁 경험이 없어 두려움에 떨었고, 변방을 지키던 군사들과 말갈병은 사기가 충천하여 들뜬 분위기 속에서 출진 명령이 떨
7. 충정 하대곤의 예상대로 국내성 사자가 책성을 다녀갔다. 고구려 변방을 지키는 각 성에도 동시에 사자들이 대왕의 군대 동원령을 가지고 떠났다고 했다. 한 달 안에 가려 뽑은 군사를 국내성으로 보내라는 어명이었다. 군대의 규모는 정해져 있지 않았는데, 이는 각 성에서 어떤 성의를 보이는지 두고 보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하대곤은 고민 끝에 보병 1천의 군사를 보내기로 했다. 기병도 보내고 싶었으나, 그럴 경우 해평을 기마대장으로 삼아야 하는데 보병 전체를 지휘하는 두충까지 두 장수가 빠지게 되면 책성의 공백이 너무 컸다.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