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 모든 것을 내어 주고 나면허전해지는 것이지만껍데기뿐인 너는 그렇지 않다.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그리 한 것처럼 뿌리에 붙어 쓸모없어 보이지만너는 기필코 다시 태어나고야 만다.넌출 넌출 넓다란 잎은여인의 억척에 거두어져소금 한 줌 넣은 끓는 물로 들어간다.여름을 견디느라 그간도 뜨거웠을 텐데... 건져 올려진 너는 두 가지로 변한다.하나는 몇 자락 남지 않은 가을볕에 널리거나다른 하나는 도마 위에서 칼질 종종 받아 비니루 봉지에 담겨 삶의 터를 냉동실로 옮긴다.겨우내 너는 된장을 만날 것이다. 가장 귀한 이들의 껍데기가 되고 싶
역사 2021년 11월 9일 저녁은 가을이었습니다.11월 10일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왔습니다. 하루 사이에 계절이 바뀝니다. 1910년 8월 28일은 국호가 조선이었습니다.하루가 지나고 이 땅에 조선은 사라졌습니다. 하루 사이에 나라를 잃었습니다. 모든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합니다.수많은 아이도 밤에 생겨납니다.하루라는 것은 역사의 일부가 아닙니다.한순간, 하루는 온전한 역사 자체입니다. 어제까지 사랑이 아니었다가 오늘 사랑이 되고어제까지 피지 않았던 꽃도 오늘 핍니다.하루를 살아가는 우리가 하루를 사랑하고하루에 성심을 다하여
축 사망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겸손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오늘의 부고엔 절대 겸손해지지 않으련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가을의 막바지에 다까끼 마사오는 죽었고 그 죽음에도 겸손하지 않았다.눈이 내리던 그해 12월 어느 날 교문에는 장갑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잔인한 4월이 잔인하게 지났고 계절의 여왕이라는 달에 광주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하였다.M16 총부리엔 대검이 꽂혔고 그 날카로움은 열정의 청년 복부를 찔렀다. 오늘 그놈이 죽었다.사형 언도에 무기징역 죗값을 치루던 놈을 대국민 화합이라는 미명하에 사면이라는...국민은 분
김장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텃밭에 배추와 무수를 심으셨다.일곱 식구 겨우살이 양식을 준비하신 것이다.해마다 이맘때쯤 배추를 뽑으신다.배추 뿌링이는 우리들 몫이다.흙 묻은 뿌링이는 칼로 덕덕 긁는다.뿌링이 맛이 오묘하다.고소하고, 매콤하고, 달콤하기까지... 엄마는 속이 꽉 찬 배추를 준비한다.떡잎을 다듬고는 칼로 쫘악 가르신다.큰 포기는 네 쪽, 작은놈은 반굵은 소금 푼 물에 절구고하룻밤 재운 후 깨끗이 헹군다.갖은양념 버무린 속은 참 맛있다. 어우리 온 아주머니들과 김장이 시작된다.아버지는 돼지고기 앞다릿살을실로 꽁꽁 동여매고된장
두 번째 눈 어쩜 저리 얌전히 오실까?그리도 머언 먼 하늘에서그리도 먼 길을 내려오는데지친 기색일랑은 아예 없고소리 없이 조용히 오실까? 오신 눈은 소리 없이 녹는다.소리 없이 녹는 눈은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누군가에게는 눈물이다. 더러는 소복소복 싸인다.싸이는 눈은 순백의 아름다움으로 대지를 덮는다.인간이 저지레를 떤 자리를하얗게 감싸준다. 누군가의 눈물을위로로 감싸주는 따뜻함은순백의 눈보다 아름답다.
첫눈 사랑하는 마음들이 반짝이다가하늘로 올라별들이 된단다. 별들이 서로 사랑을 하다가아랫녁이 그리워첫눈으로 내린단다. 첫눈이 내리는 날에정동길 안 카페에서 만나기로 한40여 년 전 혜숙일랑은 잘 있으려나? 첫눈은때로는 반가움으로 내리고때로는 그리움으로 내린단다.첫눈에 반한 첫눈처럼네게 첫눈에 반하고 싶다.
산다는 건 길을 걷는 것입니다.그 길은 물리적인 길과 마음의 길이 있지요.마음길을 걷는 것은 연습이 필요합니다.성찰하고 되돌아보고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길은 둘이 걷기도 하고 홀로 걷기도 합니다.혼자 걷는 길도 외롭지만 둘이 걷는 길도 외롭습니다.둘이 함께할 때의 외로움은 훨씬 크게 다가옵니다.걷다가 갈림길을 만나면 선택이 필요합니다. 아픔을 이겨 내는 것입니다.수없는 아픔을 만나고수없는 상처가 남기도 합니다.그 많은 아픔과 상처를 마주하며 이겨 내고 치료하며 살아갑니다.아픔에 가위눌릴 때면 삶이 끝나는 것입니다. 꿈을 꾸는 것입
깊어 가다 청춘을 자랑하던 나무도계절을 피할 수 없나 봅니다. 알록달록 오색 단풍이산마루에서, 골짜기에서앞을 다투며 깊어 갑니다. 낮았던 여름 하늘도 덩달아위로 더 위로 치달려투명한 옥빛으로 가을을 이야기 합니다. 깊어 간다는 것은 커다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너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어 가고너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 가고 마음이 깊어 가면 지극해 집니다.한 번 떠올릴 것도 두세 번 떠올리고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꽃도정성스레 한 번 더 보게 됩니다. 깊어 가는 가을 시간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좋겠습니다.그래야 내가 내게 조금 더 깊어
유혹에 빠지기 살 뺀다고 마음먹은 다음 날맛있는 음식을 멀리 하기란쉽지 않은 일 맛있는 음식과 곁들이는미주를 참는 일은더더욱 쉽지 않은 일 잔잔히 밀려오는 파도처럼오후 두 시에 찾아오는 졸음을이겨내기도 어려운 일 아름다운 여인의 추파와고혹적인 입술을 멀리하기란죽기보다 어려운 일 마음 가는 대로 그냥유혹에 빠지게 하옵소서.
딱지치기 딱지를 '딱'하고 치니까'딱' 하는 소리가 난다.그래서 딱지인가?
가을 모기 이 안에 당신이 계신 걸 다 알아요.선뜻 나타났다 어디론가 사라지는걸차라리 눈에 띄지 않았으면 모를까.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따지지는 않겠어요.모든 걸 용서할 테니 숨지 말고 나와 주세요. 용서의 의미는 참 여러 가지로 들리는 것이 우리네 삶입니다만...
사랑, 그 사랑 사랑은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슬쩍 스쳐 지나갑니다. 사랑이 지나간 후에이게 사랑이었나 보다아쉬운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사랑이 올 줄 미리 알고이렇게 해야지 하는 일은 드믑니다. 지나간 것은 추억입니다.추억 속에 지나간 사랑이 담깁니다.추억이란 내가 지나온 길이고 그 길은 봄빛 가득한 초록의 길이었고비 오는 날 우산도 없이 함께 걸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어리석었던 젊음의 객기는누구에게나 있습니다.초록길은 낙엽으로 덮이고 우산도 필요 없게 되었지만지난 것은 부끄럽지 않은 추억입니다. 추억 안에 덜 익은 사랑이 함께하
어떤 아이 열 살 남짓 보이는어떤 여자애한테눈이 참 예쁘다 했더니눈보다 더 예쁜 웃음으로대답합니다.
통일가 참 희한한 일이다.아직은 녹음을 온몸으로 자랑하는 나무가불과 열 사나흘 후면 알록달록 옷을 갈아입고 눈요기를 시킨다니 단풍으로 몸치장하는 까닭을 생각해 본다.젊음의 회한이 남아서 결실을 떨구고때때옷 갈아입고 시집가려나?자식 농사 다 마치고 시집간 딸네 만나러 가려나? 북녘 금강산에 네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나날이 너는 아래로 아래로 내려오겠지.내려오는 길에 피안도 아지매, 함경도 아바이 소식이라도 가져오려무나. 너의 불붙는 자태처럼이제라도 평화가 통일을 끌어안고 온다면온 산이 불타오르듯 민족의 염원이 타오른다면한라에서 백두
사과 한 알 사과나무는 커다란 새입니다.한 해가 동안 열심히온 하늘을 날아 수많은 사과 알을 낳습니다. 가을이 익어가는 오늘사과를 맛보았습니다.해님 닮아 붉게 익은 사과를물끄러미 봅니다.내 앞에 오도록 얼마나 많은 수고가 담겼을까? 사과 한 알에 햇살과 바람과 비와천둥과 번개와 이슬이 있습니다.사과 한 알에 구름과 풀 뽑기와 가지치기와 여인의 손길(솎아내기, 봉지 씌우기, 사다리 타서 따기)와남정네의 땀 냄새와 정성이 담겨 있습니다. 사과나무가 낳은 사과 알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오손도손 눈이 자꾸만 감긴다.저 위에 계신 엄마가 보고 싶다. 잠들지 못하던 어제 밤뒤척이던 베개랑 요대기 때문일까? 잠기는 눈꺼풀을 치뜨면어찌나 무거운지 도로 내려온다.엄마보다 먼저 저 위로 가신 아부지도 보고 싶다. 엊저녁 먹은 술 때문일까? 잠과 죽음을 연결해 본다.잠들었다 깨지 못하면 죽는 것 아닐까?사후 세상도 생각해 본다.저 위에서 엄마도 아부지도 안계시다면세상사 무의미할 것 같다.그래서 인간은 종교를 만들고자기가 만든 종교에 복속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죽음과 잠의 의미는 큰 차이가 아니다.잠을 오랫동안 자고 깨어나지 않
추억 오징어를 씹는데추억이 씹혔다.때로는 엉뚱한 일로 과거를 연상하기도 한다.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세면대에 서서 세수를 하려는데늘 하던 일에 깜짝 놀랐다. 거리가 너무 가까운 거다.익숙하다고 자신 있어 한 내 불찰이다. 추억은 머리로만 떠올는 것이 아니라는 걸오징어가 나를 깨우쳐 줬다.세면대가 일상을 되돌아 보게 한다. 슬프면 울고, 아프면 아프다고 할 일이다.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시간이, 세월이 알아주지 않는다.익숙한 것에 경계를 삼을 일이다. 때로는 오징어가 과거의 아픔을 치료해주고세면대가 내 추억을
바람 바람은 시간과 공간의 이동이다.여름을 지고간 바람이 가을을 이고 온다.나락을, 과일을, 추억을, 사랑을 머리에 이고삼라만상 모든 이에게 안긴다. 역사의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불지만바람의 시간은 미래에서 불어오기도 하고과거로 나를 데려 가기도 한다. 차가운 곳에서 따뜻한 곳으로의 공기이동이 바람이라 배웠지만어느 순간 나를 해변으로, 들판으로 이동시킨다.추억에서 추억으로 바람이 분다. 마음 안에도 바람이 분다.눈물이 나도록 서글픈 사랑에도.가슴 따뜻한 온기 속에도 바람이 분다. 바람이 있기에 잊기도 하고바람이 있기에 떠올
시간, 강물, 그리고 배 시간은 도도히 흐른다.역사란 시간 위에 얹혀 진 사건일 뿐이다.나의 일상도 작은 역사일 뿐이다. 강물과 시간은 많이 닮았다.강물은 중력에 의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시간도 중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시간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의 산물이다.시간의 중력은 없지 않을까? 물은 흐르며 굽은 대로 막힌 대로 그냥 흐른다.메마른 땅에는 충분히 스미고 난 후에야 흐른다.시간도 흘러가며 스민 조각이 있을 텐데나의 역사에 스민 시간은 어떤 조각으로 남아있을까? 강물 위에 배가 떠 있다.시간 위에 떠 있는 배에 나는
가을에 시원한 가을 바람산, 들 보고 산들산들 코스모스 예쁜 꽃하늘 보고 하늘하늘 목화밭 영근 씨앗구름 보고 뭉개뭉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