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남기에 40대의 동영상 제작자 소위 영화감독은 왕녀의 여배우 장화자에게 전화를 해서 오후 여섯시 반에 블루로얄 호텔 로비에서 만나자는 제의를 했고, 장화자로부터 7시에 만나자는 답변을 받아냈다. 이미 전에 야밤에 한 번 만났을 때 감독에게서 알 수 없는 여유와 수상한 돈냄새를 맡은 바 있는 장화자는 감독을 재차 만나는 것이 손해 볼 일은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사실 감독이라는 이 작자는 원래 돈이 없고 예술성이 다소 떨어져 그렇지 성품이 위험하거나 사기성이 있는 인물은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는 불상해서 거둬주고 싶
도도녀는 남자의 욕구를 어떻게 컨트롤 하는가? 이러한 거대 질문을 지난주에 던진 바 있다. 쉽게 얘기해서 한 번 해 보겠다는 남자의 의지와 본능을 어떻게 조절하고 관리하여 자신의 페이스 하에 두는가 이 말이다. 언제나 냉소를 날리고 뾰족한 턱을 치켜들고 신체나 언어나 약간의 근접에도 소스라치며 짐승 보듯 하는가? 아니면 묵묵부답, 너는 지랄해라, 나는 네가 사 주는 자연산 회와 호텔 스테이크, 네가 끊어주는 수입 뮤지컬, 네가 지불하는 화장품과 옷가지와 가방에만 연연하겠다. 슬쩍 손을 스치거나 가벼운 터친 받아주겠다. 허나 그건 안
살찐 뱀 같은 마담과 가슴이 허한 배삼지 국장이 수상한 카페의 2인용 비닐 소파에 허벅지를 밀착시키고 앉아, ‘대담’이라고 할 수는 없고 ‘토론’은 더욱 아니고 ‘친교’가 합당할 같은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이쯤에서 돌아보자면, 도대체 우리의 허름한 당나귀 신사는 어디 갔으며, 관능적인 몸매와 뇌쇄적인 눈빛과 달착지근한 숨결의 마돈걸은 또 어디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작가가 생각하기에 당나귀 신사 백팔만 씨는 경마장에서 목돈을 날리고 크게 상심하여 몇 잔 약주를 걸친 다음 나귀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 걸로
모텔 엘리베이터의 특색은 두 사람이 들어서면 꽉 찰 정도로 좁다는 것이다. 이는 전국모텔협회가 권하는 이상적인 형태로,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굳이 설명하지는 않겠다. 우리의 대단한 마돈걸과 천하의 바람둥이 유세련이 좁은 엘리베이터에서 입술을 맞대고 9층까지 올라갔다는 건 사실이었다. 키스는 매우 낭만적인 행위로 여자에겐 순수와 매혹, 깊은 공감을 의미하는 바가 있다. 그런데 유세련에게 키스는 그런 정서적인 의미보다는 그냥 빨아먹는 행위에 가까웠다. 새 사탕을 빠는 것, 사탕 맛은 여자마다 다른데 떨떠름하기도 하고 맹물 같기도
남녀가 만났으면 얼른 결정을 짓지, 무슨 뜸을 그리 들이고 변죽만 울리는가, 이러한 아픈 채찍이 있을 법 한데 우리의 독자들은 참을성 있게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으니 경마도 그런 인내와 신중한 마음으로 베팅하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한다. 자, 미국에서 건너온 허여멀건 유세련이 강남의 와인바에서 마돈걸의 뜨거운 입술을 훔치려 들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현장을 지켜본 손님 A에 의하면 마돈걸이 무엇에 데인 듯 벌떡 일어서는 바람에 사내는 여자의 배꼽 부분에 코를 부딪치며 엎어졌다 한다. 사실 마돈걸은 유세련의 기습 키스
빈털터리 백팔만이 당나귀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는 그 시간에 마돈걸은 강남의 한 와인 바에서 아는 오빠인 유세련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세련은 젊은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어학 연수 6개월로 모든 학업을 종치고는 청소부, 주유소 및 슈퍼마켓 종업원을 거쳐 교포가 운영하는 술집에서 4인조 코리아 밴드를 이끈 끝에, 생활 영어와 국제적인 매너를 몸에 완전히 익히고 조국으로 돌아온 꽃미남 중년이었다. 한국에서는 재미사업가 행세를 하며 여자들로부터 몇 푼 뜯어 먹으며 생활을 영위하였다. 수차례 고소를 당하였으나 그때마다 합의를 보고 곤경을 벗
“투자는 자기 책임 하에!” 주식시장에서 흔히 하는 말이다. 경마라고 다를 바 없었다. 정보따라 베팅했다 실패한 뒤, 정보를 준 사람을 원망하는 건 루저의 시시한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마돈걸이 정보통 ‘말대가리’를 발견하자마자 사람의 중심 되는 그곳을 콱 움켜쥔 것은 지나친 행동이었다. ‘말대가리’는 마돈걸을 성추행범으로 고소하는 대신, 자신도 망했다는 변명을 늘어놓더니 그녀에게 진짜 새 정보를 주겠다며 ‘7번’ ‘9번’ 말을 추천하였다. “당신이나 많이 걸어!” 마돈걸은 다시 한 번 내 눈에 띄면 그곳을 잘라버리겠
지난주에 우리는 마돈걸이 건네 준 정보대로 3번 말과 9번 말에 나름 큰돈을 걸었다가, 그 허망한 결과에 망연자실해진 백팔만을 목도한 바가 있다. 백팔만은 마돈걸에게 욕을 할 수도 뭐라고 투덜댈 수도 없었다. 정보야 그녀가 줬지만 판단은 결국 자신이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준 정보야 지금까지 뭐 하나 시원찮은 게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떡하니 믿고서 질렀으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평소에 사내답고 제법 담대하다고 자부하고 있던 그는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했다. 언젠가 크게 한 번 맞추고는, 그동안의 실패 스토리가 파노라마처럼 떠오
맑은 하늘에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쬐는 토요일 아침, 백팔만은 당나귀에 올라타고 장정에 올랐다. 과천까지는 먼 거리였지만,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타박타박 가다보면 해가 중천에 오르기 전에는 당도할 터였다. 승용차의 경우 운전자가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간 큰일 나지만, 당나귀는 주인이 공상에 잠겨 있든 꾸벅꾸벅 졸든 개의치 않고 눈앞의 장애물을 잘 피해가며 묵묵히 갈 길을 갔다. 때로 젊은 여성의 꽁무니를 따라가기도 하는 건 자기도 모르게 주인의 마음을 닮은 탓이었다. 마침내 당도한 과천 경마장엔, 눈부시게 차려입
우리는 지난주에, 당나귀 신사 백팔만이 작전 걸린 칠성테크를 너무 일찍 팔고 밑으로 가라앉는 은행주를 사는 바보짓을 목도하였다. 그리고 백팔만이 내다버린 칠성테크를 몰래 산 마돈걸이 상한가 바람에 흥이 나 모 사내와 축하파티까지 열려고 작정하는 장면도 본 바 있다. 수십 년간 증권가에 몸 담아온 온 한 노련한 투자자에 의하면, 개미들이 돈을 못 버는 이유 중에는 섣부른 자기 판단과 조급함과 소심함이 있다는 것이다. 보유 주식이 오를 때 지나치게 일찍 파는 습성은 잔돈푼만을 남기는 반면 떨어질 때 초기에 팔지 못하고 반토막 날 때에야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 죽기 얼마 전에 찾아가서 감회에 젖은 곳은? 1번 후배 디자이너의 패션쇼장, 2번 어릴 때 뛰어놀던 고향의 거리, 3번 경마장. 짐작한 대로 답은 경마장이다. 그녀가 디자인한 옷과 모자를 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외국의 경마장은 그만큼 패션의 경연장이 되어 왔다. 과천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우리는 지난주에 술회한 바 있다. 해서 당나귀 신사 백팔만은 마돈걸의 멋진 패션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 것이다. 그깟 복장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 사람은 내면이 아름다워야 하는 것 아니냐며,
지난주에 우리는 마돈걸이 경마장에 나타나면, 그 뛰어난 자태와 패션으로 남정네들이 넋을 잃을뿐더러 여자들의 질시까지 집중적으로 받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비스타인가 싶어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자들까지 있었던 것이다. 당나귀 신사 백팔만은 한가한 오후 일식집에서 사케를 마시고 있는 마돈걸의 몸매와, 몸매를 감싸고 있는 패션 감각에 내심 감탄하였다. 과천 경마장에 오는 여성 경마팬들이 모두 그녀처럼 이렇게 아름답게 차려입으면 얼마나 보기 좋을까 생각해보았다. 사실 오페라 극장에 가듯 경마장에 옷을 차려입고 간다면, 보기 좋은 걸 떠나
당나귀 신사 백팔만은 작전이 걸린 칠성 테크 주식으로 벌어들인 쥐꼬리 수익에 감격한 데다 다른 생각도 좀 있어 마돈걸을 정갈한 일식집으로 모셨다. 시간은 오후 네 시 경으로, 이러한 시간에 중년남녀가 호젓이 입장하여 자연산 회 한 접시를 시켜 먹는 건 일식집 사장이 보기엔 매우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일식집 사장은 수완 좋은 아주머니를 붙여 그들이 참이슬 대신 몸뚱어리를 은은하게 덥힐 수 있는 사케를 마시게끔 유도하였다. “오빠, 어디서 정보를 들은 거야?” 마돈걸은 사케가 석 잔도 돌기 전에 칠성테크가 왜 올랐는지 궁금해 죽겠다는
당나귀 신사 백팔만 씨는 투자전문가 ‘탈법자’의 지시대로 코스닥의 ‘칠성 테크’가 일시 하락하는 오전 11시 경 일단 한 장, 즉 일 천만 원 어치를 즉각 매수하였다. ‘칠성 데크’인줄 알았더니 ‘칠성 테크’였다. 말 이름이 루이든 루니든 잘 뛰는 놈이 좋듯, 데크든 테크든 벌어만 주면 이름 따위는 아무 상관없었다. 그는 주당 3,400원에 3,000주를 한 번에 매수했다. 이 점이 경마와 달랐다. 경마는 좁고 진폭이 큰 반면 주식은 넓고 수익률이 완만하다. 해서 주식은 금액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다. 1억 투자해서 2천 버는 투자자
당나귀 신사 백팔만 씨는 아침 열 시 경에 집을 나섰다. “당나귀 신사님 좋은 아침입니다.” 경기도 거상 시(市)의 금도끼 아파트 검문소에서 교감 수위가 인사를 건네 왔다. 아파트에 차량 차단기가 생기면서 신사의 당나귀도 잠시 멈춰 서야 했다. 키가 작고 반백머리에 모자를 삐뚜름하게 쓰는 버릇이 있는 60대의 교감 수위는, 중학교 교감의 엄숙했던 과거를 잊고 아파트 정식 수위로서 제 2의 힘찬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백팔만 씨가 언제부터 당나귀를 탔는지는 의견이 분분했는데 교감 수위는, 이 땅에 당나귀가 가지 않는 곳은 없다고 들
소설가이자 시인 우영창 씨는 과거 증권회사 지점장을 거친 바 있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금융이 장악한 현대사회의 단면을 잘 표현한 대표작 `하늘다리`에는 런 그의 경험과 문학관이 잘 묻어있다.본지를 통해 소개되는 수필 `당나귀 신사` 역시 돈에 관한 이야기다. 돈과 경마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 깊은 곳을 들여다 보게 될 `당나귀 신사`는 가벼운 듯 하지만 결코 가볍지만 않은 우리들의 진솔한 이야기다. (편집자주)우영창- 경북 포항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동서증권 지점장 및 대우증권 영업부장 2003년 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