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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 (17) - 루저의 따뜻한 손

서석훈
  • 입력 2010.06.2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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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투자는 자기 책임 하에!” 주식시장에서 흔히 하는 말이다. 경마라고 다를 바 없었다. 정보따라 베팅했다 실패한 뒤, 정보를 준 사람을 원망하는 건 루저의 시시한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마돈걸이 정보통 ‘말대가리’를 발견하자마자 사람의 중심 되는 그곳을 콱 움켜쥔 것은 지나친 행동이었다. ‘말대가리’는 마돈걸을 성추행범으로 고소하는 대신, 자신도 망했다는 변명을 늘어놓더니 그녀에게 진짜 새 정보를 주겠다며 ‘7번’ ‘9번’ 말을 추천하였다. “당신이나 많이 걸어!” 마돈걸은 다시 한 번 내 눈에 띄면 그곳을 잘라버리겠다고 나직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그의 못생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말대가리는 그곳을 보호하려 함인지 남자 화장실로 꽁무니를 빼버렸다. 사실 정보통이 말대가리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가 아는 정보통만 다섯이 넘었다. 그 중 가장 노회한 정보통은 허리둘레 43의 60대 여자인 ‘젖소’인데 정보에 영양가가 많다는 뜻의 별명이었다. 하지만 이젠 늙고 병든 젖소였다. 그녀가 짜낸 우유에선 쉰내가 났다. 활약 중인 또 한 사람, 닉네임 ‘한 놈’이 있었다. ‘한 놈’은 경합하는 예상 우승마 중 탈락하는 한 놈을 잘 맞힌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었다. 그는 저배당에 특히 강했는데 그의 고견을 듣고자 하는 수요가 그래도 근근이 이어지는 형편이었다.
저배당에 거느니 차라리 발 느린 주식을 사고 말지 싶겠지만, 주식도 코스닥 쪽은 가히 로켓포의 위력을 갖춘 종목이 적지 않았다. 허나 수백 개 종목 중에서 그것들을 어떻게 찾아내겠는가? 그러니 직접 작전에 가담하고 있는 자의 내부 정보가 필요하다. 그냥 한 번 찔러보는 걸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개미들도 작전에 걸린 주식을 알아보는 방법은 있다. 우리는 뛰고 있는 말에 돈을 걸 수는 없다. 주식은 몇 달에 걸친 긴 승부가 많아, 노련한 투자자는 거래량과 주가 움직임, 정보 노출도 등을 감안해 적절한 타이밍에 돈을 걸 수 있다. 그러니까 주식 정보는 어느 정도는 시장에 노출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상대적으로 경마는 뛰기 전에 모든 걸 파악해야 한다.
아무튼 큰 승부에서 패한 당나귀 신사 백팔만은, 정보통의 사타구니를 움켜진 마돈걸의 손에서 냉커피를 받아 마시며, 이번엔 평소에 눈여겨 본 ‘광풍’과 ‘뒷발’에 걸었다. 마돈걸이 어디에 걸었는지는 마돈걸 만이 알고 있었다. 승부는 계속 패로 끝났고 끝날 때까지 두 사람은 단 한 레이스도 건지지 못했다. 그런 날이 있다. 패패패패패패패로 끝나는 날이. 그리고 그런 날이 오늘인 것뿐이다. 백팔만은 그렇게 자위하였다.
경기가 끝난 후의 빈 필드에 노란 불빛만이 외롭게 깔려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경마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백팔만과 마돈걸도 끼어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있었다. ‘루저의 손이 왜 이렇게 따뜻할까?’ ‘경주는 모두 빗나갔지만 이 이유만은 알아맞힐 수 있을까?’ 하고 백팔만은 생각했다. (다음 주에 계속)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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