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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 4) 인내는 없다. 당나귀는 바로 승부한다

서석훈
  • 입력 2010.03.2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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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당나귀 신사 백팔만 씨는 투자전문가 ‘탈법자’의 지시대로 코스닥의 ‘칠성 테크’가 일시 하락하는 오전 11시 경 일단 한 장, 즉 일 천만 원 어치를 즉각 매수하였다. ‘칠성 데크’인줄 알았더니 ‘칠성 테크’였다. 말 이름이 루이든 루니든 잘 뛰는 놈이 좋듯, 데크든 테크든 벌어만 주면 이름 따위는 아무 상관없었다. 그는 주당 3,400원에 3,000주를 한 번에 매수했다. 이 점이 경마와 달랐다. 경마는 좁고 진폭이 큰 반면 주식은 넓고 수익률이 완만하다. 해서 주식은 금액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다. 1억 투자해서 2천 버는 투자자가 1천 투자해서 1천 버는 투자자보다 결과적으로 더 우수하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길게 보면 1억이 1천으로 떨어지고 1천이 10억이 될 수도 있는 게 주식세계였다. 백팔만 씨는 4천을 2천5백으로 만들었으니 이쯤에서 ‘탈법자’의 지도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팔지 않으면 손해가 아니라는 말도 있다. 주식은 긴 승부다. 당신이 건 말이 하루 여섯 시간씩 한 달 내내 뛰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반년, 1년, 3년, 심지어 30년 동안 뛰고 있는 말도 있다. 마주 워렌 버핏의 말들로 워싱턴 포스터, 코카콜라, 질렛 같은 이름을 달고 있다. 그의 말 중 포항제철이란 대한민국 말도 몇 년 째 잘 뛰고 있다. 이제 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세우고 그동안 누적된 상금을 털어가도 될 터인데 아직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뛰어 본 놈이 또 뛴다는 얘기인가? 그런데 그것들은 처음부터 검증된 명마들이었다. 백팔만 씨는 명마에다 수십 년 묻어들 자금도 배짱도 인내도 없다. 당장 눈앞에서 질주해다오! 이것이 백팔만 씨가 말이건 주식이건 주문하는 바였다

230만 주의 거래량 중에 그의 3천 주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대양에 물방울 하나 보탠 듯 칠성 테크의 시세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칠성 테크가 뭐하는 회사인가? 전자 장비업체 같은데 10년 사이에 시세가 딱 백분의 일 토막 났다가 지금은 그 일의 열배 수준에서 놀고 있었다. 백팔만 씨는 원래 그가 사고파는 주식의 내용과 경영자의 됨됨이 따위를 따져본 바 없었다. 경마장에서도 말의 상태를 보고 베팅한 지도 언제였는지 기억이 까마득하다. 그런 걸 안보고도 잘 맞추는 사람은 잘만 벌어갔고 말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고 찍었다가 낭패를 본 적도 있었던 것이다. 진짜 전문가들은 그런 걸 다 따지겠지만, 당나귀 신사 백팔만 씨는 소액 베팅꾼답게 개미답게 전문가의 추천을 얌전히 따르거나 동료 따라 부화뇌동하는 걸로 일관하고 있었다.

헉, 시세를 보고 있던 백팔만 씨가 기겁했다. 칠성 테크 15만 주 사자! 한칼에 15만 주 사자가 떡 들어온 것이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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