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제위께서는 혹시 잊지 못할 어떤 밤을 갖고 계신가? 어떤 대낮은 있으시다고? 뭐 아무튼 세월이 지나도,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생생히 되살아나는 밤이 있다는 게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거기엔 저마다 하나의 사연이 있을 터, 1987년, 1999년, 2007년의 어느 밤이 바로 그러한 밤이다. 그 밤은 사랑하는 연인이 떠나간 밤이기도 하고, 주식이 휴지가 된 날 밤이기도 하고, 똥말이 제일 먼저 결승선에 머리를 들이민 날이기도 하고, 담배를 안 빌려준다고 10대들에게 두들겨 맞은 날이기도 하다. 어찌 그뿐이랴. 그 밤은 겨울 바닷가를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차분히 거닌 밤이기도 하고, 그랬던 그 사람이 너 죽고 나 죽자며 목 조르려고 달려들던 공포의 밤이기도 하다.
아니다. 그 밤은 아무 일도 없었다. 사건도, 행운도 불행도 없었다. 그저 시선, 허공에서 얽히는 뜨거운 시선, 살짝 닿은 손끝에서 전해오는 심장이 타들어가는 전율만이 있었다. 그냥 그대의 입가에 머무는 단순한 미소였던가? 때론 밤풍경, 언덕에서 내려다 본 거대한 도심, 밤 버스에서 바라본 어두운 강, 그 강 건너 불빛이었던가? 왜 그 밤들이 유독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걸까? 그것은 각자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기로 하자. 따라서 우리는 이 밤을 이토록 길게 묘사하는 까닭에 대해 특별히 변명하지 않기로 했다. 주지하다시피 때론 긴 밤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살찐 뱀 같은 마담의 허벅지가 밤은 여기부터라고 또 속삭이고 있지 않은가.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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