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2021년 11월 9일 저녁은 가을이었습니다.11월 10일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왔습니다. 하루 사이에 계절이 바뀝니다. 1910년 8월 28일은 국호가 조선이었습니다.하루가 지나고 이 땅에 조선은 사라졌습니다. 하루 사이에 나라를 잃었습니다. 모든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합니다.수많은 아이도 밤에 생겨납니다.하루라는 것은 역사의 일부가 아닙니다.한순간, 하루는 온전한 역사 자체입니다. 어제까지 사랑이 아니었다가 오늘 사랑이 되고어제까지 피지 않았던 꽃도 오늘 핍니다.하루를 살아가는 우리가 하루를 사랑하고하루에 성심을 다하여
촛불―매형에게 1.그곳에가고 싶다들고 싶다외치고 싶다진실과 정의북받친다나 아무것도 아니지만네까짓 게 뭐냐 하겠지만서도나 아무것도 아니기에막, 가고 싶고 들고 싶다 2.하늘엔 예쁜 별그 아래 비스듬 애들 키만큼눈썹 달 하나 그리고 나비록 가재골 머리 허연 노땅이지만 3.촛불 드는 토요일이면 가고 싶습니다남부터미널 김밥집 앞씨뱅이 모자에 똥배낭 하나 걸머메고벌 치는 사람처럼 버섯 캐는 사람처럼도서관 갔다 오는 사람처럼합류하고 싶습니다시대가 아무리 타락해도, 막가도 기름져도진실과 정의, 무엇보다 양심 지니고 사는언년이 언놈이들, 끓는 피
물푸레 촛불 그해 겨울딱 한 번광화문에 올라갔다진눈깨비 오는 날 대부님나그리고 미카엘라이렇게 셋 우리 작게아주 작게들었다보탰다 시작 메모성체를 모신다. 작은 밀떡 쪼가리지만, 아무 맛도 없지만, 지극히 단순하지만 영혼에 기쁨을 주고 힘을 준다. 성체를 받아 모시고 가난을 청한다. 내 비록 내 돈 벌어 내가 쓴다지만 맛난 음식 먹는 것도 죄요, 멋진 옷 입는 것도 바로 죄요, 귀에 좋은 노래, 달게 자는 잠 또한 죄가 되려니와. 한가할 ‘한’, 늙을 ‘로’, 한가하게 늙는다는 이 이름 석자야말로 더더욱 죄스럽구나. 아직 늦지 않았으니
인권의 기본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인데 가해자 편을 들면서 인권을 갖다 붙이는 건 인권이 아니다. 인권중독, 인권영웅주의에 걸리면 안 된다. 인권폭력이 될 수 있다. 탁상공론 내로남불 추상적 인권만 옹호하고 구체적 실제적 사례적 인권은 외면하는 표리부동에는 진정성이 없다. 인권 수업을 듣는데 죄짓는 애들에 대해 뭐라했더니 그러면 안 된다, 잘못된 생각이다, 싸잡아서 그러지 말라해서 너무나 인권 강조하기에 감동받아 그런 학생을 좀 대화라도 해 주시라 했다. 그렇게 인권 얘기를 하면서 학생이 감옥갈 상황이면 누구
축 사망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겸손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오늘의 부고엔 절대 겸손해지지 않으련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가을의 막바지에 다까끼 마사오는 죽었고 그 죽음에도 겸손하지 않았다.눈이 내리던 그해 12월 어느 날 교문에는 장갑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잔인한 4월이 잔인하게 지났고 계절의 여왕이라는 달에 광주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하였다.M16 총부리엔 대검이 꽂혔고 그 날카로움은 열정의 청년 복부를 찔렀다. 오늘 그놈이 죽었다.사형 언도에 무기징역 죗값을 치루던 놈을 대국민 화합이라는 미명하에 사면이라는...국민은 분
희망 고문 붙잡고 삶을 지탱하는 사이계절은 바뀌어 단풍들고 낙엽진다희망 고문의 시간 계절이 바뀌는 동안에도시냇물은 말없이 흐르고냇가에 심겨진 은행나무계절의 변화에 노랗게 물든다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 노랗다힘들어 지친 세상도 온통 노랗다노랗게 지친 사람 사이의 끈은 끊어진 것일까적막한 시간에도 물은 지칠줄 모르고노랗게 물든 은행잎 한 잎 두 잎 물 위에 떨어진다물은 은행잎을 품고 은행잎은 물을 붙잡고바다를 향해 간다끊어진 줄 알았던 사람 사이의 끈자세히 보니 끊어지지 않았구나이어져 있구나단단하구나
철학과 같다. 철학이 질문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선 여러 질문을 통해 인간 기원, 생명, 우주, 물리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태양이 플라즈마라고 하는 얘기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 지구처럼 딱딱한 땅이라 생각해서다. 우주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형태의 다양한 구성이 존재한다.이명현 교수의 강의를 들은 적 있다. 우주의 기원과 발달과 변천사 등 다양하게 잘 풀어내 설명하신다. 외계인이 존재하고 몇 만년의 광속을 뚫고 지구에 오기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요즘 미국도 UFO의 존재를 인정
1. 불안의 씨앗 숲속 별채에서 은은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어디선가 뻐꾸기가 울었다. 아미(蛾眉) 같은 초승달이 소나무 가지 끝에 걸려 있었다. 나무 그늘의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별채의 들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호흡을 안으로 삼켰다.별채는 환하게 황촉불이 켜져 있었고, 그 문 앞에 근위병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봄바람이 소나무 가지를 저울질할 때마다 초승달이 수줍은 듯 얼굴을 갸웃거렸다.잠시 후 별채의 문이 열리며 호롱불을 앞세운 여인이 나타났다. 소나무 그늘에 숨은 사내는 그 걸음걸이를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그는
김장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텃밭에 배추와 무수를 심으셨다.일곱 식구 겨우살이 양식을 준비하신 것이다.해마다 이맘때쯤 배추를 뽑으신다.배추 뿌링이는 우리들 몫이다.흙 묻은 뿌링이는 칼로 덕덕 긁는다.뿌링이 맛이 오묘하다.고소하고, 매콤하고, 달콤하기까지... 엄마는 속이 꽉 찬 배추를 준비한다.떡잎을 다듬고는 칼로 쫘악 가르신다.큰 포기는 네 쪽, 작은놈은 반굵은 소금 푼 물에 절구고하룻밤 재운 후 깨끗이 헹군다.갖은양념 버무린 속은 참 맛있다. 어우리 온 아주머니들과 김장이 시작된다.아버지는 돼지고기 앞다릿살을실로 꽁꽁 동여매고된장
반려견 구름이와 걷는 산길부끄러웠던 어제가 일어서고술 덜 깬 부시시한 얼굴에소나무 사이를 헤집고 온 바람이 멎는다고개들어 바라보는 하늘가흰구름 타고 흘러가는 반란의 꿈총소리와 포연없는 코로나19와의 전쟁언제 끝나려나 이 놈의 전쟁방역대책 때문에 경마가 멈춰 매출도 멈췄는데지원 업종에 해당되지 않아 손실보상금조차 받지 못하는 처지눈덩이처럼 커지는 근심과 걱정 위로시시각각 고리의 대출이 공격한다가슴 옥죄이는 쪼들림에 숨이 멎는다자본의 힘이 가난을 짓누를 때시선 둘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산책로 위로회오리 바람 인다그래
■ 힌두쿠시를 넘어서리더를 망치는 병, ‘자만과 과욕’ 페르시아를 점령한 이후 알렉산스로스는 점차 동양적 전제군주 통치에 맛을 들였다. 다리우스 3세를 죽인 박트리아 기병대장 베소스가 스스로 페르시아 왕을 칭하자, 알렉산드로스는 휘하 장수 프톨레마이오스를 보내 그를 추격토록 하였다. 그러자 베소스는 박트리아에서 피신해 옥수스강을 건너 소그디아나로 도망쳤으나 결국 추격하던 마케도니아 군대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다리우스 3세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러준 알렉산드로스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생포해온 베소스를 페르시아의 관례에 따라 극형에 처
두 번째 눈 어쩜 저리 얌전히 오실까?그리도 머언 먼 하늘에서그리도 먼 길을 내려오는데지친 기색일랑은 아예 없고소리 없이 조용히 오실까? 오신 눈은 소리 없이 녹는다.소리 없이 녹는 눈은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누군가에게는 눈물이다. 더러는 소복소복 싸인다.싸이는 눈은 순백의 아름다움으로 대지를 덮는다.인간이 저지레를 떤 자리를하얗게 감싸준다. 누군가의 눈물을위로로 감싸주는 따뜻함은순백의 눈보다 아름답다.
6. 교시(郊豕) 대왕 사유는 태백산 천지의 폭포 밑에서 유숙하며 목욕재계부터 했다. 천제에 참여하는 제주(祭主)인 대왕을 비롯하여 축관(祝官)·헌관(獻官)·집사(執事) 등 제관들은 모두 3일 동안 목욕재계를 통해 몸과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데 지극정성을 다하였다.물은 칼끝으로 찌르는 듯 차가웠다. 몸이 물을 거부했지만, 마음은 칼끝 같은 아픔도 인내로 받아들였다. 목욕재계를 하는 제관들은 모두 그저 묵묵히 웅덩이에 들어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속세의 때를 벗겨냈다.마침내 삼월 삼짇날, 천제를 지내기 위해 대왕을 위시한 제관들과 전렵
첫눈 사랑하는 마음들이 반짝이다가하늘로 올라별들이 된단다. 별들이 서로 사랑을 하다가아랫녁이 그리워첫눈으로 내린단다. 첫눈이 내리는 날에정동길 안 카페에서 만나기로 한40여 년 전 혜숙일랑은 잘 있으려나? 첫눈은때로는 반가움으로 내리고때로는 그리움으로 내린단다.첫눈에 반한 첫눈처럼네게 첫눈에 반하고 싶다.
■ 페르시아 원정‘아시아를 지배하는 왕’을 꿈꾸다 그리스 도시국가인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가 왕자(王者)의 재목으로 떠오른 것은 12세 때 부케팔로스라는 명마를 만나면서부터였다. 부왕 필리포스 2세는 테살리아의 말 장수 필로니쿠스에게 13탤런트를 주고 ‘소 대가리’라는 뜻을 가진 부케팔로스를 샀다. 숯 덩어리처럼 검은 말이었는데, 배에 소 대가리 모양의 흰 무늬가 있어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었다. 당시 1탤런트는 육체노동자 20일치의 임금에 해당하므로 꽤 비싼 값에 구입했는데, 성질이 워낙 사나워 누구도 말 등에 올라타는 사람이
콤포스텔라 2 아아나 같은 새끼도거기갔다 왔네 시작 메모내가 나를 진정 무참히 짓밟을 때 찌그러뜨릴 때 나는 얼마나 깨끗한가 맑은가. 나는 이제야 시다운 시를 가지게 됐습니다. 나는 내 시 중에서 이 시가 가장 자랑스럽습니다. 신춘문예 당선작 보다도, 다른 사람들 어떤 시보다도 자랑스럽습니다. 내게서 이런 시는 앞으로 또 나오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는 내 시집 전부보다 이 시 한 편을 사랑합니다. 기뻐합니다. 자주 이 시를 떠올리며 짧지만 아주 오래오래 읽습니다. 아아, 나 같은 새끼도 이런 시를 썼습니다.
5. 멧돼지 사냥 태백산의 눈 녹은 물이 흘러내리면서 땅은 축축한 습기를 머금었고, 하늘에 그물을 친 듯한 나뭇가지마다 연초록의 이파리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미 녹음 짙은 숲속에서는 새들이 잔치라도 벌이는 듯 짹짹거리며 암수끼리 다투는 소리들로 분주했다. 그 소리는 막 기지개를 켜고 깨어나는 숲의 수런거림 같았다. 그런 가운데 잎보다 먼저 피어난 봄꽃들로 인하여 숲은 나날이 화려하게 변신을 거듭하고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태백산 기슭이 시끄러워졌다. 대왕 사유가 이끄는 고구려 군사들과 태백산 주변에 흩어져 사는 말갈족들이 참여한 전
산다는 건 길을 걷는 것입니다.그 길은 물리적인 길과 마음의 길이 있지요.마음길을 걷는 것은 연습이 필요합니다.성찰하고 되돌아보고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길은 둘이 걷기도 하고 홀로 걷기도 합니다.혼자 걷는 길도 외롭지만 둘이 걷는 길도 외롭습니다.둘이 함께할 때의 외로움은 훨씬 크게 다가옵니다.걷다가 갈림길을 만나면 선택이 필요합니다. 아픔을 이겨 내는 것입니다.수없는 아픔을 만나고수없는 상처가 남기도 합니다.그 많은 아픔과 상처를 마주하며 이겨 내고 치료하며 살아갑니다.아픔에 가위눌릴 때면 삶이 끝나는 것입니다. 꿈을 꾸는 것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