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별도 없이 매서운 손님이 찾아왔다. 우리를 너무도 당황케 만든다. 손님이 주인이 된 격이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동선을 바꾸고 각별히 살피며 주시한다. 도대체 왜 이렇게 무례한 걸까. 수소문 끝에 알게 된 정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바이러스이다. 미미한 존재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손과 발을 단번에 옭아맨다. 모든 것이 느려졌다. 아니 질주하던 사람의 움직임이 멈추고 물자의 이동과 돈의 흐름이 멈추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외국과 왕래가 없어도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는 하나이기에 모든 흐름이 막히면 일상이 고립된다. 지
새해 소망과 2020년 2019년의 해가 저물고, 2020년의 해가 떠올랐다. 새해의 마지막과 시작은 늘 가족과 함께해야 한다는 엄마의 성화에 이기지 못하고 강릉에 갔다. 차를 타고 3시간을 내리 달려 도착한 강릉은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곳이었다. 방한용 귀마개를 두고 온 것이 후회될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부는 안목항을 거닐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2019년의 나는 참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20대가 되었고, 예술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들어가 나와 비슷한 전국의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으며, 대학과 가까운 곳에 거처를 얻게 되
고스케 안에 있던 어떤 끈이 뚝 소리를 내며 끊겼다. 아마도 그건 아버지 어머니와 맞닿아 있기를 바라는 마지막 마음의 끈일 터였다. 그것이 뚝 끊겼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에 나오는 말이다. 사업에 실패한 가족과 야반도주를 하고 있던 아들 고스케가 아버지에게 느꼈던 끊어진 마음의 끈이다. 나도 그런 마음의 끈이 끊어졌었다. 말을 하는 건 화해를 할 수 있다는 거다. 동생과 대화하고 싶지 않다. 미안해하면 받아 줘야하기 때문에. 남 뒤통수를 치는 사람과 신의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 끊어진 마음의 끈은 다시 붙지
2020년의 절반이 빠르게 지나갔다. 자영업자였던 우리 아빠는 백수가 되었고 현재는 가끔 하는 잡다한 일 외에는 일을 쉬고 계신다. 뉴스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떠들던 일이 어느 순간 나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금방 지나갈 것 같던 태풍이 아예 집을 짓고 머물러 버리니 누군가는 포기해야 할 것이 생겼다.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상의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많은 것이 바뀌었고 당연했던 것이 가장 어려워졌다. 더군다나 나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 모든 것을 느끼며 하루 빨리 이 상황이 마무리되길 바래야했다. “몸에 손대지마세요.”, “저
엄마가 코로나19 확진자의 밀접 접촉자가 되어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었다.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코로나가 내 삶 속으로 툭, 떨어진 순간이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엄마는 이미 안방에서 마스크를 쓰고 자가격리 중이었다. 굳게 닫힌 안방 문 앞에서 나는, 내 목을 타고 넘어오는 수많은 걱정의 말들을 집어삼키기 위해 몇 번이고 주먹을 쥐어야 했다. 엄마, 나 왔어. 딸 왔어? 밥은 먹었고? 오늘 별 일 없었어? 나는 억지로 밝은 목소리를 내며 재잘재잘 이야기했다. 오늘은 카페에서 전공 공부를 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고생했어. 그리고는
“오늘도 코로나 19 소식 전해드립니다. XX 지역에서 추가확진자가 ••” 지긋지긋한 일상의 반복. 매일 우리는 우리를 지독하게 괴롭히고 있는 바이러스의 소식에 시달리고 있죠. 사람들은 우리에게 익숙했던 평범한 일상을 그리워합니다. 내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 보며 밥을 먹고. 소풍을 가고, 쇼핑도 하고, 축제도 즐기고.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우리도 모르게 스며들어 있던 소소한 행복들,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느낄 수 있게 되었죠. 나는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이번 연도에 새로 대학에 입학하여 흔히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 소독도 자주 하고 나름대로 하는데도 도통 손님이 없어서......."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친구의 힘없는 목소리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제 겨우 자리를 잡는 것 같다고, 단골손님도 제법 늘어 좋다며 한껏 부풀어 있었는데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힘듦으로 지쳐가는 모습에. 우리네 삶이라는 게 한 치 앞을 모른다는 말처럼, 느닷없는 상황에 걱정이 앞선다. 코로나19로 모두 힘들고 어려운 날을 보내지만 그중에도 친구처럼 소상공인들에게는 힘듦이 배가 되는 것 같다. 그 힘듦을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우
코로나 바이러스가 생겨난지 벌써 8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지난 8개월동안 사람들은 새로운 생활방식에 적응해야했다. 예를 들어 은행업무나 학교수업, 회의 등 비대면으로 해결해야하는 상황들이 굉장히 많아졌고 실내에 들어갈땐 수시로 체온을 측정해야했다. 처음엔 이런 방식들이 어색하기도 부담스럽기도 했다. 이제는 마스크를 써야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고 어디든 입구에 체온계와 손소독제가 있다. 물론 우리가족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나는 대학교 실습 전공 졸업반임에도 학교에 나가지 못한채로 종강을 했고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셨던 엄마는
요즘 코로나 떄문에 다들 힘드시죠. 코로나 때문에 모두가 아프고 힘들지만 더욱 더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발달 장애인들과 그들의 가족들입니다. 저는 금천구의 한 장애인 자립 생활 주택에서 발달 장애인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 가족 중에는 장애인이 없지만 몇 년 째 장애인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고 또 지역 커뮤니티에서 장애인들과 그들의 부모님과의 교류를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힘들어 하는 코로나 상황에서 그들이 얼마나 더욱 더 힘들어 하고 있는지를 내 일 처럼 생각하며 안쓰러워 하고
초중고 개학이 하루 이틀 밀리던 때 우리 회사는 격주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다른 팀은 수월했지만 디자인팀이 문제였다. 그리고 나는 그 문제의 디자인팀이었다. 하하. 다른 팀들은 문서작업을 주로 하기에 집에 있는 PC나 노트북로도 충분히 업무가 가능했다. 안타깝게도 디자인팀은 아니었다. 디자인 작업용 PC가 있는 팀원은 상관 없었지만, 나처럼 PC자체가 없는 사람은 방도가 없었다. 맥북으로도 디자인을 할 수 있다고 우겨 보았지만 생산성이 떨어져서 안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요?(속 뜻은 나더러 저걸 들고가라는 말이냐.
현대인에게 마스크란 무엇인가? 코로나 시대 이전에도 마스크는 오염된 공기를 막아주고, 2020년에는 코로나 예방 필수 아이템으로서 든든한 현대인의 방어구가 되어줬다. 실로 고마운 존재이지만, 현대인은 마스크를 혐오한다. 전 세계 사회에서 반 마스크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아직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 없이 번화가를 누빈다. 해외에서는 마스크를 거부하는 행위예술이 행해지고 있다. 전염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유일한 갑옷을 미워하는 실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나 자가 격리할거야” 이 말을 하기 전의 나에게도
연일 비상 사이렌을 울리며 음압 병동이 마련된 종합병원 응급실을 향해 달려가는 구급차의 긴 행렬이 우리 시민들의 가슴을 울린다.자태를 뽐내며 시샘하는 봄꽃들도 코로나19의 재앙 앞에서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악마의 재앙으로 쑥대밭이 되어버린 대구의 현 상황이 온 세상에 알려지면서 ‘2020 대구의 봄은 숨이 멈춰 버리기 일보 직전이다. 전국 각지로부터 자원봉사를 자처한 수많은 의료진과 의료물품 그리고 구급차 비상 사이렌 울음소리가 하모니 된 현실 앞에서 우리 대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고난의 길을 힘겹게 걸어가고 있다.
각진 것들은 모서리를 가진다. 둥그런 것들에선 찾아볼 수 없는 날카로운 모서리. 각진 책상, 각진 가방, 각진 문, 각진 창틀. 이것들은 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모서리에 부딪히거나 긁히면 상처가 생기거나 멍이 든다. 심하면 찢어지기도 한다. 모서리가 있는 것들은 날카롭고 예민하다. 대신 각이 딱 잡혀 있기 때문에 균형이 무너지는 일은 없다. 사람 또한 그렇다. 겉모습만 보고선 알 수 없는 은근한 모서리를 가지고 있다. 건드리면 안 되는 콤플렉스일 수도 있고 자존심일 수도 인정 욕구일 수도 있다. 모서리에 대한 해석은 하나를 콕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첫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코로나에 대한 것을 잘 인지하지 못했었다. 아니 발생했단 사실을 알지도 못했단 사실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아직 한국에는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이었으며, 무엇보다 그때의 나는 내가 제일 먼저였고, 내 삶이 가장 중요했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나는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고작 27살이라는 나이에.그러다 2020년 1월 중순이 넘어가던 때, 한국에도 첫 확진자가 나타났다. 첫 확진자의 등장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확진자의 수는 점점 더 늘어만 갔다.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20살이 된 전라북도 군산에 거주하고 있는 전수연이라고 합니다.현재 방학을 맞이하여 공모전을 찾아보고 있는 도중에 미디어피아 에세이 공모전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코로나 이겨내기’라는 주제를 보고 당장 공모전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작년 고등학교에 졸업하여 올해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요, 저는 올해 졸업식도 하지 못하고 입학식 그리고 대학교 OT까지 못해봤습니다. 그리고 코로나19 상황으로 1학기 전체 비대면 수업으로 진행하게 되어서 지금 현재까지 학교도 한 번도 발을 디뎌본 적이 없습니다
‘까똑왔숑!’ “응? 바쁜데 누구지?” 정신없는 미소로 손님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요란하게 울린 남편의 카톡 메시지. [너 어디야? 고3 엄마가 돼서 생각이란 걸 하는 거냐? 지금이 어떤 때인데 제정신이면 당장 그만둬. 적어도 막둥이 시험 끝날 때까지 만이라도 그만두라고.] 무방비 상태에서 날아온 익숙하고 일방적인 메시지. 아르바이트도 엄연히 신뢰를 기반으로 계약을 하고 일하는 곳인데, 앞뒤 설명 없이 날아온 메시지는 또 한 번 내 마음을 쿵하고 울린다. 세 아이를 키우다 보니 많지는 않지만 쏠쏠했던 부수입과 무엇보다도 갱년기의
난 요즘에 엑시트라는 영화를보았다그 영화는 재난 영화지만 어딘가 모르는 부모님에 사랑이느겨졌다 거기 나오는 줄거리는 이랬다 몇년째 백수로 집에서 배나 긁으며뒹굴뒹굴하는 아들이지만 그 아들을 향한 아버지 박인환의애닳는부성과 아들이 잘못될까 싶어몇번이나 까무러쳤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하는 어머니 고두심 큰 누나 김지영의 동생에 대한 애틋함이 인상 깊었던 영화였다 난 갑자기 영화 엑시트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잠시 저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이 대목에서 나의 어머니 애기를 하려고한다 전 이제부터 제 애기를 할검니다 들어주세요 물론 약간 다름니다
미디어피아 '코로나 이겨내기' 에세이 공모전장려상, 명종숙님, '우리 현장 사람들' 어떤 사람들은 속된 말로 우리 현장 사람들을 ‘노가다 꾼‘이라고 표현했다. 그 말속에는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그들을 저 밑으로 내려놓으려는 하대의 누린내가 진하게 풍겨 나오고 있었다. 나는 계절이 네 번 바뀌는 동안 건설 현장에서 그들과 함께했다. 경리직원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했던 그곳에 일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느끼지 못한 그 어떤 것들을 가슴 뭉클하게 느끼며 보냈다. 지천명의 나이를 넘긴 나도, 손에 굳은살이 연륜만큼 두꺼워진 노무자들도 생전
미디어피아 '코로나 이겨내기' 에세이 공모전장려상, 천현숙님, '새여름' 코로나 이후 얼굴보기가 부쩍 어려워진 아들이 오랜만에 저녁을 먹으러 집에 들렀다 "어머니는 언제가 가장 행복하세요?""지금" 시차 없이 튀어나온 단호한 어투는 얼마나 급하게 말했던지 비장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밥을 먹던 아들의 뜬금없는 물음에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오듯 순식간에 대답했다.사실이다. 가족 모두 모여 밥을 먹는 이 시간. 시간을 멈추고 싶을 만큼 행복한 시간이다. 말기 암 진단을 받던 날, 아이들에게는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 자
미디어피아 '코로나 이겨내기' 에세이 공모전장려상, 임호연님, '아이들의 즐거운 울림이 희망이 되어' 저는 장애학생들을 가르치는 특수교사입니다. 1월 말 긴 겨울방학을 마치고 오랫만에 아이들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설레였습니다. 그러나 교육부는 개학을 며칠 앞두고 개학연기라는 사상초유의 발표를 하게 됩니다. 2019년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우한폐렴에 감염된 사람이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코로나 19’라는 정식 명칭의 감염병은 지구를 공포에 떨게 하였습니다. ‘개학은 연기되었지만 그래도 며칠 지나면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겠지?’라는 막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