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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겨내기] 일단 잘 살고 있습니다.

mediapiawrite
  • 입력 2020.10.2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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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피아 코로나 이겨내기 에세이 공모전에 참여해주신 박원경님의 작품 '일단 잘 살고 있습니다' 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삶의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무언가 어색하고 답답함이 찾아온 일상이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적응했고 '일단 잘 살고 있습니다'.
변해가는 우리 일상의 모습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내 앞에 주어진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살아가는 작가님의 일상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시크한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어려움과 위기를 극복해냈듯이, 지금 이 순간도 언제 그랬냐는 듯 이겨내리라 믿습니다.

미디어피아 코로나 이겨내기 에세이 공모전에 참여해주신 박원경님의 작품 '일단 잘 살고 있습니다' 입니다.

 

초중고 개학이 하루 이틀 밀리던 때 우리 회사는 격주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다른 팀은 수월했지만 디자인팀이 문제였다. 그리고 나는 그 문제의 디자인팀이었다. 하하. 다른 팀들은 문서작업을 주로 하기에 집에 있는 PC나 노트북로도 충분히 업무가 가능했다. 안타깝게도 디자인팀은 아니었다. 디자인 작업용 PC가 있는 팀원은 상관 없었지만, 나처럼 PC자체가 없는 사람은 방도가 없었다. 맥북으로도 디자인을 할 수 있다고 우겨 보았지만 생산성이 떨어져서 안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요?(속 뜻은 나더러 저걸 들고가라는 말이냐. 였다.) 내가 가져다 줄게. 네?! 부장은 그렇게 집까지 PC를 가져다 주었다. 부장은 귀찮아 하는 듯 하면서 금요일마다 PC를 배달했다. 쿠팡맨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나. 회사로 복귀 할 때 쯤 부장은 더 이상 PC 배달을 못하게 된 것을 아쉬워 했다.

강제 재택근무에 들어간 첫 날은 좋았다. 한시간은 더 잘 수 있어서. 둘째날은 그냥 그랬다.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니까 늦게 잠들었기에 아침이 더 힘들어졌다. 셋 째날 부터는 어서빨리 회사에 가고 싶었다. 집에서 일하는 딸이 익숙해진 부모님의 수다가 꽃을 피웠기 때문이었다. 일하는 도중 방문이 벌컥 열렸다. 밥먹어! 뜨악. 수화기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화통하시네~ 나는 회사 사람이랑 전화하고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엄마! 아직 12시도 안됐어! 됐어 식어 빨리 먹어! 격주 재택근무의 마지막 주가 되어서야 어머니는 회사 점심시간이 12:30~13:30인걸 외우셨다. 물론 그렇다고 밥을 그때 먹은 건 아니었다. 밥은 항상 12시 즈음에 내 방으로 배달(?)이 되었다. CCTV 있는 것도 아닌데 먹으면서 해! 날선 어머니의 목소리와 다르게 밥은 참 따뜻했다. 

부모님의 목소리를 자체 음소거할 수 있을 때 쯤. 교복 입은 학생들이 등교를 시작했고 후즐근하게 입은 우리도 회사로 복귀했다. 오랜만에 보니 회사 사람들이 낯설었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점심시간도 변화시켰다. 대부분의 직원이 약속했다는 듯이 편의점 도시락을 사먹었다. 편의점에서 신상 도시락이 이렇게 자주 출시되는 줄 몰랐다. 하루마다 겉포장지가 다른 신상 도시락이 내 주린 배를 반겨 주었다. 몇 주를 편의점만 가다 보니 주인 아주머니랑 친해질 수 밖에 없었다. 아주머니는 신상 간편식이 나오면 우리에게 추천을 해 주셨다.(공짜로 주진 않았다. 구매 유도를 하셨을 뿐.) 우리는 편의점 신상 베타테스터들처럼 꽤나 진지하게 맛 평가를 했는데, 우리의 평을 듣고 아주머니는 발주를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 같았다. 이쯤 되면 우리가 기미상궁이 된 것 같은데. 유통기한 지난 것좀 달라고 할까? 절대 주지 않겠지. 시시껄렁한 소리를 하며 오늘도 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즉석식품 봉지를 뜯었다. 여름이 다가올 즈음에 우리 회사 사람들은 편의점 간편식의 마스터들이 되어 있었다. 개개인마다 나름의 레시피를 만들었는데 이름들이 재미있다. O주임표 편스토랑, P대리의 헬창이 되고 싶니 등 각자의 캐릭터에 맞게 이름도 붙였다. 내 레시피는 B주임의 이슬만먹고살아요. 주식이 탄산수와 샐러드다보니 초록색만 있다고 붙여진 레시피였다.

손소독제 필요한 사람 가져가세요. 다른 팀 분이 한아름 작은 손소독제를 회사에 뿌렸다. 오 무슨 일이에요? 집에서 할 일이 없더라구요. 할 일이 없다고 이걸 만든다구요? 날개없는 천사세요? 그 분은 집에 할머니가 있어서 모든 식구가 외부 약속을 안 잡는 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 가장 도움이 될 만 한게 손소독제 만들기였다고. 재료 다 때려 넣고 잘 섞기만 하면 되니 제일 시간이 덜 걸려서 아쉽다고 말했다. 다른 건 뭐 해보셨는데요? ....술안주 만들기? 밖을 못나가니까 집에서라도 예쁘게 먹고 싶어서.. 실제 그분이 보여준 사진들은 #갬성 #감성샷 #감성술집 이라는 태그가 어울릴만한 술집에서 볼 안주들이었다. 요리라고는 손도 안 대던 사람이 얼마나 심심했으면 안주를 만들 생각이 들었을까 싶었다. 하긴 나도 심심해서 운동을 시작했지. 진짜 저마다의 방법으로 이 시간을 해쳐나가고 있구나. 멋쟁이들이네. 

집에서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이런 말들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디지털 노마드라니, 뉴노멀이라느니, 언택트 사회라느니 짐작가는 뜻은 있지만 그렇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코로나 19가 대한민국에 ASAP으로 왔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의 적응력은 무섭게 빨랐다.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현재 생활에 적응을 하고 있었다. 각자만의 방법으로 말이다. 코로나 포비아도 생겨났지만 착한 임대료 운동, 기부, 자발적 대구행 등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행동들이 더 많았다. 

나도 간접적으로 위에 해당하는 것들을 실천 했다. 누가 하라고 시켜서가 아니라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마스크가 넉넉하니 약국에서 파는 마스크는 안 사야겠다. 이런 간접적인 행위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코로나 19를 피하고, 동동거리기 보다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코로나 19로 모든 것이 마비되었다고는 하지만 봄 꽃은 졌고, 여름에는 초록 이파리들이 즐비하게 피어났다. 이제 또 가을이 되면 노랗고 빨간 단풍이 반길 것이다. 코로나 19를 예방하되 지배당하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 대단히 적응력이 빠른 사람들이니 앞으로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너도? 나도! 야나*의 광고가 떠올랐다. 근데 진짜 우리는 이겨낼 수 있다. 우리는 시크한 한국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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