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촌 윤 한 로산 호랑이 같은 가난,허물어진 굴뚝자리 곁말발굽을 엎어놓았다여름 이엉 썩는 빈 집삐뚜딱한 돌절구 아가리 깊숙이 실낱 거미줄 치고말라비틀어진 쥐똥 몇 알서껀고작 오가리 한 장 매달았을 뿐별 묘리 없어라미욱하니 마소 구융으로나 쓸 밖에진종일 영감타구 혼자 끙끙 앓는책상물림 다산의 적성촌숭의전 붉은 벼랑 쓸고 가는 강물 소리만 배불러 터지누나시작 메모다산 정약용의 연천 ‘적성촌’ 집들은 북풍에 이엉이 걷혀 서까래만 앙상하다. 묵은 재에 눈이 덮여 부엌은 차디차고 쳇눈처럼 뚫린 벽엔 별빛이 비쳐 든다. 집 안 곡식이라곤 개
토빗 윤 한 로나 토빗은낯설고 먼 아시리아 니네베에 안나와 아들 토비야와 많은 동포들과 함께 포로로 끌려왔다 그러나 나 토빗은 한평생 선을 베풀고 의를 행했다늘 조심하여 이민족의 음식을 먹지 않았고고아와 과부들을 돌보았다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으며헐벗은 사람들에겐 입을 것을 주었다억울하게 죽어 성 밖에 던져진 동포들의 주검을 보면 남몰래 묻어주었다온 마음과 온 힘을 다 해 죽음을 무릅쓰고 진리를 따랐다 애오라지 선만을 바라 뚜욱 하니, 올곧던 토빗높은 자리에서 떨려나 쫓기는 몸이 되었건만비록 가난에 지치고 늙어 힘마저 빠졌
비 오는 날 윤 한 로싸구려 분내를 풍긴다돈짝만학 벚꽃 이파리들이 한 움큼씩 진다 밟힌다봄비 내리는 유원지울긋불긋한 놀이기구도 젖고개천 축대 위 갑을 하숙도 이미 젖고길게 머리 푼 반동가리 버드나무들음울타가난하고 다리 저는 처녀 화가 애가 나오던가문득 손창섭의 ‘비 오는 날’이 생각난다오늘 같은 날은컴컴한 골방 구석에 틀어박혀다시 한번 읽고 싶다, 그 소설사타구니 쓸며 쓸며고리타분하게시작 메모생각만 해도 음울한 ‘비오는 날’ ‘잉여인간’의 손창섭. 육이오 전후의 밑바닥 현실과 가난과 침통의 작가. 음울하고 음울타. 우리 한국 문학을
유세련은 마돈걸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의 알몸을 감싼 대형 타월이 어째서 흘러내리지 않고 그대로 붙어있는지 궁금해 하고 있었다. 타월의 양 끝을 묶지도 않았고 손으로 잡고 있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몸의 라인을 살려가며 앞뒤로 팽팽하게 돌아가고 있냐 말이다. 결론은 그녀의 터질 듯 솟아오른 젖가슴이 타월이 미끄러지는 걸 방지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는데, 타월도 남자가 벗겨줘야 하는 건지 유세련은 알 수가 없었다. 드레스의 뒷자크를 아래로 내리고 블라우스의 뒷단추를 하나하나 풀어준 적은 적잖이 있지만 타월을 벗겨준 적은 없었던 것이
모텔 엘리베이터의 특색은 두 사람이 들어서면 꽉 찰 정도로 좁다는 것이다. 이는 전국모텔협회가 권하는 이상적인 형태로,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굳이 설명하지는 않겠다. 우리의 대단한 마돈걸과 천하의 바람둥이 유세련이 좁은 엘리베이터에서 입술을 맞대고 9층까지 올라갔다는 건 사실이었다. 키스는 매우 낭만적인 행위로 여자에겐 순수와 매혹, 깊은 공감을 의미하는 바가 있다. 그런데 유세련에게 키스는 그런 정서적인 의미보다는 그냥 빨아먹는 행위에 가까웠다. 새 사탕을 빠는 것, 사탕 맛은 여자마다 다른데 떨떠름하기도 하고 맹물 같기도
화수분 윤 한 로골방 속초저녁 풋잠 한 불 했다허섭스레기 입성 홀닥 벗은만신 할매걀걀 잠지만 골려 쌌고 보소들, 별 쌀다 떨어졌네!우묵한 하늘 복판화수분 구럭무녀리 홀로둥두렷달 고프다시작(詩作) 메모밤이 좋다. 하늘이 좋다. 촌 동네가 좋다. 거기에다 골방 속에서 홀딱 벗고 자는 할마씨들까지 하며. 아름다운 것보다, 깊은 사색이나 명상보다 이런 궁상이, 가난이 좋다. 궁벽이야말로 나를 맑게 해 주는 뿌리이다. 먹을 쌀은 다 떨어졌지만 하늘엔 오히려 화수분처럼 별이 퐁퐁 샘솟는다. 또 달은 둥두렷 밝게 떠 배고프고도 배부르게 한다.
쥐며느리 윤 한 로윗목엔 꿔다논 보릿자루 서말만 이루저루염생이 누린내 풍치는 벼름박 뿔뿔뿔뿔 기어나와 갑자기 코를 박고 죽은 척하는잿빛 식솔(食率)들팔뚝 팥알점처럼 타들어간다시작(詩作) 메모여름밤은 은하수 흐르는가. 별똥이 긴 꼬리를 그으며 산 너머 쌓이고, 미류나무 옥수수 잎사귀에 파아란 바람이 부는가. 밤 뻐꾸기 새도록 울어예는가. 개울이 졸졸 맑게 노래하는가. 그건 아니잖은가. 아니잖은가. 벼름박 위 걸어놓은 소쿠리 떨어지는 깊은 밤, 작은 서슬에도 죽은 듯 엎드린 잿빛 저놈들은 무엇인가. 가난과 서글픔과 궁상 속에 자신을 송
막다른 길 윤 한 로길 한복판 벌거벗은이상의 아해들이 똥을 누네예닐곱 주른히 앉아 똥 누기 놀이를 하네 한 놈이 일어나네다음 놈이 일어나고또 다음 놈이 차례차례 일어나네웬일인지 한 놈이 일어나질 않네끝끝내 일어나질 못하네먹은 게 없어나올 게 없네낑낑 이마에 시퍼런 힘줄 돋우며한 아해가 가난을 누네햇빛을 누네쓰라린 시대를 누네굵은 콧물 빨아마시며째질 듯한 똥구멍으로불을 누네막다른 길 한복판이상의 한 아해가파아란 저녁 연기를 누네시작 메모‘날개’, ‘오감도’를 쓴 천재 시인 이상은 서울 종로에서 이발사 아들로 태어나 공고 건축과를 나와
개떡 윤 한 로장 뜨는 뙤약볕파리 왱왱뒀다가 줘야지!엄마 생각난다골백번 쥐락펴락육손이개떡 한 쪼가리까만 손때에씻기고 씻겨아롱다롱무지개 서리누나시작 메모인천 송림동에서 살았는데 그때 애들 중에 육손이가 있었다. 오른손 엄지 손톱이 두 갈래로 갈라져 여섯 개였다. 육손이랑 놀 때 언뜻언뜻 손가락 여섯 개가 달린 조그만 손이 쑥 펼쳐질 때마다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웠는지. 그런데 육손이는 가난했고 늘 헬쓱하니 기운이 없고 외로웠다. 육손이 같은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나 내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송림동 8번지에 살던 착한 육손이는
지난주에 우리는 마돈걸이 경마장에 나타나면, 그 뛰어난 자태와 패션으로 남정네들이 넋을 잃을뿐더러 여자들의 질시까지 집중적으로 받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비스타인가 싶어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자들까지 있었던 것이다. 당나귀 신사 백팔만은 한가한 오후 일식집에서 사케를 마시고 있는 마돈걸의 몸매와, 몸매를 감싸고 있는 패션 감각에 내심 감탄하였다. 과천 경마장에 오는 여성 경마팬들이 모두 그녀처럼 이렇게 아름답게 차려입으면 얼마나 보기 좋을까 생각해보았다. 사실 오페라 극장에 가듯 경마장에 옷을 차려입고 간다면, 보기 좋은 걸 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