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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길 (윤한로 詩)

서석훈
  • 입력 2010.06.2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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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길
윤 한 로


길 한복판 벌거벗은
이상의 아해들이 똥을 누네
예닐곱 주른히 앉아
똥 누기 놀이를 하네
한 놈이 일어나네
다음 놈이 일어나고
또 다음 놈이
차례차례 일어나네
웬일인지
한 놈이 일어나질 않네
끝끝내 일어나질 못하네
먹은 게 없어
나올 게 없네

낑낑
이마에 시퍼런 힘줄 돋우며
한 아해가 가난을 누네
햇빛을 누네
쓰라린 시대를 누네
굵은 콧물 빨아마시며
째질 듯한 똥구멍으로
불을 누네
막다른 길 한복판
이상의 한 아해가
파아란
저녁 연기를 누네


시작 메모
‘날개’, ‘오감도’를 쓴 천재 시인 이상은 서울 종로에서 이발사 아들로 태어나 공고 건축과를 나와 시청 건축 기사로 일했다. 원래 본 이름이 김해경이었는데 공사판 잡부가 김씨를 이씨로 잘못 알고 “이상, 이상” 부른 걸 그 이름 마냥 좋아 죽을 때까지 자기 이름으로 삼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실은 잘 아는 친한 화가가 지어 준 이름이라고들 한다) 이상이 쓴 글은 난해하지만 쉬우면서도 좋은 글들도 많다. 수필이 그런데 꾸밈없고 티없이 깨끗해서 가슴 뭉클하다. ‘권태’라는 수필 속에 나오는 벌거벗은 적발동부(머리를 빡빡 깎은 아이) 두메산골 애들 얘기를 시로 써 봤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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