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파 호텔의 주방 메뉴는 훌륭했다. 모모(만두)와 툭바(국물국수)와 차오민(볶은국수) 중에서 어느 하나를 가장 맛있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모두 다 먹자마자 힘이 날 정도로 훌륭했다. 다르질링의 어떤 식당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별미였다. 도착해서 한숨 자고 난 후에 먹었던 툭바는 낭아(검은 물소)의 살덩어리를 뼈 채로 삶은 육수에 거친 밀가루 국수를 말고 수육 몇 점과 고소를 얹었으며 우리의 산초 비슷한 향신료를 살짝 뿌렸다. 밤에 먹었던 모모는 낭아의 생고기를 고소와 함께 다져서 속을 채웠다. 다음날 아침에 먹은 차오민은 유채 기름
마을 어귀가 보였다. 운무 속에서 나타난 마을은 이승 같기도 하고 저승 같기도 했다. 드문드문 사람들도 나타났다. 쟁기 비슷한 농기구를 수선하는 젊은 남자, 자느라고 목이 꺾인 애를 업고서 뜨개질 하는 여자, 기도 바퀴를 돌리며 어딘가로 열심히 걸어가는 노인. 제각기 무언가에 열중해 있는 그들의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는 듯 했다. 불쑥 나타난 털북숭이 개조차 나그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혹시 유계에 발을 딛지 않았나 싶어서 오소소 소름이 돋을 때, 저만치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과연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
식은땀을 흘리면서 꿈을 꾸다가 깼다. 무슨 꿈이었을까? 부엉새처럼 생긴 여자의 커다란 두 눈만 잔상처럼 남았다. 펨 도마에게 뇌까린 거짓말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왜 그랬는지 후회스럽고 부끄러웠다. 날이 밝으면 펨 도마를 대면할 일이 두려웠다. 펨 도마의 아리땁고 순진한 얼굴이 떠오르는 자체가 고통이었다. 눅눅한 침낭을 배낭에 쑤셔 넣었다. 복도로 나와서 산장의 출입문을 살그머니 당겼다. 뎅그렁 뎅그렁, 출입문에 매단 쇠 방울이 몇 번 흔들렸다. 운무 자욱한 마당에는 간밤에 나를 방에 데려다 주었을 늙은 남자가 향연(香煙)이 뭉클뭉
취하면, 취한지도 모르고 취한 기이한 상태가 되면, 처절하거나 비통한 이야기를 꺼내어 과장하고 각색하는 자가 거기 있었다. 창작한 대사를 도취 상태로 읊는 배우가 거기 있었다. 상대의 관심을 끌어내고, 자신에게 몰입하게 하고, 동정과 위로를 얻는 자가 거기 있었다. 그는 붉은 술을 마시면서 펨 도마에게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실종된 딸을 찾아 나섰다고 펨 도마에게 말하고 있었다. 딸은 펨 도마 또래이며 펨 도마와 많이 닮았다고도 했다. 기독교 계통의 봉사단 일원으로 석달 동안 네팔에 체류하면서 임무를 마친 딸은 한 달
온 길을 되짚어서, 그러니까 실리콜라 강을 거슬러서, 끝없이 이어지는 서글픈 상념에 잠겨서, 흙먼지 이는 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걷는 중에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기도 했다. 누가 따라오는 것 같았지만 따라 오는 사람은 없었다. 따라 오던 사람은 상념 속에 스쳤던 어린 시절의 나였다. 이제는 나라고 할 수도 없는 그 소년이, 이제는 나라고 할 수 없는 그 사내를 따라가고 있었다. 한 시간 이상 그렇게 걸어서 마을과 마을 사이의 한적한 길에 접어들었는데, 길가 언덕 위에 서 있는 나무가 보였다. 실리콜라를 따라 일본 청년들과
일본 청년들은 저마다의 상념에 젖어서 뚝뚝 떨어져 걷고 있었다. 나는 맨 뒤에 한참 떨어져서 걸었다. 내 앞에 가는 한 일본 청년은 산모퉁이 길로 접어들 때마다 돌아서서 손을 흔들었다. 다르질링으로 가는 막차가 떠날 시간이 가까워졌으므로 어서 오라고 보내는 신호였다. 염려 말라는 뜻으로 나도 손을 흔들어 주다보니 나는 길 떠나는 식구를 배웅하러 나온 그 동네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멀리 떠나온 게 아니라 돌아와 있는 것 같았다. 길가의 마을들은 그토록 친숙했다. 마을마다 까말라가 입은 것과 같은 종류의 손뜨개 스웨터를 입은 아이들
이튿날 아침에 보니 룸부네 집 부엌에 어린 소녀가 있었다. 먼 산동네에 사는 친척 집에서 데려다 기르는 소녀라고 했다. 장작을 나르고, 물을 길어 오고, 그릇을 씻는 등 허드렛일을 하면서 학교에 다닌다는 여덟 살 소녀의 이름은 까말라. 까말라는 연꽃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까말라가 입은 스웨터는 우리가 어렸을 때 입었던 것과 흡사했다. 주변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절, 어머니들은 헌 스웨터의 실올을 풀어서 둥글게 감아놨다가 다시 스웨터를 떠서 아이들에게 입혔다. 까말라가 입은 스웨터는 바로 그것과 흡사했다. 얼핏 촌스럽게 보이지만 두
롯지의 주인 룸부 셀파는 고모부를 너무나 많이 닮았다. 천 년 만 거슬러 올라가면 조상이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강인해 보이는 뼈대와 질긴 근육, 불거진 광대뼈와 날카로운 눈, 쇳소리가 나는 음성……. 그러나 웃는 모습은 더 없이 순박해 보이는 것까지 닮았다. 그것은 몽골리언의 공통적인 특질일지도 모른다. 룸부 셀파는 60세라고 했다. 고모부는 그 나이에 이미 노쇠해졌지만 룸부 셀파는 나이답지 않게 건장했다. 그는 아직 해지기 전인데도 유쾌하게 취해서는 부인에게 술 한 병 더 가져오라고 했다. “좋은 술이다. 밑에 내려가
오후 2시. 람만을 향해서 출발. 존이 배웅해 준다며 따라나섰다. 키 큰 금송 숲 샛길을 타박타박 걷자니 노래가 절로 나왔다. 존은 내년에 대학에 가서 자연 과학을 공부한 후 특수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연 관찰 학교 교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오전에 산비탈에서 내려다보았던 사만딘 마을을 지나 람만 지역에 들어설 즈음 말 세 마리를 몰고 오는 청년 셋을 만났다. 한 명은 텍 호텔의 둘째 아들이고, 다른 두 명은 팔루트 산장의 산장지기와 그의 동생이었다. 셋 다 검은 고무장화를 신었다. 검은 고무 장화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우
다시 날이 밝았다. 변소에 가야 되고, 이를 닦아야 하고, 밥 먹고 길을 떠나야 하는 아침이 온 것이었다. 그런 일상이 권태롭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유리창 밖에는 햇살과 운무가 뒤섞이고 있었다. 운무 속에서 나무들이 나타났다 사라졌고, 파란 하늘이 보이기도 했으며, 운무를 뚫고 날아오르는 새가 보이기도 했다. 동쪽 하늘의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났다. 8시쯤에야 산장을 나서서 외벽에 세워둔 대나무 지팡이 하나를 챙겨 들었다. 하산 길은 파란 시누대 숲 사이로 나 있었다. 걷기 좋았다. 시누대 숲에서
8시쯤 팔루트를 향해 떠났다. 뒤따라 온 일본 청년들이 앞질러 갔다. 산등성이 길은 완만했다. 심한 비탈은 거의 없었다. 응달진 곳에서는 잔설(殘雪)을 밟고 걸었으며 때로는 랄리구라스 숲 사이를 걸었다. 우리나라 철쭉이나 진달래와 흡사한 랄리구라스의 붉은 꽃망울에는 하얀 눈꽃이 붙어 있기도 했다.하늘은 그날따라 유난히 파래서 머리에 물을 이고 걷는 듯했다. 산길은, 걸으면 걸을수록 오히려 멀어지는 듯한 칸첸중가를 향해 북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바람도 심상치 않게 불었다. 비나 눈이 올 것 같았다. 산닥푸
아침 6시. 바람은 여전히 사납게 불었다. 체왕 롯지 앞의 룽따는 곧 찢어질듯이 펄럭였다. 바람 때문에 고원은 더욱 황량하게 느껴졌다. 언덕 위에서 히말라야가 펼쳐져 있을법한 북쪽을 바라봤지만 히말라야 쪽에는 두꺼운 구름이 장막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구름 위로 해가 솟고 금빛 햇살이 마을 골목을 비출 때 쯤 멀리서 뎅그렁 뎅그렁 쇠방울 소리가 들리더니 검은 소들이 허연 입김을 뿜으며 올라왔다. 이 소들은 고산의 소 야크와 저지대의 물소의 교배종인 ‘조’인데 등에 땔감을 잔뜩 짊어졌다. 체왕 호텔 부엌에서는 벌써 아침 준비하는 연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