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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17 ] 림빅

김홍성
  • 입력 2020.07.09 15:14
  • 수정 2020.07.0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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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종점이 있는 마을 림빅이었다. 길가에 크고 작은 상점들이 좌우로 죽 늘어서 있었다. 옷가게, 그릇가게, 쌀가게, 대장간이 나왔고, 값싼 화장품과 장신구와 털실 등을 파는 가게가 나왔으며, 시계나 라디오 그리고 손전등을 수선하는 집이 나왔다. 그리고 선술집과 여인숙과 약방과 학교와 버스 종점이 나왔다.

ⓒ정연희 

 

일본 청년들은 저마다의 상념에 젖어서 뚝뚝 떨어져 걷고 있었다. 나는 맨 뒤에 한참 떨어져서 걸었다. 내 앞에 가는 한 일본 청년은 산모퉁이 길로 접어들 때마다 돌아서서 손을 흔들었다.

 

다르질링으로 가는 막차가 떠날 시간이 가까워졌으므로 어서 오라고 보내는 신호였다. 염려 말라는 뜻으로 나도 손을 흔들어 주다보니 나는 길 떠나는 식구를 배웅하러 나온 그 동네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멀리 떠나온 게 아니라 돌아와 있는 것 같았다. 길가의 마을들은 그토록 친숙했다.

 

마을마다 까말라가 입은 것과 같은 종류의 손뜨개 스웨터를 입은 아이들이 눈에 뜨였다. 좀 취한 탓인지, 아이들이 입은 스웨터 모두가 까말라가 입은 것과 같은 사람이 뜬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곧 콜라 가게의 양지바른 처마 밑에서 뜨개질을 하는 여자를 보았다. 그 여자는 포대기에 싼 젖먹이를 옆에 뉘어 놓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어머니 같은 미소를 지으며 타시델레하는 티베트식 인사말을 했다.

 

어느 길모퉁이에서는 소 세 마리를 앞세우고 걸어오면서 뜨개질하는 젊은 여인도 보았다. 그녀는 실 뭉텅이를 담은 작은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었는데, 소가 남의 채마밭으로 들어가려 하자 어느새 뜨개질 감을 한 손에 모아 쥐고 다른 한 손으로 돌을 주워 던져 소를 밭에서 쫓아냈다. 그리고는 다시 뜨개질을 하며 걸었다.

 

그런 걸 보면 동네 아이들이 입은 스웨터는 대개 어머니나 누이들이 떠 준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아이들 중에 누군가는 룸부네 동네 람만에서 하산한 여행자가 들러 며칠 묵으면서 떠 준 스웨터를 입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녀를 만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큰 마을이 나왔다. 버스 종점이 있는 마을 림빅이었다. 길가에 크고 작은 상점들이 좌우로 죽 늘어서 있었다. 옷가게, 그릇가게, 쌀가게, 대장간이 있었고, 값싼 화장품과 장신구와 털실 등을 파는 가게가 있었으며, 시계나 라디오 그리고 손전등을 수선하는 집이 나왔다. 그리고 선술집과 여인숙과 약방과 학교와 버스 종점이 차례로 나왔다.

 

멀찍이 앞서 갔던 일본 청년들은 커다란 화물 트럭 옆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뭔가 상의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중 한 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급하게 손짓을 했다. 그에 의하면 막차는 1시에 이미 떠났다. 그런데 화물 트럭이 다르질링으로 출발하려는 참이라고 했다. 그는 일행이 온다며 트럭을 붙잡아 두고 있었던 것이다.

 

트럭이 시동을 걸었다. 시커먼 매연이 뿜어져 나왔다. 일본 청년들은 차례로 트럭에 오르고 마지막 한 명이 운전석 밖으로 머리를 내민 트럭 기사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손짓을 했다. 배려가 고마웠지만 도무지 트럭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 그 동네에서 하루만이라도 더 묵고 싶었다.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트럭은 떠났고, 트럭이 뿜어낸 시커먼 매연과 먼지 속에 남았다. 나는 이사 가는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처럼 허전하게 돌아서서 온 길을 되짚어 걸었다. 그때 내 발걸음은 아는 사람이 남아 있지 않은 옛 고향에 돌아온 나그네의 그것이었을 것이다. <계속> 

 

* 위 사진의 뜨개질하는 여성들은 산닥푸 팔루트 능선 너머 네팔 땅에 속한 어느 산골 마을의 여성들이다. 뜨개질 하는 사진이 없어서 고심하던 차에 페북에서 이 사진을 발견하고 기뻤다. 현지에서 이 사진을 촬영한 정연희 씨는 현재 경남 진주에서 살고 있다.

정연희씨의 페이스북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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