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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16 ] 까말라

김홍성
  • 입력 2020.07.08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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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술에 얼큰해져서 걸었던 그 길은 지금 생각해도 꿈결 같다. 랄리구라스 꽃 숲을 벗어나면 나타나는 마을마다 복숭아꽃 살구꽃이 화사하게 피고 있었다. 그야말로 꽃피는 산골이었다. 문득 산 위의 룸부네 마을이 궁금해서 돌아보았으나 랄리구라스 꽃 숲이 시야를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에 보니 룸부네 집 부엌에 어린 소녀가 있었다. 먼 산동네에 사는 친척 집에서 데려다 기르는 소녀라고 했다. 장작을 나르고, 물을 길어 오고, 그릇을 씻는 등 허드렛일을 하면서 학교에 다닌다는 여덟 살 소녀의 이름은 까말라. 까말라는 연꽃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까말라가 입은 스웨터는 우리가 어렸을 때 입었던 것과 흡사했다. 주변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절, 어머니들은 헌 스웨터의 실올을 풀어서 둥글게 감아놨다가 다시 스웨터를 떠서 아이들에게 입혔다. 까말라가 입은 스웨터는 바로 그것과 흡사했다. 얼핏 촌스럽게 보이지만 두 손의 노고가 깃든 것이어서 봄날 꽃동산처럼 따스하고 정감 있어 보였다.

 

설거지를 하느라고 스웨터의 소매를 걷어 올린 까말라의 가느다란 팔을 보면서 누가 그 스웨터를 떠 주었는지가 궁금했다. 룸부에 의하면, 보름 쯤 전에 다녀간 여행자가 떠 준 것이었다. 그 여행자는 티베탄 전통 의상인 바쿠 차림의 젊은 동양 여성이고, 며칠 묵는 동안 대체로 말없이 뜨개질만 하고 있었기에 이름이나 국적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버스나 기차, 대합실이나 카페에서 뜨개질 하는 여행자들을 더러 보기는 했지만 이런 산골까지 와서 아이들 스웨터를 떠주는 여행자도 있을 줄은 몰랐다. 다르질링의 티베탄 난민촌 어느 골목에서 스친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여인은 햇살 가득한 마당에 빨래를 널어놓고 문 앞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작별하기 전에 룸부는 머그컵에 담긴 따뜻한 락시를 내왔다. 그는 다음에 꼭 다시 오라면서 이젠 친구이기 때문에 한 달을 있어도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룸부네 동네를 벗어나 랄리구라스 꽃 숲 사이로 난 산비탈 오솔길을 걸었다.

 

ⓒ김홍성

 

실리콜라 강에 내려선 때는 오전 10시경이었다. 강가에 아담한 산장이 있었다. 저마다 어여쁜 꽃을 피운 작은 화분들이 처마 밑에 조르르 놓여 있는 산장이었다. 그 집 딸인 아리따운 처녀 펨 도마가 가져온 술은 붉은 빛이었다. 우리나라의 진달래술처럼 랄리구라스 꽃을 꼬도 락시에 담아 숙성시킨 술이었다. 그 술은 향기로웠으며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느낌도 좋았다.

 

술이 독했나 보았다. 호텔 앞 현수교(懸垂橋)를 건너자니 어질어질했다. 비탈을 올라설 때는 몹시 숨이 찼다. 대숲이 우거진 실리콜라의 맞은편 언덕에 올라서니 넓은 길이 나왔다. 길은 대숲이 끝나자 점점 넓어지더니 산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새로운 마을이 나타나곤 했다. 집집마다 룽따가 높다랗게 펄럭였고, 처마 밑에 늘어놓은 화분의 꽃들이 가난한 집 어린 딸들처럼 애처로웠다.

 

길에 나와 놀던 아이들이 타시델레하고 인사했다. 털북숭이 강아지들도 꼬리를 흔들며 왕왕 짖었다. 길 밑으로 실리콜라 강이 까마득하게 내려다 보였다. 강 건너로 마주 보이는 산은 시킴 땅에 속했다. 비탈이 심한 산의 옆구리에 계단식 경작지와 마을과 길이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거기쯤에서 다시 만난 일본 청년들은 다르질링에 가자마자 시킴 입경 허가를 받겠다고 했다. 인도 당국은 외국 관광객들에게 1년에 1회에 한해서 15일간의 시킴 관광을 허가해 주고 있었는데 다르질링에서도 수속이 가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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