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베이지의 노래 [ 14 ] 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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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14 ] 람만
  • 김홍성
    김홍성 ktmwind@naver.com
  • 승인 2020.07.0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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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초입 오른쪽 언덕에 조촐하게 자리 잡은 ‘셀파 롯지’에 여장을 풀었다. 화단에 예쁜 꽃들이 피어 있었다. 장작 타는 연기가 운무에 젖은 마당 구석구석 퍼지고 있었다. 어렸을 때의 고모네 여인숙에 온 것 같았다.

 

오후 2. 람만을 향해서 출발. 존이 배웅해 준다며 따라나섰다. 키 큰 금송 숲 샛길을 타박타박 걷자니 노래가 절로 나왔다. 존은 내년에 대학에 가서 자연 과학을 공부한 후 특수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연 관찰 학교 교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오전에 산비탈에서 내려다보았던 사만딘 마을을 지나 람만 지역에 들어설 즈음 말 세 마리를 몰고 오는 청년 셋을 만났다. 한 명은 텍 호텔의 둘째 아들이고, 다른 두 명은 팔루트 산장의 산장지기와 그의 동생이었다. 셋 다 검은 고무장화를 신었다. 검은 고무 장화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우리나라도 산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장화를 즐겨 신는다. 그들이 길섶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중에 길 저쪽에서 또 두 사람이 나타났다. 자기 몸보다 더 큰 짐을 진 땅땅한 체구의 사내들이었다. 그들은 텍 호텔의 둘째 아들과 구면인지 반갑게 인사하며 짐을 내려놓았다.

그들의 짐은 쌀이었다. 텍 호텔의 둘째 아들에 의하면 이들은 산 너머 네팔 마을 일람에서 쌀이나 감자를 지고 와서 목재로 바꿔서 돌아가는데 80Kg 씩 짊어지고 하루 만에 산길을 1백리 씩 걷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있는 동네 사람들의 표정을 보아 전혀 과장된 말 같지 않았다.

노란 꽃이 핀 유채 밭을 지나 꽤 큰 마을에 이르렀다. 골케이를 떠난 지 3시간 후였다. 역시 룽따가 펄럭이는, 굴뚝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목조 가옥들이 산비탈에 늘어선 그 마을이 람만(2,560미터)이었다.

ⓒ김홍성 

 

늦가을이면 수레 가득 실어다 양지바른 처마 밑에 차곡차곡 쌓아놓았던 굵은 참나무 장작들. 장작이 타는 아궁이와 연기 냄새……. 고모부는 고모를 장작개비로 때리기도 했지만 토끼나 새를 기르고, 꽃밭 가꾸기를 좋아하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고모부는 꽃밭 가운데에 조그만 연못도 만들었다. 연못의 둘레는 우리나라 지도 모양이었다. 연못에는 붕어도 있었고 뱀장어나 미꾸라지도 있었고 방게나 소금쟁이도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꽃밭 둘레에 친 흰 목책(木柵)을 넘어 들어가 연못을 들여다보며 놀곤 했다.

어느 날은 긴 막대기를 휘저어 물고기들을 이리저리 몰며 못살게 굴고 있었는데 누가 내 귀를 아프게 잡아 당겼다. 고모부였다. 대낮인데도 고모부는 취해 있었다. 고모부는 내 양쪽 귀뺨을 우악스러운 두 손으로 붙들어 번쩍 쳐들고는 내게 소리쳐 물었다.

원산 앞 바다 뵈니?”

명사십리 해당화 뵈니?”

한아바지 뵈니?”

한아바지 뭐르 하시니?”

귀 뺨만 아프고 뜨거웠지 보이긴 뭐가 보이나, 내 눈에는 북쪽을 향해 치달리는 산등성이 너머로 피난민 이불 보따리 같은 구름만 보였지만 거짓 대답을 했다. 원산 앞바다도 보이고, 명사십리에 해당화도 보이고, 한아버지(할아버지)도 보인다고 대답했다. 한아버지가 뭘 하시냐는 물음에는 얼결에 걸어 가셔요라고 대답했다.

고모부는 대답에 만족했는지 나를 땅에 내려 주었고 나는 고모부로부터 멀찍이 달아났다. 그날밤부터 내 꿈에는 해당화 핀 모래 해변을 걷는 어떤 영감님 모습이 보이곤 했다. 꿈이라는 것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며 엉뚱한 상념 속에서 갑자기 튀어 나오기도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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