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지당(上池塘), 중지당(中池塘), 하지당(下池塘) 하늘은 네모지고 땅은 둥근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에서 빚어낸향나무가 심어진 독특한 구조 종묘에는 세 개의 연못이 있다. 맨 위쪽의 연못을 상지당(上池塘), 중간은 중지당(中(池塘), 신도(神道) 왼쪽에 있는 연못이 하지당(下池塘)이다. 이 중에서 최초의 연못은 상지당이다. 조선 성종 때 국조오례서례에 실린 종묘전도에는 정전 남쪽에 연못, 지(池)가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이 지가 바로 상지당이다. 상지당은 주변이 우람하게 자란 나무들로 가려진 숲속에 있다. 조선시대 때는 이 연
미스 지아이 신발장 구석에 놓여있는 검정색 스웨이드 하이힐 한 짝을 보자 J가 떠올랐다. 그날 밤 그녀의 아버지는 정복을 입은 채로 현관문을 열었다. 장군은 나를 내려다보았고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가 눈을 부라리자 몹시 위축된 나는 빌려온 차 키를 떨리듯 흔들며 말했다. -저, 장군님. 따님을 모시고 가려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닫혔다. 올해 장군 진급대상자인 대령에게는 딸만 셋이 있었다. 특히 막내딸에 대한 사랑과 보호는 지나칠 정도인 장군은 자신의 소신인 금남의 집 원칙을 고수했다. 남자는 그 집에 얼씬
왕년의 영화배우 장화자논 오랜만에 논현동 커피숍에서 젊은 사내와 대화라는 걸 나누고 있었다. 건축 시행 일 및 각종 사업에 간여하고 있다는 놈은 매우 바쁘지만 특별히 시간을 내어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인상을 풍기며, 짜증나게스리 간간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문자나 카톡을 날려댔다. 그러나 대놓고 하는 전화통화는 자제하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너를 존중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경마도 여가 선용으로 하고 있다며 돈을 좀 잃어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했다. 장화자는 놈이 경마 할 돈이 있다면 나에게도 쓸 돈이 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벤치 윤 한 로아 아 문리대니 예대니 계집애들은왜 그렇게 깔깔거리는지스모르에 백구두에꾀죄죄, 시 나부랭이 좀 써보겠다고대학물 한번 먹겠다고 나 같은 놈팽이연천에서 올라와 나무 벤치 위외롭고도 마냥 쪽팔리더라청자 한 대 꿀리곤 신문지 한 장 뒤집어썼지스물둘 초여름파란 하늘에 흰 구름 한 덩어리천천히 천천히 흘러가도록시작 메모문학을 하겠다고 대학물 좀 먹겠다고 삼수하고 연천에서 올라왔는데, 스물두 살 내가 타던 84번은 지금도 아프게 한다. 대지 극장을 지나 미아리를 거쳐 창경원을 스쳐 화신 앞을 흘러 서울역을 나와 용산을 넘어 한강
이스라치 윤 한 로더두 덜도 아닌꼭 어제만큼 떨어졌네양재기에 한 홉큼 빨간 알갱이들꼭두새벽 이슬 머금어좀 시금털털하쟤아버지 오입 가 돌아오지 않는 된 밤, 파랗게 걷히고* 이스라치 : 산앵두나무 열매. 시작 메모붉은 버찌 알알이 깔린 아스팔트 언덕길을 오른다. 빗자루에 쓸리고 애들 발에 그렇게 짓밟히고 차바퀴에 으스러졌을 텐데 또 다시 어제만큼 깔렸다. 언제나 출근길은 화가 나지만 이것들로 참을 수 있다. 이 도시에서 이슬맺힌 버찌 언덕길은 내 마음에 ‘이스라치 깔린 산길’이다. 백석 시를 읽고 거기서 처음으로 이스라치라는 아름다운
민들레 윤 한 로가냥 두었더니 골대 뒤쪽까지죄 짓쳐왔네시퍼런 잎 곤두세우곤 이것들이,내 어렸을 적 촌충처럼 샛노래라애기똥풀꽃엉거주춤두 손가락 가만집어보네시작 메모날이 더워지기 시작한다. 갑갑해서 한두 번 야외 수업을 한다. 민들레들이 야산 언덕바지서 강당 옆댕이로, 운동장 축구 골대 골키퍼 자리까지 욱대기며 피어났다. 시퍼런 창 같은, 톱 같은, 칼 같은 이파리들 치마처럼 두르고, 샛노랑 꽃 한 송이씩 쑥, 찌그린 게 앳되다. 나한테 샛노랑은 다 촌충 빛깔이다. 어렸을 적 촌충을 가진 나는 얼마나 아프고 조용했던가. 이 민들레를 자
오늘 아침 윤 한 로뜨뜻미지근온통 흰 함박눈유리 위로 범퍼 위로작은 봉고 한 대 벚꽃 무더기 뒤집어썼다눈썹이며 귀며마치 개가 된 듯오늘 아침 시내 일번가 지나 머리 쓰는 일 하러 터덜터덜직장 올라가는 언덕길에도 꽃 그늘 확확 시리다나 또한 개, 무지개 되어 날뛰고파아, 흐드러진 벚꽃*재갸가 ‘갑’이라먼난 ‘을’쯤 될쳐* 재갸 : 채만식 소설 에서 ‘자기’를 ‘재갸’로 썼다. 구어(입말) 낱말이다. 시작 메모‘갑’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이른바 생활등산화가 나왔다. 정장 차림에 신고 출근했다가 바로 산으로 직행해도 되는 신발이다. 사면
쑥 윤 한 로다시 또 봄이 와쑥을 보면옥이가 생각난다지지리도 박복한옥이 기집애비 한차례 내리곤하이얗게 설운 목련보다 백배나 고와라언덕바지 쑥시작 메모 시골에서는 이맘때면 논둑이나 밭두렁에 파랗게 쑥이 돋았다. 봄볕 언덕바지 위에 쪼그려 쑥을 캐던 어머니와 누나, 동생, 처자들. 해진 노랑 회장저고리에 때묻은 다홍치마, 하나같이 가난하고 박복하던 평생 땅강아지 그 처자들. 나이가 먹을수록 짓무른 눈에 더욱더 그립다. 이 안양 바닥에서는 어디로 가야 쑥을 보랴. 마을버스를 타고 가다 얼핏, 남부시장 노점상 할매 신문지 위에서나 본다.
우리 동네 윤 한 로수풀우지 닭집수풀우지 세탁소, 엿공장아빠, 그저께 야쿠르트 아줌마랑우유 아저씨랑 결혼했대요, 헐 그러면? 언덕 위에 그림 같은 집 짓고서울대 아들 하나 쑥 낳으시래라사다리꼴 골목 사다리꼴 빌라사다리꼴 눈 맑은 사람들 동네시작 메모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가 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붙잡고 싸우고 있다. 누가 죽여주는 소설이라고 해서 보는데 지금 너무나 지겹다, 후회막급이다. 우리와는 먹고 입고 자고 살아가는 게 틀린 사람들 이야기라서 그런 것이리라. 남자와 여자가 마구잡이로 만나고 사귀고 사랑하고 헤어지
*발가락이 닮았다 윤 한 로하수구 노깡 밖으로 불쑥 삐져나온 듯발아 오늘도 종일 수고했다우둘투둘진초록 땀 밴 애개개, 모기에 몇 방 물린 이 소도둑놈아꽉 막혀실그러지고 삐그덕거리고아직도 바퀴가 되지 못한영원한 두 줄기 아날로그 발이여떠도는 뿌리여옹기종기 슬픈 발가락들 재미있게 닮았구나* 발가락이 닮았다 : 1930년대에 발표한 김동인의 단편 소설 제목시작메모진종일 낡은 랜드로바가 꽉 물고 있던 발을 꺼낸다. 어루만진다. 깊은 한숨과 땀 배고, 울퉁불퉁한 산과 강과 펑퍼짐한 들과 정든 언덕이 느껴진다. 돈도 명예도 다 차버렸구나. 발
여우비 윤 한 로어렸을 때쨍쨍한 햇볕 속에여우비 말갛게 뿌리고노랑 호박꽃에 벌 갇혀 붕붕거리고하여간에 무슨 일로 곤지랑 싸우는데곤지도 덤비고곤지 동생 모개도 덤비고괙괙 괙괙고추장 먹는 곤지네 거위까지 덤비는 바람에오금아 날 살려라내뺐다책보도 버린 채담배창고 녹슨 함석지붕 너머 쌍무지개 둥그렇던옛날에시작 메모배가 부르면 틀림없이 교만해져 불신자가 될 것이고, 또 배가 고프면 하릴없이 도둑질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인간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자인 솔로몬은 죽기 전에 하느님께 청했다. 가난하게도 하지 말고 그렇다고 부자가 되게도 하지
살찐 뱀 같은 마담과 가슴이 허한 배삼지 국장이 수상한 카페의 2인용 비닐 소파에 허벅지를 밀착시키고 앉아, ‘대담’이라고 할 수는 없고 ‘토론’은 더욱 아니고 ‘친교’가 합당할 같은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이쯤에서 돌아보자면, 도대체 우리의 허름한 당나귀 신사는 어디 갔으며, 관능적인 몸매와 뇌쇄적인 눈빛과 달착지근한 숨결의 마돈걸은 또 어디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작가가 생각하기에 당나귀 신사 백팔만 씨는 경마장에서 목돈을 날리고 크게 상심하여 몇 잔 약주를 걸친 다음 나귀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 걸로
라파엘의 집 윤 한 로목감 연립주택 골목 언덕바지아침부터 깨끗이 세수하고 앉았다가솜요대기 봄볕 마당에 나오니허블렁하니 좋아하구마을긋불긋 꽃나비 구경도 하고,옛날 같으면 웅틀붕틀 멍석자리백지 엿질금도 식, 쓸어보곤 오죽 좋으랴마는이제 다 모이믄 손뼉치며 노래 배네아침에도 감사 점심에도 감사 저녁에도 감사 감사 감사 감사 뭐 그런 노래라네상고머리 할마씨들 앙금앙금 열심히 배네 두살 반, 세살 반짜리 라파엘라들똥길 듯 하나도 똥기지 않네봄볕머리 다시금 싹틔운 겉보리 꽁무니께쭈글쭈글 말라비틀어져 달달하이시작 메모‘가브리엘’, ‘라파엘’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