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장서서 걸으며 생각해 보니, 스님과 내가 호텔 마리아 옥상에서 만났다가 다시 다르질링에서 만날 때까지 두 어 달 동안 스님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들어본 일이 없었다. 내가 물어본 일도 없었다. 스님과 작별하기 전에, 그러니까 내가 버스에 오르기 전에, 스님에게 그것을 물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그러자 궁금한 것들이 두서 없이 떠올랐다. 림빅의 누구네 집에서 묵었는지, 며칠이나 체류했는지, 람만의 룸부네도 아는지, 까말라와 까말라에게 스웨터를 떠서 입힌 여행자를 아는지...... 마침내 질문의 핵심을 찾은 나는 걸음을 멈
버스 종점을 둘러싼 짙은 운무 속에서 확성기 소리가 들려왔다.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그 소리는 다음날부터 시작될 파업에 적극 동참하자는 선동이었다. 확성기 소리가 아주 가까워지자 운무 속에서 시위대가 나타났다. 피켓이나 플랜카드를 들고 나타난 시위대는 구호를 외치며 우리를 향해 육박해 오고 있었다. 무선 통신기를 든 경찰들이 맨 앞이었다. 경광등을 켠 경찰차들도 따랐다. 시위대의 거창한 행렬이 우리 앞을 지나서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취생과 몽사는 떠났지만 스님은 아직 내 옆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이제
지프는 빈자리 하나를 채우지 않은 채 출발했다. 좌석을 채우려고 너무 오래 지체했다가는 우리 네 명을 포함한 이미 탔던 손님들까지 곧 출발할 다음 버스에게 빼앗길 것을 염려했으리라. 강물에 걸쳐진 큼직한 다리 이쪽에 체크 포스트가 있었다. 우리 네 명만 내려서 스탬프를 받았다. 지프는 다리를 건너 점점 운무가 자욱해지는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달리다 꺾고, 다시 달리다가 꺾으면서 계속 비탈길을 올랐다. 차창 밖은 온통 차밭이었다. 앞자리 승객 중 한 명이 차창을 열었을 때 내 눈은 차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운무를 보았고 내 코는
우리가 탄 버스의 종점은 조레탕이었다. 조레탕에서 다르질링으로 가는 버스는 이미 떠나버렸고 10인 승 합승 지프가 대기하고 있었다. 지프에는 네 명의 승객이 앉아 있었다. 두 시간 후에 떠나는 다음 버스를 기다리느니 합승 지프를 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우리 네 명이 올라가 앉으니 좌석은 두 개가 남았다. 차장은 '다르질링 다르질링'하고 행선지를 외치면서 손님을 부르고 있었고 운전사는 다르질링으로 갈 듯한 여행자가 보이면 금방 출발할 듯이 시동을 걸었다. 운전사가 또 한 번 시동을 켰다가 껐을 때 몽사와 나는 금방 온다고 말하고
운무는 가느다란 이슬비로 변했다. 이슬비가 아니라 무거운 운무였는지도 모르겠다. 노란 달맞이꽃이 형광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네이, 체링, 세따가 출렁다리 앞까지 따라왔다. 젖은 어깨에 걸쳐진 검은 머리칼에 이슬이 대롱대롱 맺혀있는 여자들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피어났다. 바바에게 들리겠다고 먼저 떠났던 몽사는 출렁다리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는 내가 가까이 가자 바바가 안 보인다고 말했다. “어디 갔을까요?”“잠깐 출타했나 싶었죠. 그런데 앞마당이 평소 느낌과 달리 휑해서 굴에 들어가 보니 접어서 방석으로 쓰던 담요며 담요 위에
몽사는 미련을 버렸는지 몰라도 나는 바바를 따라 가고 싶은 미련이 남았다. 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 배낭을 벗어 던지면 바바와 같이 걸을 수 있을 거다. 담요나 하나 장만하여 둘둘 말아서 어깨에 걸치고 걷는 거다. 바바가 자는 곳에서 자고, 바바 같은 깡통을 장만하여 바바와 함께 탁발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한 달 만 고생하면 어느 정도 적응이 될 거다. 나머지 여정은 6개월이든 1년이든 큰 문제가 없을 거다. ...... 문제는 내가 물것을 잘 타기 때문에 벌레가 나만 문다는 데 있다. 그것도 견디다 보면
숙소에 돌아와 장 보따리를 풀어 놓고 우리는 언제 떠날 것인가를 의논했다. 내일 아니면 모레가 적당했다. 또한 모레보다는 내일이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우리는 다음날 아침에 떠나기로 결정했다. 부탄 여성들은 몹시 서운해 했다. 특히 아네이가 그랬다. 아네이는 그새 정이 들어서 눈물을 글썽였다. 몽사는 바바에게 우리가 떠난다는 말을 전하러 갔다. 취생은 슬퍼하는 부탄 여성들을 위로하고 스님은 말없이 저녁을 준비했다. 나는 스님을 거들었다. 스님은 감자를 넣은 수제비를 끓였다. 홑이불 수제비라고 했던가? 밀가루 반죽을 홑이불처
몽사와 나는 영감네 가게에서 씨킴 위스키를 사다가 마시기도 했다. 그 와중에 취생과 몽사의 속사정을 어설프게나마 추리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은 다 같이 앉아서 무상 스님의 인도 만행에 대해 들으면서 배를 잡고 웃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말했다. 스님은 남의 말을 잘 들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남이 물어보는 말에도 성의 있게 대답했다. 그러나 불교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불교에 대해서는 질문을 해도 대답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도 잘 모르거나, 말로는 아무리 가르쳐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따또바니의 온천
잠시 후 바위에서 아네이가 내려왔다. 아네이는 굿 모닝, 밝게 인사하고는 탕으로 쑥 들어와 앉았다. 속옷이 물에 젖자 살이 비쳤다. 흰 면내의가 감싸고 있는 크고 탱탱한 젖의 윤곽이 드러났다. 나는 머리를 쳐들고 짐짓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가슴이 두근거렸다.서른이 넘은 나이라면 사내를 모르지 않을 텐데 내외하는 기색이 전혀 없는 아네이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가볍고 경쾌하면서도 어딘가 끈끈한 인도 가요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 풀주머니 같은 아네이의 살집이 감은 눈 속에 어른댔다. “코리아에도 이런 온천이 있나요?”콧노래는 언제 끝났
우리는 바바와 급속히 친해졌다. 바바의 섭생을 위해 마을에 가서 채소나 계란이나 우유를 구해 주기도 했는데 바바는 계란을 먹지 않았다. 바바는 계란을 감자처럼 모닥불에 구워서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몽사는 첫날부터 바바와 함께 살다시피 하더니 며칠 후에는 바바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모닥불을 지펴서 취사하고 탁발 나가는 모습도 촬영했다. 바바는 뼈만 남은 사람이지만 몸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사지를 자유자재로 비틀어서 꼬고 돌릴 수 있었다.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 몸통을 비롯한 사지의 일정한 근육만 부분별로 움직이기도 했다
“몽사는 저에게 말했죠. 부인과 이혼하겠다고. 하지만 이혼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유랑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이 여행이 끝나면 몽사는 부인에게로, 저는 큰 이모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돌아서는 취생의 눈에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내가 잘못 보았던 것일까? 눈물이 맺히는 순간 취생의 표정에 서릿발 같은 미소가 서렸었다. 슬픔이나 고통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만든 미소가 아니었다. 그녀의 내면에 있는 어떤 각오가 한 순간 빛처럼 반사된 미소였다. 이미 걷기 시작한 취생의 뒤를 따라 걸으며 내가 물었다. “스
“그렇게 야윈 몸으로 어떻게 그 먼 곳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된다.”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 나왔다. 바바는 나를 한 번 흘낏 보더니 다시 불을 보며 대답했다. “걱정 마라. 가느다란 시냇물도 계속 흐르기만 하면 결국 바다에 이른다. 그리고 보다시피 이제부터는 조금씩 섭생을 시작할 것이다.”바바는 깡통을 가리키면서 희미하게 웃었다. 몽사가 놀란 표정으로 바바에게 물었다. “여태까지는 안 먹었냐?”“한 달 넘게 먹지 않았다.”“엥?” “단식했다는 말이군요. 그러니까 저렇게 갈빗대만 앙상한 거 아니겠어요?” 취생이 이 말에 무상 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