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베이지의 노래 [ 86 ] 불어난 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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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86 ] 불어난 강물
  • 김홍성
    김홍성 ktmwind@naver.com
  • 승인 2020.09.14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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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사와 나는 영감네 가게에서 씨킴 위스키를 사다가 마시기도 했다. 그 와중에 취생과 몽사의 속사정을 어설프게나마 추리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은 다 같이 앉아서 무상 스님의 인도 만행에 대해 들으면서 배를 잡고 웃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말했다.

 

스님은 남의 말을 잘 들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남이 물어보는 말에도 성의 있게 대답했다. 그러나 불교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불교에 대해서는 질문을 해도 대답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도 잘 모르거나, 말로는 아무리 가르쳐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따또바니의 온천물은 서서히 식어갔고 강물은 눈에 띄게 불어났다. 두어 차례 둑을 높여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온천 손님은 우리가 마지막이었나 보았다. 기껏해야 동네 농부들이 저녁 어스름에 땀에 전 옷을 입은 채 들어앉아 피로를 풀고 갔다.

 

스님과 취생과 몽사가 검문소가 있는 조레탕 시장에 장보러 갈 때 아네이와 세따와 체링이 따라나섰던 일이 있다. 나는 빨래를 지키고 있었는데 투망으로 물고기를 잡는 어부가 나타났다. 그는 급류가 한 번 꺾이는 자리를 노려보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그물을 던져 많은 물고기를 잡았다.

 

그는 잡은 물고기들을 집어넣는 큼직한 구럭에 소금을 뿌렸다. 물고기가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지느러미가 발달한 큼직한 놈들을 몇 마리 사서 개울가에 모닥불을 지피고 혼자 구워 먹었던 그날, 시장에서 돌아온 취생이 말했다.

 

시장에 가더니 아네이가 사탕을 한 봉지 샀어요. 사탕 좋아하는구나 싶었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길에서 만나는 고만고만한 아이들 손에 사탕을 하나씩 쥐어 주는 거였어요. 오는 버스 안에서는 남의 아이를 뺏듯이 자기 무릎에 앉히고 손수건으로 콧물까지 닦아주더군요. 그러면서 부탄에 두고 온 자식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고 했어요.”

 

몽사도 한 마디 했다.

체링 때문에 시장을 몇 바퀴 돌았는지 모릅니다. 체링은 살아있는 닭을 잡아달라고 할 수는 없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미리 잡아 놓은 닭을 찾으러 다니는데 있어야 말이지요. 결국 차를 마시러 가자고 하고는 나 혼자 슬쩍 빠져나와서 닭 집에 갔지요. 닭 장수가 닭을 잡는데 기분이 이상합디다. 전에는 닭 잡는 걸 봐도 별 부담이 없었는데 오늘은 갑자기 살생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부탄 여자들은 일을 소꿉장난처럼 즐겼다. 밥할 때도, 채소를 다듬을 때도, 설거지할 때도, 청소할 때도, 빨래할 때도 노래를 했다. 누군가 혼자 콧노래로 시작한 노래가 금세 합창이 되기도 했다. 넓적한 바위 위에 빨래를 널어놓고 앉아서 노래 부르던 그녀들 곁에서 나는 스르르 잠 든 적도 있었다. 그건 아주 달콤한 잠이었다.

 

따또바니를 떠나기 전날 저녁 무렵이었을 거다. 그 날 나는 스님과 함께 바바의 굴 앞에서 바바가 구워 주는 짜파티를 먹고 있었는데, 장 보러 갔던 몽사와 취생이 나타났다. 몽사가 말했다.

 

사흘 뒤부터 파업이랍니다. 연속 파업이라더군요. 다르질링 지역 공산당이 파업을 선언하면 버스도 안 다니는 건 아시지요? 자칫하면 우리는 발이 묶입니다. 내일 여기를 떠나서 일단 다르질링으로 가는 게 좋겠습니다.”

 

스님과 나는 아직 넉넉했지만 몽사와 취생은 그때 시킴 체류 허가 기한이 아슬아슬했다. 파업이 장기화 되면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다들 온천을 떠나기가 아쉬웠던 것 같다. 온천보다도 한 지붕 밑에서 함께 밥 해먹고 사는 게 즐거웠던 지도 모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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