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베이지의 노래 [ 89 ] 작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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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89 ] 작별
  • 김홍성
    김홍성 ktmwind@naver.com
  • 승인 2020.09.17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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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 나서 돌아보니, 스님은 바로 내 뒤에 있고 취생은 여전히 출렁다리에 오르지 않은 채 아네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출렁다리 위의 내 모습은 삼장법사를 모시고 천축국을 찾아가는 손오공 같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운무는 가느다란 이슬비로 변했다. 이슬비가 아니라 무거운 운무였는지도 모르겠다. 노란 달맞이꽃이 형광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네이, 체링, 세따가 출렁다리 앞까지 따라왔다. 젖은 어깨에 걸쳐진 검은 머리칼에 이슬이 대롱대롱 맺혀있는 여자들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피어났다.

 

바바에게 들리겠다고 먼저 떠났던 몽사는 출렁다리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는 내가 가까이 가자 바바가 안 보인다고 말했다.

어디 갔을까요?”

잠깐 출타했나 싶었죠. 그런데 앞마당이 평소 느낌과 달리 휑해서 굴에 들어가 보니 접어서 방석으로 쓰던 담요며 담요 위에 깔던 짐승 가죽도 안 보였어요.”

……. 떠난 거군요.”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새벽까지만 해도 바바의 일정을 묻고 같이 떠날 수 있을지를 타진하려했다가 포기한 나는 바바가 이미 떠났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역시 충격이 컸을 몽사가 말했다.

 

어제 제가 여기 와서 앉았다 갈 때까지 바바는 오늘 떠난다는 말을 안 했는데 말입니다.”

스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수행자라서 작별을 생략했을 겁니다. 저녁에 말했으면 아침에는 그냥 떠나죠. 뒤도 안 돌아보는 게 수행자들의 전통입니다.”

 

내가 그 말을 받았다.

어찌 보면 냉정하지만 어찌 보면 기백이 느껴지는 전통이군요. 하지만 수행자 끼리나 그러는 거지 우리 같은 속인하고 작별할 때도 그러면 냉정하다는 소리 들을 겁니다.”

 

스님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우리도 다르질링에 도착하면 제각기 헤어질 처지였음을 직감하고 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게 수행자입니다. 수행자에게 정을 주면 상처 받습니다. 바바를 보세요. 말없이, 종적도 없이 떠났잖아요. 흐흐흐.”

 

스님의 이 말은 나나 몽사보다도 취생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멀지 않은 곳에 힌두 사원이 있습니다. 본래 거기 머물다가 이 동굴 얘기를 듣고 왔으니 아마 그 사원을 향해서 떠났지 싶습니다. 다리를 안 건너고 개울 따라 곧장 올라가면 나오는 길로 한나절만 걸으면 사원이 나온다더군요.”

 

몽사의 이 말은 나에게 또 한 번의 미련을 불러 일으켰다. 정말 바바를 따라가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그 사원을 찾아가 봐야한다. 만나면 다행이고 못 만나면 수소문하여 찾을 수도 있다. 그 정도의 성의는 있어야 따르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는가? 나에게는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 내 다리는 자동으로 움직여 출렁다리에 올라섰는데, 출렁다리의 대나무 발판이 운무에 젖어서 미끄러웠다.

조심해야겠어요. 바닥이 아주 미끄럽습니다.”

 

말하고 나서 돌아보니, 스님은 바로 내 뒤에 있고 취생은 여전히 출렁다리에 오르지 않은 채 아네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출렁다리 위의 내 모습은 삼장법사를 모시고 천축국을 찾아가는 손오공 같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작별이 주는 감상에 젖은 여성들의 음성이 손오공의 목에 축축하게 감겼다. 눈물마저 흘리는 아네이는 그렇다 치고 취생은 왜 저러나. 부탄 고추를 많이 먹더니 부탄 체질이 됐나, 어쩌다 그토록 정이 들었더란 말인가. 몽사는 곧 달려들어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을 떼어 놓고 말 저팔계의 자세였다.

 

버스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큰 나무 밑에 서 있는데도 어느새 옷이 흠뻑 젖었다. 에라, 이왕 버린 몸, 나는 나무 밑에서 나와 길을 건너 벼랑가로 가서 섰다. 취생과 몽사도 길을 건너왔다.

 

우리가 탕에 들어갈 때 겉옷을 벗어 놓던 바위가 보였다. 그 바위 위에 올라서는 세 여자도 보였다. 그녀들은 우리를 발견하고 일제히 손을 흔들었다. 그녀들은 우리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바위 위로 올라섰을 것이었다. 버스가 올 때까지 우리는 손을 흔들면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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