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福) 윤 한 로이빨 빠진 무녀리 사기 그릇머리 맡 향나무 밑에묻어드린다, 다시 고이 엎어서 언제나 강낭콩 밥 서너 숟갈 가셔서도 훌훌 물 말아 드시겨허구한 날 내 괙괙거렸소만시작 메모복 ‘복(福)’ 자 사기 사발을 보면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머니는 작고 못 생겼다.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몰랐다. 손과 발은 살성이 거칠어 쩍쩍 갈라졌다. 보면 허구한 날 작약 밭, 고추 밭을 매거나 미나리를 다듬거나 했다. 도무지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입심 하나는 좋으셨다. 화를 낼 때, 우리를 혼낼 때 입심은 더 좋으셨다. 지금도 무얼 끄
낮달 윤 한 로봄방학 국민학교비리직직 개오동 담벼락 고추장 벌거지 똥자루 혼자 외로워라대낮 파랗게 걷힌 하늘에 낫 같은 달 부끄럼 어얄래, 뱃속 깊이 삼켜선 졸졸 흘리고파어렸을 적 맡겼던청성 작은집덜컹덜컹 삼륜차 타고 한참을 흘러들어갔지시작 메모심천, 영동, 무주 이런 데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던 아버지가 산판에 손을 댔는데 그게 갑자기 오일육 나고 세상이 바뀌면서 망하고 말았다. 집은 결딴이 났다. 어머니는 영동 역에 나가 사과, 조기 장수를 하고 백수가 된 아버지는 들어앉아 누나가 길에 나가 꽁초를 주워다 주면 그거나 피우면서
여우비 윤 한 로어렸을 때쨍쨍한 햇볕 속에여우비 말갛게 뿌리고노랑 호박꽃에 벌 갇혀 붕붕거리고하여간에 무슨 일로 곤지랑 싸우는데곤지도 덤비고곤지 동생 모개도 덤비고괙괙 괙괙고추장 먹는 곤지네 거위까지 덤비는 바람에오금아 날 살려라내뺐다책보도 버린 채담배창고 녹슨 함석지붕 너머 쌍무지개 둥그렇던옛날에시작 메모배가 부르면 틀림없이 교만해져 불신자가 될 것이고, 또 배가 고프면 하릴없이 도둑질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인간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자인 솔로몬은 죽기 전에 하느님께 청했다. 가난하게도 하지 말고 그렇다고 부자가 되게도 하지
육손이 윤 한 로베두렝이 대장보리밥 고추장 대장파리 대장지각 대장 복도 대장 직수굿, 굵은 콧물 대장촌충 대장해필이면 손가락 여섯 개손가락 대장해금내 대장 가랑비 대장 골짝 마을 서넛 지나천주쟁이 두개무덤 까마중 대장염생이 대장 작대기 대장숯 대장 옹기 대장 빌어먹지 않을 만치시작 메모가뜩이나 날도 우중충하고 성질이 날 때가 많다. 좋잖은 자판기 커피 자꾸 뽑아 마시느니 어떤 책보다도 훌륭한 ‘십자가 성요한’의 기도 몇 줄 바치기로 한다. 우리 천주쟁이들, 하느님께서는 숯 굽고 옹기 지으며 스스로 애써 일해서 거칠게 먹고 살라 산골
적성촌 윤 한 로산 호랑이 같은 가난,허물어진 굴뚝자리 곁말발굽을 엎어놓았다여름 이엉 썩는 빈 집삐뚜딱한 돌절구 아가리 깊숙이 실낱 거미줄 치고말라비틀어진 쥐똥 몇 알서껀고작 오가리 한 장 매달았을 뿐별 묘리 없어라미욱하니 마소 구융으로나 쓸 밖에진종일 영감타구 혼자 끙끙 앓는책상물림 다산의 적성촌숭의전 붉은 벼랑 쓸고 가는 강물 소리만 배불러 터지누나시작 메모다산 정약용의 연천 ‘적성촌’ 집들은 북풍에 이엉이 걷혀 서까래만 앙상하다. 묵은 재에 눈이 덮여 부엌은 차디차고 쳇눈처럼 뚫린 벽엔 별빛이 비쳐 든다. 집 안 곡식이라곤 개
이슬비 윤 한 로개똥갈이 밭 두럭부슬부슬 비 내리네 아주까리 피마자 잎사귀에도양은 종재기에도여름 오늬라, 새파란 고초 밭 평생 땅강아지솔 수퐁 속꺼꺽푸드데기 날아오르네시작 메모어머니는 학력이 없으시다. 물어보면 옛날 소학교 4학년까지 다니다 말았다고 얼버무렸다. 아주까리 밭 두럭에 앉아 베보자기 밥 한술 뜨는 둥 마는 둥, 고무신 흙 똘똘 털며 다시금 호미를 잡으셨다. 평생을 흙 속 땅강아지로 살며 고추니, 무니, 깨니, 곡석들 자식 보듬듯 키우며 사셨다. 흙 알갱이에 닳아터진 손으로 ‘새파라니 잘 살기여, 잘 크기여’ 한 줌 또
‘다음번엔 대낮에 전화해 달라’는 마돈걸의 충언을 가슴에 품은 배삼지 국장이 동네 어귀의 수상한 카페 ‘지성인의 쉼터’로 들어선 순간 국장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 손톱손질, 귀 후비기, 옆구리와 허벅지 긁기에다 10분 간격으로 하품하며 오직 한 놈만 기다려온 카페 여 마담에게 배삼지 국장의 전격 출연이야 말로 더 이상의 시나리오는 없다는 확신을 줬다. 국장의 생김새와 걸치고 있는 옷가지와 어벙한 표정에서 이미 종합판단을 내린 마담은 이 작자가 뭘 원하는 어떤 인간인가 바로 간파하였다. 국장은 실망스런 인간관계와 복잡한 현안
궁벽(窮僻) 윤 한 로쫄딱망했구료개꿈 한줄금 흐벅지게 꾸고 난 밤 깊푸른 하늘푸대기 속엔오막살이 별 총총 맑구나이슥토록벼름박 진곰보 지애비 낯짝슬몃비릿한 이슬 묻어개꼬랭이나발 바람이 든다시작 메모용꿈도 아니고, 돼지꿈도 아니고, 똥꿈도 아닌 개꿈이라는 말이, 개꿈이라는 이미지가 참 좋다. 등줄기에 식은 땀 한줄기 흐벅지게 흘리면서 개꿈을 꾸고 난 밤, 때타고 해진 남루 같은 밤 하늘에 총총한 별들은 어떤 때 별보다 맑고 서글프다. 그리고 윗목엔 꿔다놓은 보릿자루 서말에 뿔뿔 기어나오는 잿빛 식솔, 저 쥐며느리들. 그런 밤 아버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