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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의 음악통신 225] 손열음과 디지털피아노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4.08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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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9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뭐하니?>에는 가수 이적, 유희열과 방송인 유재석 그리고 피아니스트 김광민과 손열음이 출연했다. 유재석은 “손열음 씨도 신나는 음악 한 번 연주해달라"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이적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모셔두고 신나는 거 연주해달라니 무슨 소리냐"라며 타박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출신인 유희열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정식 피아노도 아닌 디지털 피아노로 손열음은 볼로도스가 편곡한 모차르트 터키행진곡 변주곡을 연주했다.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출연,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손열음

언론에선 또 호들갑을 떨었다. 클알못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클래식 음악과 예술가에 대한 1도의 존중도 없이 신들린 연주네, 피아노와 혼연일체네, 무아지경이네 하는 미사여구를 쏟아냈다.방송 뒤 클래식 팬들 사이에선 후폭풍이 일었다. “예능 제작진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불러 놓고 피아노도 제대로 된 피아노도 준비하지 않고 신나는(?) 음악을 쳐주라고 요구하고 옆에선 과한 리액션으로 흥미 위주 진행을 하였다"라는 비판이다. 해당 피아노 뒤쪽으로 업라이트 피아노도 비친 걸로 봤을 때 손열음이 디지털을 연주 못하겠다고 했으면 피아노를 다시 세팅할 수도 있었을거다. 프로그램 제작 상황상 아마 해당 제품이 방송에 노출되어야 하는 경우가 아니었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 타건과 건반 반응 속도도 속 터질 정도로 느렸다. 앵앵거리는 소리는 상당히 거슬렸다. 하지만 일반 피아노와 디지털 피아노의 차이를 일일이 구분할 줄 아는 대중은 많지 않을 터. 결과론적으론 방송이 끝나고 손열음이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고 5월의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리사이틀 남은 좌석이 단번에 완판되었다고도 한다.

5월 13일에 열릴 얼마전에 발매한 슈만의 작품들로만 구성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리사이틀

논점은 한 분야의 거장과 일가를 이룬 사람들에 대한 평가와 예우가 너무 야박하는 거다. 권위가 인정받지 못하는 아무리 만인평등에 봉착한 사회라고는 하지만 몇몇의 마니아들 말고는 진가를 알아주지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된 자극적이고 돈만 추구하는 풍조로 오직 금전적인 이익으로만 가치를 따진다. 손열음이 누구인가? 2011년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 2위 입상자이자 2018년부터는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예술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칼럼을 쓰고 음악 프로그램은 진행하는 음악의 영재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음악인인 그녀를 마치 서커스 공연처럼 대중들의 호기심과 유희를 위한 설정이 거슬린다. 물론 이 방송을 보고 클래식 팬이 아닌 시청자들에게도 알려지고 뒤늦게 유튜브로 손열음의 연주를 찾아보고 그녀의 그리고 클래식 음악의 팬이 된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클래식 대중화를 위해 긍정적인 작용을 한 것도 사실이다. 이미 예전에도 손열음을 신세대 트로트 가수 박현빈과 협업으로(작년의 트로트 열풍이 불기 훨씬 이전부터)'손열음의 음.악.편.지' 두 번째 프로그램 '마이 플레이 리스트'로 트로트와의 컬래버레이션 무대와 정통 바이올린의 무대를 대조해 클래식의 새로운 방향을 찾는다. 트로트 가수 박현빈과 함께 그의 히트곡 '곤드레만드레', '넌 너무 예뻐' 등을 연주하고, 손열음이 가장 사랑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인 스베틀린 루세브와 함께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와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했다. 또 지금은 정경화의 뒤를 이어 대관령 국제 음악제의 예술감독으로 행정과 경영까지 하고 있는 단순한 비르투오소의 장벽을 깨고 나온 몇 안 되는 음악 예술가이다. 

다만 음악평론가인 필자라도 클래식 음악의 마지막 보루인 순수성을 지키고 아티스트에 대한 예우에 대한 보호자 역할을 자임하고 싶다. 예술을 무슨 하부구조로 여기고 예술인을 경시하는 행정관료주의적 사대주의에 빠진 시대착오적 발상을 하는 논리에 좌우되는 후진국 수준의 마인드에서 벗어나길 염원한다. 클래식 음악인들 역시 대중의 환호와 갈채에 목말라있고 꼭 클래식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동서고금의 위대한 음악가들은 좁은 학문적인 범주를 깨고 나와 영역 간의 소통과 통합을 꾀하고 음악 자체를 세상에 전파하고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선각자들이다. 클래식이네 국악이네 재즈네 하는 협소한 영역을 초월한 문자 그대로 음악인이라는 거다.

예술은 포퓰리즘과 정치, 경제적 역학관계에서 벗어나 독립해서 인간의 예술세계를 존중하고 인간이 만든 독창적이고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 스며 있는 음악을 듣고 자유민주주의 시민으로 성장하고 살아가는데 양분이다. 순수예술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당장의 이익을 중시하는 시장 메커니즘이 지지하지 못하는데서 발생하는 시장실패(market failure)를 보완하는 가장 중요한 대안 중 하나인 사회적 관계 회복이 가장 필요한 분야이다. 당장 인기가 있어서 문화 소비자들에 의해 시장메커니즘이 지탱될 수 있는 대중예술과는 달리 단기적 대중성이 낮고 성과나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순수예술은 그 자체의 사회적 중요성과 명분에 대한 자발적이고 순수한 공감과 존경이라는 선의에 기반한 도움과 기여가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예술가의 삶이란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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