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과 칼끝의 대결, 그 ‘착란의 변증법’ 『한국산문』 9월호 월평 오정주 우리 인생의 꽃잎은 칼끝에서 한순간 스러지기도 하고, 영혼이 불타올라 더 많은 꽃잎을 피우기도 한다. 세찬 바람에 흩어지지 않으려면 위기의 순간을 잘 버텨내야 한다. 현대인들은 어떤 황당한 고민일지라도 윤리적인 문제와 현실적인 갈등의 칼끝에서 선택을 종용당하는 착란의 상태에 처하기도 한다. 어떻게 극복하는 게 현명한 방법일까? 『한국산문』 9월호에 실린 김주선의 『바둑 두는 여자』와 박지니의 『두 여자 사랑하기』는 인기 드라마와 소설을 읽고 그 의미를 촘촘하
바둑 두는 여자/김주선 한때 프로 바둑이 인기였던 시절이 있었다. 재능이 보이는 진득한 남자애들은 학원까지 보내주었지만, 언감생심 여자애들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어깨너머로 한 수 배운 아이들은 사랑방 전용 반상을 펴고 어설프게 집 짓기 놀이를 했다. 고만고만한 실력인데도 또래들은 행마의 규칙을 알려주는 훈수를 뒀다. 귀(귀퉁이)부터 돌을 놓는 애들은 초가집 정도는 지을 줄 아는 편이고 정중앙부터 포석을 치는 아이는 바둑을 1도 모르는 아이다. 바둑 좀 두는 집안에서는 아이들의 실력과 흥미를 키워주느라 화점 위에 9점을 깔아주고
2022년 4월 28일부터 6월 5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개최되는 제13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서 베세토오페라단(단장 강화자)이 제작한 푸치니의 공연 중 프리미어 5월 20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차를 관람하고 왔다.막이 열리자마자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 끈 건 객석에서 올려다보게 단상을 높인 무대였다. 1막의 배경이 네 명의 하숙생이 기거하는 다락방이라는 걸 안다면 무릎을 탁하고 치게 만드는 참신한 시도다. 요즘 우리 식으로 하면 노량진이나 신림동의 고시원이나 고시텔 중의 옥탑방이다. 알량한 자존심과 예술혼만 가진
제주아트센터(소장 김영기)는 7월 24일‘SAC on Screen(싹 온 스크린)’프로그램으로 유니버설발레단의 창작발레‘심청’을 상영한다. 창작발레 ‘심청’은 우리나라의 위상이 전무하던 시기인 1986년 유니버설발레단이 세계 무대를 겨냥해 만든 창작발레작품으로 척박한 한국 발레 현장에서 피어난 토종문화상품이다. 원작의 이미지와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 구체적으로 창작한 작품으로 윤회사상·권선징악의 교훈과 의도를 그대로 가져오면서 관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연이다.한편, SAC on Screen(싹 온 스크린)’은 예술의
나는 폼 나는 반장이었고 걔는 폼 없는 루저였다. 이원수. 그 아이의 이름이다. 그 이름을 보면서 저 애의 부모는 쟤를 얼마나 원수같이 여겼으면 이름도 저렇게 지었을까 의아했다. 옷은 항상 다 낡아빠지고 늘어진 진한 국방색 티, 게다가 여기저기 구멍도 많다. 얼굴도 시커멓고 몸에 때 국물이 줄줄 흘렀고 몇 달을 씻지 않은 상태였다. 원수는 수업에 거의 참가하지 않았다. 교실에 진열된 장식품처럼 들어와만 있는 존재였다.수업 시작을 알려도 바닥에 누워 잠만 잤다. 선생님도 포기하셨는지 간섭하지 않았다. 그 애와 나의 전쟁은 매일 시작되
재기 발랄한 선율과 속사포 같은 레치타티보, 구슬같이 구르는 이탈리아어 발음과 손끝 발끝으로 전달되는 제스처, 비슷한 시기 한국에 판소리가 있었다면 이탈리아에는 로시니의 오페라로 민중의 애환을 달래주고 같이 울고 웃으면서 희로애락을 대변한다. 19세기 초반 오락의 최고봉이다. 그때는 영화도 없었고 텔레비전도 없었고 스마트폰도 없었다. 전기도 없던 시절에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뭐 하겠는가? 삼삼오오 모여 노래 부르고 악기 연주하고 2시간 30분짜리 오페라 관람하러 극장에 가서 한바탕 즐긴다.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알프스 이남의 태양이
'보좌관 시즌2'를 한창 재미있게 보다 종영이 가까워 오니 후속편의 광고가 뜨기 시작했다. 검사내전? 텔레비전에 매일 나오는 거악에 맞서고 정의감 넘치는 그런 특수통, 정치 애국 검사들 말고 지방, 그것도 대한민국 가장 끄트머리 가상의 소도시 작은 지청에서 벌어지는 검사들의 소소한 일상을 그린다는 내용? 보자마자 짜증이 났고 콧방귀를 뀌었다. 검사의 검자부터 듣기 싫고 미웠다. 그때는 한창 조국사태로 인해 뉴스만 틀면 검찰개혁이네 , 항명이네, 조국 수호네로 도배를 했고 안 그래도 집이 서초동인 필자 입장에선 하루가 마다 않고 몰
마로니에북스 박경리 장편소설 '성녀와 마녀'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또다른 장편 소설 '성녀와 마녀'가 재출간됐다.저자의 첫 연애소설로, 뿌리 깊이 박힌 인습과 관념을 깨는 파격적인 내용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은 1960년 4월부터 1961년 3월까지 여성지 '여원'에 연재되었던 소설이 모아져 만들어졌다.2003년 처음 단행본으로 출간됐으나 절판된 후, 이번에 마로니에북스가 새로운 모습으로 재출간했다.1969년 영화로 제작, 2003~2004년 MBC에서 방송된 동명 드라마 원작이다.저자는 반전을 통해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을 분해한다. 단순한 선악 대립이나 권선징악 결망을 넘어 사랑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다.집에서 홀로 가족을 돌보는 현모양처 하린과, 악마 이미지의 성악가 형숙의 대립이 소설의 주를 이룬다.남성에게 복종하고 희생하는 하란은 수동적 여성으로 묘사되고, 요부나 마녀처럼 그려진 형숙은 자유분방한 연애를 추구한다.그러나 결국 유부녀 하란이 외간남자를 마음에 품어 육체적 사랑을 갈망하고, 반대로 형숙은 진정한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지는 모습을 보인다.작가의 말에 "아무리 선한 사람일지라도 그의 깊은 내면에는 욕망에 대한 유혹이 있고 인간적인 약점이 숨어 있다"고 말했다.이어 "그와 마찬가지로 약한 사람에게도 그의 깊은 영혼 속에 진실이 잠들어 있고 참된 것으로 승화하려는 순간이 있다"며 이것이 인간 내면의 본성이기에, 여성이 아닌 인간을 그려보고 싶다고 말했다.
마하고니? 가상이 아닌 현재 우리들이 살고 있는 터전 ‘마하고니’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으로 번영과 몰락을 겪는 자본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자 풍자극인 쿠르트 바일의 이 한국에서 초연되었다. 지미를 비롯한 네 명의 남자들은 알라스카에서 7년간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벌목꾼으로서 돈을 벌어 이제 돈이면 뭐든지 다 되는 마하고니에 와서 인생을 즐기려는 어찌보면 피카레스크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브레히트와 바일은 오페라라는 장르에 대해 음악적으로, 연극적으로, 사회학적으로 많
소설은 시대적 상황을 대변한다. 작가의 상상력은 현실을 반영한다. 모든 소설은 숨길 수 없는 현재를 담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시대 모습과 상황이 다르겠지만, 본질적 내면은 크게 차이가 없다. 그렇기에 2019년을 살아가는 내게 소설 '도련님'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일단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소설 '도련님'이 탄생했던 시기와 작가에 대해 거부감이 먼저 일어났던 것을 고백한다. 이 소설이 발표된 시기는 1906년, 일제에 의해 강압적으로 을사조약을 체결한 뒤 불과 1년 뒤의 이야기이다. 독서모임 선정도서가 되어
[미디어피아] 안치호 기자= 북한 어린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즐겨 읽을까. 분단을 뛰어넘어 어린이들이 북한을 이해하는 첫걸음으로 우리가 몰랐던 북한 전래 동화 23편을 담은 박상재 글, 서영경 그림 『어린이가 처음 만나는 북한 전래 동화』(도서출판 함께자람(교학사), 2019)가 발간됐다.전래 동화는 오랜 세월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옛이야기를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마다 조상들의 기쁨과 슬픔, 재치와 슬기가 오롯이 담겨 있어 그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어린이가 처음 만나는 북한 전래 동화』는 남북 화해와 평화의 시대를 맞아 어린이들이 북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북한 지역에 널리 퍼져 있는 23편의 전래 동화를 모아 엮은 책이다. 70년이 넘게 서로 갈라져 있는 사이 조금씩 달라지기는 했지만, 남한과 북한의 전래 동화는 서로 비슷한 이야기도 있어서 우리가 한 핏줄임을 느끼게 해준다. 우리가 잘 몰랐던 북한 전래 동화를 통해 남한과 북한이 문화와 정서를 함께하는 한민족임을 깨닫고 북한 어린이들과 소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이 책은 북한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수많은 전래 동화 가운데 이야기의 완결성을 갖추고 재미와 교훈이 담긴 23편의 이야기를 뽑아 풍부한 삽화와 함께 구성했다. ‘농사일을 돕는 개’는 개를 대하는 형제의 상반되는 행동을 통해 권선징악을 일깨우고 요행을 바라는 농부를 징계하는 ‘농부와 기장나무’ 이야기는 타인의 도움과 선의에 감사하는 마음과 성실한 노력만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진리를 전한다.또한 ‘병풍 속 호랑이’, ‘꾀동이의 지혜’, ‘백쉰 가지 음식’ 세 편의 이야기에는 영리한 꾀로 강자들을 골탕 먹이는 아이들이 등장하여 통쾌한 반전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이 밖에도 남의 뒤치다꺼리하는 사람을 놀리는 말뜻이 담긴 ‘똥 진 너구리’, 주출석의 유래와 관련된 ‘술이 나오는 돌’ 등 다채롭고 색다른 이야기를 통해 삶의 지혜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독일의 시인 실러가 “내가 인생에서 배운 진리보다 더 깊은 의미가 어린 시절 들은 옛이야기 속에 들어 있다”고 말한 것처럼 어린 시절에 처음 만나는 전래 동화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물이 되어준다.『어린이가 처음 만나는 북한 전래 동화』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북 어린이들이 마음을 열고 소통할 수 있는 북한의 전래 동화를 뽑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 쓴 책이다. 그동안 우리가 잘 몰랐던 북한의 옛이야기를 통해 한 민족의 정서를 함께 느껴 봄으로써 분단으로 인한 문화의 차이를 좁히고 북한 어린이들과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다. 인물들의 감정을 생생하고 익살스럽게 표현한 그림이 이야기를 더욱 감칠맛 나게 만들어 준다. 저자 소개글 박상재전라북도 장수에서 태어났으며 단국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한국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PEN문학상을 받았다. 오랫동안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제6차, 7차 국어 교과서 집필 심의위원으로 일했으며 한국교원대학교 겸임 교수와 서울 당중초등학교 교장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 『개미가 된 아이』, 『아름다운 철도원과 고양이 역장』, 『돼지는 잘못이 없어요』 등 많은 작품이 있다.그림 서영경대학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한 뒤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린 책으로 『빛나는 미래를 꿈꾸는 어린이를 위한 다이아몬드』, 『행복한 자기 감정 표현 학교』, 『오총사 협회』, 『잘못 뽑은 반장』,『도서관에서 사라진 아이들』 등이 있다.박상재 글, 서영경 그림 『어린이가 처음 만나는 북한 전래 동화』(함께자람(교학사), 2019), 정가 11,000원(사진 제공= 함께자람(교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