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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293] Critique: 제11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김선국제오페라단의 로시니 '세빌리아의 이발사'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8.15 09:58
  • 수정 2020.08.1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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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 상쾌, 통쾌했던 이탈리아 오페라의 정석, 한국에서 즐기는 이탈리아 현지 수준의 공연

재기 발랄한 선율과 속사포 같은 레치타티보, 구슬같이 구르는 이탈리아어 발음과 손끝 발끝으로 전달되는 제스처, 비슷한 시기 한국에 판소리가 있었다면 이탈리아에는 로시니의 오페라로 민중의 애환을 달래주고 같이 울고 웃으면서 희로애락을 대변한다. 19세기 초반 오락의 최고봉이다. 그때는 영화도 없었고 텔레비전도 없었고 스마트폰도 없었다. 전기도 없던 시절에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뭐 하겠는가? 삼삼오오 모여 노래 부르고 악기 연주하고 2시간 30분짜리 오페라 관람하러 극장에 가서 한바탕 즐긴다.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알프스 이남의 태양이 내리쬐는 이탈리아의 오페라는 지극히 성악적이고 노래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심각하고 거대하지 않고 서민의 일상과 권선징악을 다룬다. 결말은? 당연히 우리나라의 '춘향전'이나 '흥부놀부전' 같이 해피엔딩이다.

김선국제오페라단의 로시니 '세빌리아의 이발사'
김선국제오페라단의 로시니 '세빌리아의 이발사'

오페라는 무대 예술로서 시대상을 반영하는 한편의 이야기다. 허구지만 공감이 밑받침되지 않는 이야기, 개연성이 떨어지는 플롯, 엉성한 줄거리는 외면받는다. 우리와 문화적 토양이 다른 그것도 200년 전의 외국 이야기를 2020년 대한민국에 이식시키기 위해 여러 시도와 노력을 한다. 그런데 김선국제오페라단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이탈리아 현지의 공연을 통째로 그냥 옮겨왔다. 복식이며 메이크업, 무대가 고증에 충실한 전통적인 방식으로 접근했다. 서곡부터 지휘자 카를로 팔레스키의 자부심과 묻어 나왔다. 팔레스키 자신이 이탈리아 사람이다. 그리고 이미 김선국제오페라단의 예술감독으로서 지난해 용인에서도 동명의 가극을 무대에 올리는 등 로시니 최고 전문가이자 자국 음악이다. 오페라 내내 관통하는 특히나 인물들 간의 변장과 변신을 통한 인물교환을 마치 이탈리아어 억양 같은 빠른 리듬과 신출귀몰한 효과와 강조로 풀어간다. 오페라 전체를 관장한다. 그래서 간혹 오케스트라가 무대를 압도해 버리긴 하지만 이탈리아 정통 오페라 부파에선 '이것이 로시니'라고 타협 없이 음악을 진행해 나간다.

14일 캐스팅, 이제 15-16일 이틀 공연이 더 남았다. 

알마비바 백작 역의 테너 강동명은 미성의 소유자였다. 극에 가장 적합한 발성과 소리의 질감을 가졌다. 문자 그대로 벨칸토, 아름다운 소리와 딕션이었다. 레제로 테너로서 때로는 애절하게 때로는 익살스럽게, 때로는 간절하게 극의 진행에 맞게끔 소리의 질감을 유지하고 전달하였다. 강동명과 함께 콤비를 이루는 피가로역의 김종표, 거기에 바르톨로 박상욱과 바질리오의 김영복의 감질나는 연기와 풍부한 저음은 극에 익살을 더해주어 타도의 대상이요 사랑의 연적이 아니라 피가로의 재치에 속아 넘어가는 밉지만 싫어할 수는 '귀여운 노인네'로 만들어 주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워 실감 났다. 다양한 희극적 상황이 음악에 그대로 묻어나 움직임, 행동과 연기가 분리되지 않고 음악과 함께 하는 로시니의 최대 강점이 희극의 연극적 감각이 가수, 아니 배우라고 칭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연기로 빛을 더했다.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단 2명만 등장하는 여자들, 로지나 역의 양두름은 1막의 유명한 아리아 '방금 들린 그대 음성'부터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한순간에 끌어들이는 마력 같은 멜리스마와 음성으로 순식간에 극의 비중을 독차지 할 정도였다. 그래서 동행한 분의 표현대로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아닌 '로지나 시집가는날'이라고 제목을 바꿔도 무방할 정도였다.거기에 뒤질세라 또 한명의 여자인 메조 소프라노 김윤희가 부르는 베르타의 아리아 '노인네가 색시를 원하네'에서는 한순간이었지만 자신의 존재를 노래로서 확실하게 부각시켰다.

로지나 역의 소프라노 양두름의 무대 인사
로지나 역의 소프라노 양두름의 무대 인사

6명의 확실한 캐릭터가 뿜어내는 앙상블의 오페라의 백미다. 인물들 간의 상황과 성격에 맞게끔 그들 하나하나를 따라가는 재미가, 어떤 편에 서서 듣고 보느냐에 따라 전체 스토리의 개연성이 각자의 각도로 펼쳐진다. 이번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첫째 6명 개개인의 노래 기량, 둘째 콩트와 같았던, 많은 연습과 유기적인 호흡이 수반되었던 부드러웠던 연기력, 셋째로 6명이 하나의 앙상블이 되어 부르는 중창에서의 소리의 조화까지 삼박자가 들어맞았다.

커튼콜, 좌로부터 다섯번째가 김선국제오페라단의 단장 김선

오페라 부파라는 희극이 가지고 있는 긍정의 에너지가 충만해 2시간 30분 동안의 공연 내내 유쾌했다. 요즘같이 외부의 위협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안과 공포의 시대에 진정 필요한 예술의 기능이 무엇인지 여실히 증명한 시간이었다. 이제는 보고 싶다고 즐기고 싶다고 유럽에 가지 못한다. 그 아쉬움을 단번에 씻어낸 한국에서 감상한 이탈리아 오페라의 정석이자 작품에 충실한 공연이었다. 로시니의 천재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경쾌하면서도 청량한 음악적 창작력 앞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탈리아 오페라와 사랑에 빠지고 싶다면, 그리고 희가극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면 이번 주말(15-16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의 2번의 공연이 더 남아있다. 세 번만 하고 그만하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운 공연이다. 가서 큰소리로 외쳐도 된다. 노래가 끝나면 브라보와 브라바를 연발하라! 이 날 브라보를 외친 단발마는 필자의 목소리다. 오늘과 내일은 가서 큰 소리로 외치면서 즐겨라! 오페라도 하려면 이렇게 제대로 해라. 그래야지 적어도 한국에서의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이란 자리에 손님 모시고 가서 오페라란 이런 거라고 소개하고 다음에 또 오고 싶다, 보고 싶다고 만들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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