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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잘못 만난 비운의 드라마 '검사내전'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5.17 09:41
  • 수정 2020.05.1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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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 시즌2'를 한창 재미있게 보다 종영이 가까워 오니 후속편의 광고가 뜨기 시작했다. 검사내전? 텔레비전에 매일 나오는 거악에 맞서고 정의감 넘치는 그런 특수통, 정치 애국 검사들 말고 지방, 그것도 대한민국 가장 끄트머리 가상의 소도시 작은 지청에서 벌어지는 검사들의 소소한 일상을 그린다는 내용? 보자마자 짜증이 났고 콧방귀를 뀌었다. 검사의 검자부터 듣기 싫고 미웠다. 그때는 한창 조국사태로 인해 뉴스만 틀면 검찰개혁이네 , 항명이네, 조국 수호네로 도배를 했고 안 그래도 집이 서초동인 필자 입장에선 하루가 마다 않고 몰려드는 조국 지지자와 반대자들의 확성기를 동원한 누가누가 목소리 크나 내기와 빼곡히 들어선 인파 때문에 정체되고 혼잡한 아귀다툼에 진절머리가 났었다. 정치와 이념 논리를 떠나 다들 난봉꾼에 불과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까지 검사들을 봐야 한다고? 미디어 속 화려한 법조인이 아닌 검사들도 가기 싫어하는 소위 말하는 귀향지나 다름없는 지방 작은 도시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 검사들의 이야기를 다루겠다고? 아이고~~검사라면 지긋지긋하다. 드라마든 실제 삶이든 안 만나고 싶는 사람들 중의 하나다. 의사와 변호사, 경찰 등은 살면서 가급적이면 안 만나고 사는게 평온한 법.

드라마 검사내전 포스터
드라마 검사내전 포스터

어쩔 수 없이 집콕을 해야하던 3월,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검사내전>이 무료로 풀린 걸 알게 되었다. 미디어든 서초동이든 눈과 귀과 검찰에서 조용해지니 살짝 호기심이 들어 밑져야 본전이란 마음으로 1회를 클릭해 보았다. 처음부터 웬 두 남자가 낚시터에 선인들의 시조를 읊으면서 선문답을 나누고 306의 저주라면서 무속인이 등장하며 코미디같이 가볍게 흘렀다. 이어서 서울에서 반강제적으로 내려오게 된 진영 지청의 신임 검사 차명주(정려원 분), 주인공인 이선웅(이선균 분)과 대학 선후배 사이지만 이선웅이 곱게 자란 도련님으로 대학 시절 아프리카 봉사활동 다니는 걸 못마땅하게 본 깍쟁이 같고 오직 자신의 힘으로 검사가 된 차명주(그녀의 가정환경과 성장 배경은 차후 다루어진다.) 다시 재회하게 된 그들의 알력싸움과 함께 본격적인 생활형 범죄들이 다루어지면서 세상살이, 사람살이로 배경이 확대되고 드라마에 몰입하게 되었다. 한 가지 또 별미는 먹방을 방불케 하는 식사 장면이다. 같이 모여 그들의 애환을 나누고 정보도 교환하는 같이 밥 먹는 자리가 직장 생활의 일부일진대 형사 2부 직원들이 모여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통영의 명물 굴을 까먹고 스파게티, 바비큐까지 등장하고 술을 왜 또 그렇게 자주 마시는지..... 짬짜면에, 회에, 코다리에 온갖 산해진미가 침샘을 자극한다.

먹고 또 먹고, 아침,점심, 저녁 그리고 야식과 회식
먹고 또 먹고, 아침,점심, 저녁 그리고 야식과 회식

드라마는 인간 내면을 그린다. 그래서 뻔하디 뻔한 해피엔딩이네 권선징악이네 보다 '아~'하고 작은 탄식을 내면서 나와 주변을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그건 드라마의 원 저자이자 스스로 '생활형 검사'라고 지칭한 김웅(현 21대 국회의원 당선인)이 겪은 '리얼 삶의 현장'이다. 인생의 파열들은 다양하고 모순적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을 알 수가 없다. 검사도 사람이고 검찰에 오는 자들도 사람인지라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은 상충된다. 여리고 세상 착해 보이던 새색시에 감정이 이입되어 믿어주었더니 알고 보니 꽃뱀이라던가 평생 남편의 학대와 폭행을 견디다 못하고 자신의 생일에 우연히 자신이 구타당하는 모습을 본 며느리의 기겁한 표정에 살인을 결심한 할머니, 울면서 사죄(그 아들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사과하는가. 그 자신도 피해자다)하는 아들을 보고 다시 숟가락을 들며 삶의 의지를 다지는 어머니, 임금체불로 시작된 소송이 의도치 않은 살인으로까지 연결된 노동자, 용서와 화해라는 피상적인 감정에 휘둘려 엄정하지 못했던 학교폭력과 미성년자 관련 범죄들에 대한 온정주의가 아닌 단호함, 직장내 성희롱 문제를 다루면서 자연스레 인과관계에 접근, 기울어진 운동장과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처세술, 그리고 워킹맘의 비애 등등 옴니버스 식으로 엮어진 검사내전은 참으로 불편부당한 웰메이드 드라마였던 것이다. 

진영지청 형사2부 어벤저스
진영지청 형사2부 어벤저스

드라마가 종반으로 치달을수록 현실의 세계를 다룬다. 황학민(!) 고검장의 성 접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지청이 속해있는 지역구 국회의원 아들의 비리 사실을 파헤쳤다가 좌천당한 김인주 전 지청장이 특별수사단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한다. 이선웅 검사가 차출되고 생활밀착형 범죄가 아닌 정치, 조직의 논리에 좌우되는 정무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서초동이 그려진다. 이때 취하는 김인주 단장의 태도..... 후배들로부터 대쪽이라 존경받은 검사의 '선택적 정의'와 '개인에 충성을 다하지 않고 조직을 사랑'하는 그 무섭고도 질긴 카르텔과 조폭형 의리......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의 최고의 장면을 꼽으라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이제 겨우 초등학생 5학년이지만 친구에게 함부로 욕하고 상처를 입힌 자신의 아들이 경찰 조사를 받는 그 장면,

경찰: 아버님, 직업은요?

이선웅: ..........................

경찰: 아버님, 직업은요????

이선웅: (잠시 망설이고 결심한 듯 천천히) 회사원입니다.

김인주 성 범죄 특별수사단장
김인주 성 범죄 특별수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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