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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548] 리뷰: 2022년 제13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라 보엠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2.05.21 08:36
  • 수정 2022.05.21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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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금요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2022년 4월 28일부터 6월 5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개최되는 제13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서 베세토오페라단(단장 강화자)이 제작한 푸치니의 <라 보엠> 공연 중 프리미어 5월 20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차를 관람하고 왔다.

커튼콜

막이 열리자마자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 끈 건 객석에서 올려다보게 단상을 높인 무대였다. 1막의 배경이 네 명의 하숙생이 기거하는 다락방이라는 걸 안다면 무릎을 탁하고 치게 만드는 참신한 시도다. 요즘 우리 식으로 하면 노량진이나 신림동의 고시원이나 고시텔 중의 옥탑방이다. 알량한 자존심과 예술혼만 가진 4명의 남자들이 집세도 못 내면서 함께 생활하는 장소와 그들의 처지를 백분 짐작하게 만드는 무대였다.

쇼나르 역의 바리톤 김성국

아프니깐 청춘인 4명의 미생들 중 마르첼로 역의 바리톤 박경준은 관록을, 쇼나르역의 바리톤 김성국은 활기를 보여주고 불어넣었다. 오늘의 남자 주인공 테너 지명훈은 <그대의 찬 손>에서부터 진가를 발휘하더니 테너를 사랑한 푸치니라는 슬로건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시종일관 영롱하고 맑은 소리를 뿜어내었다. 2막에서 등장한 무제타 역의 강혜명은 체화된 배역으로 오페라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면서 안정적인 연기와 노래를 선보였다.

마르첼로 역의 바리톤 박경준
마르첼로 역의 바리톤 박경준

3막은 라 보엠 중 가장 음악적, 극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치밀한 대위법과 끊어질 듯이 끊어지지 않은 바그너 스타일의 라이트 모티브가 흐르면서 인물들의 내적 갈등과 외적 실랑이 그리고 그들의 심리묘사가 절절하게 흐르는데 여기서 오늘의 여자 주인공 디바 김지현이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한다. 가녀린 비운의 여인으로 김지현을 따라올 자가 없다. 3막 처음부터 마르첼로와 함께 2중창의 백미를 연출하더니 <미련 없이 안녕>( Addio, senza ranco)에서는 무슨 전생에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한없이 품었는지 그 청순함과 애절함이 사무치고 미련을 떨쳐내지 못하게 만든다. 김지현은 3막의 소프라노다. <카르멘>이 되었든, <라 트라비아타>가 되었든 4 막짜리 오페라에서 3막에서 등장인물들 간의 실타래를 대번에 풀어버리는데 김지현 만한 가수는 없다. 

디바 김지현!
디바 김지현!

4막의 ‘친애하는 나의 오랜 외투여!’(Vecchia Zimarra)의 콜리네 역의 베이스 이준석은 담담한 비장미를 자아냈는데 여자 주인공이 죽기 전에 베이스의 노래를 배치한 건 정말 푸치니의 신의 한 수가 아닐 수 없다. 침대에서 미미는 죽지만 소프라노 김지현은 살아난다.

콜리네 이준석
콜리네 역의 베이스 이준석

소리얼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박력 있었다. 곡의 진행에 큰 위해를 끼치지도 않았으며 뒤로 갈수록 안정을 찾고 응집력도 뛰어났지만 라 보엠 처음하는 티가 풍기면서 푸치니 더 나아가 이탈리아 음악 특유의 우아함과 유려한 맛이 떨어졌다. 이탈리아 아리아의 서정성과 센티멘털이 농축되면서 극 내용에 따라 계속 변해야 하는 입체적인 오케스트라 사운드 대신 마치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나 차이코프스키의 <에프게니 오네긴> 또는 교향곡에나 어울릴듯한 과도한 음향이었다. 지휘자는 우크라이나에서 왔다고 무턱대고 박수와 환영을 받은 아나톨리 스미르노프였다.

로돌포 역의 테너 지명훈
로돌포 역의 테너 지명훈

<라 보엠>이 5막이 아니라서 아쉽다고? 5막이 되어 그럼 모든 사람들이 승승장구하고 부와 명예를 누리고 사랑을 이루어 행복하게 산다는 한국형 신파 또는 막장드라마같이 되어야지 후련할까? 그건 푸치니의 이탈리아 오페라와 우리 식의 정서가 너무나 다름을 증명한다. <흥부놀부>, <춘향전>같이 온갖 역경을 뚫고 결국 마지막이 권선징악적인 해피엔딩은 신명 나고 대리만족을 불러일으키고 카타르시스를 진하게 느끼게 만든다. 가족공동체와 집단을 중요시하는 그리고 지극히 현세의 기복 신앙적인 국민성이 반영되는 전형적인 우리 식의 전개이자 환호다. 현재까지 명작으로 칭송되는 오페라와 연극을 총라한 유럽의 극작품들은 비극이 희극보다 월등히 많다. 만약에 5막이 되었더라면 그건 지극히 반 푸치니 적인, 반원작적인 우리 식의 재해석을 넘어 DLC, 즉 추가 콘텐츠가 될 터이니 완벽함을 건드리지 말자.

무제타 역의 소프라노 강혜명
무제타 역의 소프라노 강혜명

그런 의미에서 1막의 지명훈부터 무대에서 푸치니의 마스터피스를 부르는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니 필자도 동화되어 무대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고 같이 부르고 싶을 정도인데 성악을 전공한 수천 명의 다른 성악가들은 얼마나 저 무대에 서서 오페라를 하고 싶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전해지는 거 같았다. 그렇다! 미미의 김지현, 로돌포의 지명훈, 마르첼로의 박경준, 이들의 조합은 국내 라보엠으로는 현재 최상의 캐스팅 일 거고 그대로 토스카, 카바라도시, 스카르피아를 듣고 싶다. 시즌제도 아니요 꼴랑 3번하면서 왜 할때마다 캐스팅을 바꿔야 할까? 더불어 생전에 오늘의 성악가 조합과 무대, 합창단, 오케스트라의 조화와 이런 수준과 완성도 높은 멋진 <라 보엠>을 몇 번이나 더 보고 음악적 감동에 떨 수 있을 것인가? 백번, 천번? 천만에! 더욱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음악의 감동과 살아있는 생명력을 생생히 누려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 명품 공연이었다.

오늘의 주인공 소프라노 김지현과 테너 지명훈
오늘의 주인공 소프라노 김지현과 테너 지명훈

다만 2막 끝나고 불이 켜지지 않고 부산한 가운데 나온 합창단의 커튼콜(물론 그들은 그 이후에 등장하지 않긴 하지만)과 외우지도 못한 사회자의 원고 그리고 량유 김정아 모델즈라는 단체의 콜라보는 분명 음악 외적인 이유가 존재할 테다. 그리고 국내외 불문 현장에서 지금까지 얼추 200번은 보았지만 커튼콜에 어린이 합창단 소개한다고 당일 공연하지 않은 다른 작품을 배경음악으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건 난생처음 겪었다. 느닷없이 <카르멘> 전주곡이 연주되어 깜짝 놀랐다. 도대체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한 수 배웠다. 역시 세상은 넓고 아직 겪고 체험하지 못한 건 너무나 많구나.

늘해랑리틀어린이합창단과 해맑은어린이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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