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고대해님과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감독의 전격 선언에 대해 고대해는 눈을 끔벅끔벅하다가 “뭘 함께해요?” 하고 실소를 하고 말았다. 참으려 했으나 참지 못하고 만 것이다. 근데 그럴 만했다. 함께 하기로 했다는 등 감독이 일방적으로 자기 얘기만 늘어놓았던 것이다. “저는 지금 첨 듣는 얘기인데요?” 고대해가 말하자 감독은 “그래서 지금 제가 제의를 하고 있는 겁니다. 저의 차기작에 출연해 주십사 하고요.” “그 누가 이 여자를 두려워하지 않으랴? 에 말씀이시죠?” “네,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제목이지요. 바로 그 영화
전작 누가 남자를 두려워 하랴를 연출한 동영상 감독은 차기작으로 모 작품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어떤 작품을? 모델 고대해가 예의상 묻자 감독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누가 그녀를 두려워하지 않으랴 라는 작품입니다.’ 그러면서 감독은 고대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보통 여자 같으면‘ 어머 왜 이러세요? 라든가 또는 그런 눈빛을 보내든가, 대가 센 여자 같으면 왜 보니? 30초 이상 여자의 동일 지점을 주시하면 보면 성폭행인 거 몰라? 하고 말하든가 또는 그런 눈빛을 보내든가 할 터인데, 고대해는 보거라 보고 싶으면 보고 니 꼴리는
개나리, 김유정이 윤 한 로봄이 왔다솜이불 뒤집어 쓴 김유정이 컴컴한 골방 구석에도쿨룩 쿨룩 쿨룩 쿨룩지금쯤 사직동 비탈 돌무더기 위에도판자 동네 수챗가에도 요강단지 위에도 사납배기 *아끼꼬 궁둥이에도온통 흐드러지게 피었겠구나쿨룩 쿨룩 쿨룩 쿨룩폐병쟁이, 어리석고 우둔한 위인그 쿠레한 눈동자 속에도피가래 묻은 육필 원고 가녀린 마음 한자리에도샛노란 조무래기 따라지 꽃들 피었다아무 곳에나 아무렇게나 쿨룩 쿨룩 쿨룩 쿨룩 피었다*아끼꼬 : 1930년대 김유정 소설 ‘따라지’에 나오는 인물. 술집 여자종업원이다.시작 메모나한테는 시에서는
고대해는 평일 오후 고궁에서 시간을 몰어 온 사내를 향해, 정확한 현재 시간과 함께 알듯모를 듯한 미소를 건네주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여성에게 시간을 물은, 알고 싶은 것이 시간만은 아니라고 발설하는 듯한 눈빛의 사내는 지그시 고대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고대해는 걸음을 멈추는가 싶더니 신공을 부린 듯 이미 한참을 앞으로 가버린 뒤이니, 사내는 여인이 남긴 향기와 말의 여운에 잠시 취해 아득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사내는 자신이 말도 되지 않는 `지금이 몇시요?` 따위의 1930년대식 발언을 남긴 사실과, 자신의 모습이 거지는
파멸하는 여성들에 대한 얘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런 여성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가 있다. 러시아 봉건귀족 사회의 일원인 안나는 관료인 남편과의 형식적이고 공허한 삶에서 오는 채워지지 않는 정신적 육체적 욕구를 좇다 젊은 장교 브론스키와 불같은 사랑을 한다. 그러나 그 사랑마저 식어가자 기차 철로에 몸을 던져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마는 이 비극적인 여성은 오늘날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이 되어 영원히 독자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 현대 여성들은 그들은 어느 정도는 자신이 안나 카레니나라고 생각하
두 남녀는 그림에 대해서 뭔가 의미 있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예술적 엣지 또는 스타일리쉬한 대화라고 할 수 있다. 도도녀는 슈트를 갖춰 입은 남자가 예술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필요하면 예술을 거래도 할 수 있다는 좋은 인상을 받았다. 무릇 예술도 거래가 되어야 한다. 여기 걸려있는 그림들이 제 아무리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해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면, 쳐다봐도 누구도 사겠다고 하지 않는다면, 모 저명 평론가가 `여기 예술이 있다`고 언론에다 떠들어주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을 후원하고 말겠어` 하는 결심을 하는 예술애호가가
우리는 도도녀가 백화점에서 장시간 쇼핑을 한 후에는 억누를 수 없는 영혼의 허기로 인해 백화점 꼭대기 전속 화랑에서 그림을 감상하고야 만다는 정보를 얻고, 이를 우리의 남자 친구에게 분명히 전달한 바 있다. 해서 도도녀를 유혹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갖고 꾸준한 노력을 해 온 그 이름 한백수는 일찌감치 화랑에 도착하여 회화의 세계에 푹 젖어 있던 터였다. 한백수는 일찍이 세계적인 화가, 즉 피카소니 고호니 레오나르드 다빈치니 사갈이니 하는 인물들에 대해 알게 모르게 많은 정보를 축적해 왔고, 그 이름이 나오면 그들이 어느 나라 어느
도도녀가 남자를 느끼는 건, 단순한 포착이 아니다. 여자가 남자의 외양에서 슈트 이름과 시계며 넥타이며 구두며 기타 걸치고 있는 것의 국적과 그 제품명을 순식간에 파악하는 건 초보적인 인식에 불과하다 하겠다. 그러한 물품들의 외피를 꿰뚫고 본질에 다가가려는 여성의 심안은 오랜 세월 유전적으로 축적되어 온 것이다. 남자의 허세를 뚫고 실질적인 실체, 그러니까 여성에게 뭘 실질적으로 부여할 수 있나 하는 데에 대한 파악은 가히 섬광과도 같다 하겠다. 도도녀가 마트에서 물품을 고르면서도 뒤에서 느껴지는 어떤 존재, 건너오는 심상치 않은
도도녀, 얼굴 반반하고 몸매 우월하고 근접하기 어려워 보이는 그녀가 어디에 주로 나타난다고? 호텔이나 회원제 레스토랑이나 골프장이나 패션쇼장은 아니라고 이미 말했다. ‘전설의 짬뽕’이나 ‘멋쟁이 미장원’이나 ‘삼거리 숙녀복’ 같은 데 자주 출몰한다고 입 아프게 말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우연히 부딪친다는 건 신사의 입장이나 사내라는 지위 면에서 어울리지 않는다 하겠다. 대신 나는 대형 마트를 제시한 바 있다. 도도녀가 대형 마트에서 올이 풀린 추리닝을 입고 카트를 끌고 있다면, 그녀는 경계심을 완전히 푼 채 한가하고 느긋하게 소소
리얼 스토리(real story) 윤 한 로아파트 주차장 여중생 성추행범이 잡혔다범인은 땅딸막한 사십대 일용노동자로 처자식도 다 거느린 사내였다 해거름쯤 평소와 같이 연장 가방을 챙겨들고그 일 벌써 새까맣게 잊었겠구나뒷주머니에 스포츠 신문 한 장 쿡 찔러 넣고 웬일로 좀 일찍 들어온다 싶더니 붙잡혔다, 오든마튼번짐 처리 얼굴에서 꼭 애 것도 같고 고양이 것도 같고 어찌 보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변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어어, 당신들 도대체 뭐야 하며둬 번 딱 잡아떼다간 갑자기 꼬리를 내린다무슨 생각을 했는지? 죄송하다며, 자기가
한 자리에 앉은 남녀가 헤어질 땐 이별의 아픔이 밀려오는 법이었다. 여기가 대동강 부벽루는 아니지만, 눈앞에 강이 흘러 눈물을 보탤 수는 없지만, ‘수상한 카페’라고 남녀가 동석하는 무대가 있고, 위장으로 흘러드는 술이 있어 눈물보다 뜨거운 욕망이 솟구치니 남녀의 이별은 언제 어디서나 가슴을 울린다 하겠다. 특히 만지면 느낌이 바로 오고 만지지 않아도 느낌이 시나브로 오고 있는 마담 ‘살찐 뱀’을 현장에 두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배삼지 국장의 가슴은 크게 쓰라렸다. 쓰라렸다기보다 아려왔다. 왜 우리는 만난 지 두어 시간 만에 헤어
수상한 카페의 마력적인 마담 ‘살찐 뱀’이 이제 겨우 환갑이 된 어머니와 고 3 사내놈과 중3 계집애와 반전세집에서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이 지난주에 밝혀졌다. 고 3이 집안에 하나 있다면, 사내건 여자아이건 그 놈은 완전히 집 안의 공기를 바꿔놓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또는 동네 학원에서 고액 비밀과외까지 돈이란 돈은 있는 대로 빨아들이는 흡혈귀이자, 때로는 기울어가는 집 안의 희망으로 앞날에 뭐가 될지 모르는 꿈나무로 벌써부터 그 존재감이 두드러져 보이는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중3으로 말하자면, 될
배삼지 국장이 동네 어귀의 수상한 카페에서 양주를 앞에 놓고 살찐 뱀 같은 마담과 대화를 나눈 지 한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치명적인 독을 품은, 살찐 뱀 같은 마담은 양주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자 ‘화장실 좀’ 하며 일어서더니, 살짝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며 화장실인지 어딘지를 향해 걸어갔다. 배삼지 국장은 크게 긴장했다. 어떻게 해서 마담이 하품을 다 하게 되었는지, 수치심과 함께 책임감을 느꼈다. 잠시 참을 수 있었을 터인데, 아니면 화장실로 가서 찢어져라 입을 벌릴 수도 있었을 터인데 들키란 듯이 조그마한 하품을 한 것은,
당나귀 신사 백팔만은 간이 콩알만했다. 해서 칠성테크 주식이 전날에 이어 오늘도 오르자 떨어질 때보다 더 안절부절못하며 그만 내다 팔고 말았다. 150만원의 수익이 이틀 만에 생겼으니 이만하면 성공이라고 자위하며 어디 다른 싼 주식이 없나 시세판을 서핑하였다. 이런 점이 백팔만이 큰 인물이 될 수 없음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었다. 큰 인물의 특징인 인내심이라든가 배짱이라든가 추진력 따위가 도통 보이지 않는 것이다. 대박 증권회사 트레이딩 룸에는 전날 함께 술을 하고도 맨 정신처럼 택시를 타고 가버린 마돈걸이, 일시적인 수익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