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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 (11) - 승패의 기준이 된 사나이

서석훈
  • 입력 2010.05.1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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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당나귀 신사 백팔만은 간이 콩알만했다. 해서 칠성테크 주식이 전날에 이어 오늘도 오르자 떨어질 때보다 더 안절부절못하며 그만 내다 팔고 말았다. 150만원의 수익이 이틀 만에 생겼으니 이만하면 성공이라고 자위하며 어디 다른 싼 주식이 없나 시세판을 서핑하였다. 이런 점이 백팔만이 큰 인물이 될 수 없음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었다. 큰 인물의 특징인 인내심이라든가 배짱이라든가 추진력 따위가 도통 보이지 않는 것이다.
대박 증권회사 트레이딩 룸에는 전날 함께 술을 하고도 맨 정신처럼 택시를 타고 가버린 마돈걸이, 일시적인 수익에 히죽히죽 웃고 있는 백팔만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녀는 백팔만 오빠가 어제 자신을 어떻게 하지도 못하는 것에 이미 그의 유약함을 알아보았다. 물론 그녀는 남자란 가급적 멀리 떨어져 있어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매초마다 바뀌는 컴퓨터 시세만 들여다봐서는 주식의 큰 흐름을 알 수 없듯, 눈앞의 경주 트랙만 봐서는 순간의 흥분과 흥분 이상의 좌절만이 남듯 남자도 손닿을 듯한 거리에서는 실체를 알아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원래 투자의 세계는 고독한 것, 애인이 동업자라면 여러모로 곤란할 것이었다. 꿈에도 보고 싶어 눈만 뜨면 달려가고 싶어야 애인인데 상대가 백팔만이라면 어디로 달려가야 하는가? 게다가 그는 그랜저가 아니라 당나귀를 몰고 있지 않은가? 그는 당나귀를 애첩이라도 되는 양 애지중지하고 있지만.
그럼 주자를 갈아탄 백팔만은 어떻게 되었을까? 칠성테크는 오후에도 계속 올라 그를 머쓱하게 한 반면 그가 새 주자로 선택한 은행주는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왜 하필 은행주야?” 마돈걸이 연민에 찬 말을 건넸을 때 백팔만은 가만히 있었다. ‘은행에 예금을 못하니 주주라도 되어보려고 그런다. 왜?’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이때 백팔만을 더욱 참담하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우리의 지도자 ‘탈법자’께서 친히 전화를 주신 것이다. “주식은 잘 갖고 있지?” 이렇게 물었을 때 진작 팔았다는 소리를 할 수가 없었던 백팔만은 “그럼, 정말 고맙네.” 하고 대답하고 말았다. 탈법자는 “시세는 이제부터네.” 하고 끊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제부터라니? 설마 이제부터 떨어진다는 얘기는 아닐 터이고,
백팔만은 기분이 크게 다운되어 오늘도 한 잔 해야 했다. 마돈걸은 백팔만이 내다 판 칠성테크를 몰래 사서 재미를 보고 있었는데 누구를 만나려 가는지 그만 내빼버렸다. 마돈걸이 재미를 본 이유는 간단했다. 백팔만이 어떤 주식을 팔면 그 주식은 꼭 오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마에서도 승률이 유독 좋지 않은 자가 선택한 번호를 보고 그 말만 피해서 가는 자가 있다. 그 자의 승률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럼 승률이 유독 좋은 자를 무조건 따라 하면 어떨까? 글쎄, 지금 한 번 해보시라. 행운을 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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