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윤 한 로종종종새 발자국 찍혔네에헴,그러나 모도 다 업수이여기네숯검댕이 굵은 눈썹꼬마 눈사람바람 찬 한데헌 잠바떼기 하나 걸치지 않았네허구한 날기름 먼지 때에 절은쪼만하신 아버지오늘따라그립고나 시작 메모왜, 김동리 ‘무녀도’ 처음 대목이 마누라는 죽고 홀애비 하나가 벙어리 딸을 나귀에 태우고 양반 집 문전을 찾지 않는가. 그런데 그 애비 나이 쉰 가량에 체수도 조그맣고 행색마저 초라해 마치 ‘남자 하인과 그 상전의 따님 같다’ 했다. 아버지들, 이제 집에서 이렇게 머슴 같고 하인 같다. 서글프다. 허구한 날 헌 잠바떼기 하나
마돈걸이 유세련과 베드에 함께 있다가 받은 전화는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로부터 걸려온 것이었다. 두 얼굴이 아니라 다섯, 여섯 얼굴이랄 수도 있는 이 사나이는 한 나라의 문화 예술정책 전반에 걸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모 부처의 국장이었다. 그는 하루에도 여러 번 행정가에서 감독관으로 수행원으로 문화인으로 애인으로 남편과 아버지로 그 역할을 바꿔야 하는 숨 가쁜 여정 속에서, 오늘 가정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하나의 역할을 하고자 휴대폰을 든 것이다. 뭔 추상화가라나, 그리고 뭔 회화대전 심사위원이라나, 뭔 미술대학원 학
천하의 바람둥이 유세련이 기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마돈걸의 육체, 아직 그 표피에 머물며 탐색하고 있을 즈음 어디서 아련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사람을 슬프게 하는, 사람의 마음을 어디론가 한없이 끌고 가는 감미로운 음악이었지만 지금 온 감각이 한 가지 목적으로 불타오르고 있는 유세련에겐 성가신 방해거리로 다가왔다. 아니다 다를까, 마돈걸이 “아이”하며 몸을 뒤채더니 일어나서는 가방을 주섬주섬 뒤져 기어코 휴대폰을 받는 것이었다. 걸려오는 전화에 대한 즉각적이고 신속한 반응이야 말로 나이 불문 모든 여성들의 공통점인데 뜨거운
지각 윤 한 로나는 재수를 해서 내 친구들은 나보다 한 살이 적다그래도 나는 좋다는 정정구가 오늘도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다콧물을 훌쩍거리면서, 직수굿복도 끝 비둘기 발가락을 보고 있는 갑다종종종새우젓 냄새를 피우며바짝 다가올 것 같아한쪽 팔을 바꿔 짚어도 먹물을 찍은 듯한 눈알 이젠 겁도 없어 날아갈 줄 모른다바람 한 점 없는교실 바깥 맑은 날씨 이런 날은어딘가로 떠나가고파, 흘러가고파흰구름 깔치 삼아 시작 메모지각생들 중에는 성격 좋은 애들이 아주 많다. 온순하고 따뜻하고 꾸밈이 없고 인간적이다. 이해력과 상상력이 풍부하고 세상
유세련은 마돈걸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의 알몸을 감싼 대형 타월이 어째서 흘러내리지 않고 그대로 붙어있는지 궁금해 하고 있었다. 타월의 양 끝을 묶지도 않았고 손으로 잡고 있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몸의 라인을 살려가며 앞뒤로 팽팽하게 돌아가고 있냐 말이다. 결론은 그녀의 터질 듯 솟아오른 젖가슴이 타월이 미끄러지는 걸 방지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는데, 타월도 남자가 벗겨줘야 하는 건지 유세련은 알 수가 없었다. 드레스의 뒷자크를 아래로 내리고 블라우스의 뒷단추를 하나하나 풀어준 적은 적잖이 있지만 타월을 벗겨준 적은 없었던 것이
‘모텔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이것이 모텔을 한 번이라도 이용해 본 자들의 한결 같은 감회다. 과연 모텔은 그러했다. 이름과 나이, 직업과 신용카드 색깔을 물어오지 않았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듯 베드는 그 눈부신 흰 빛으로 열려 있었다. 유세련은 베드에 바로 몸을 던질 만큼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베드는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보다 특별한 주인을 맞이하여, 베드도 긴장하며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9층 909호실 더블 베드는 마치 순결한 처녀처럼 떨고 있는 듯했다. 오늘 낮에만 해도 남녀 도합 170킬로그
찾아온 기회를 발로 차 버린 사나이. 그 사람이 바로 자기라고 당나귀 신사 백팔만은 한탄하였다. 제대로 작전 걸린 주식을 쥐꼬리 수익만 먹고 제 풀에 놀라 팔아버렸으니 누굴 원망하겠는가? 증권회사가 흐뭇해하며 바라보는, 끊임없이 사고팔고의 대가가 바로 백팔만이었다. 그렇게 자주 사고팔면 어떻게 되는가? 물론 증권회사는 수수료를 자주 벌게 되며 파는 경우에는 국가도 수수료를 거둬간다. 백팔만은 금융업의 번창에 기여하는 거래중독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애인이 화장실 가는 시간도 못 참는 열혈 연인처럼 한 레인도 쉬면 안 되는,
고향 윤한로딱 한번여섯 살 적인가, 그땐 무슨 일로다 그렇게 내 따귀를 때리셨을까되게도 순하셨던 아버지돌아가시기 전혀도 굳고 오줌도 똥도 막히고눈곱 끼어 짓무른 눈 물끄러미 날 쳐다보더니, 문득 지린내 나는 손가락 들어 천장 한구석 가리키신다막무가내나 옥천에 데려다 달라는데도저히 막을 수 없구나어찌나 힘이 센지시작메모 :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사 년째 되는구나. 살아계실 때 술 한잔 하시고 “야, 내 고향 남쪽 바다란 노래를 누가 썼냐?” “왜요.” “가사를 들으니 뭉클하다. 파란물이 정말 눈에 삼삼하다.” 나이를 잡수셔서 그런가했
당나귀 신사 백팔만은 간이 콩알만했다. 해서 칠성테크 주식이 전날에 이어 오늘도 오르자 떨어질 때보다 더 안절부절못하며 그만 내다 팔고 말았다. 150만원의 수익이 이틀 만에 생겼으니 이만하면 성공이라고 자위하며 어디 다른 싼 주식이 없나 시세판을 서핑하였다. 이런 점이 백팔만이 큰 인물이 될 수 없음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었다. 큰 인물의 특징인 인내심이라든가 배짱이라든가 추진력 따위가 도통 보이지 않는 것이다. 대박 증권회사 트레이딩 룸에는 전날 함께 술을 하고도 맨 정신처럼 택시를 타고 가버린 마돈걸이, 일시적인 수익에
분교 마을의 봄 윤한로우리 분교 마을엔산 너머 너머 언니가가는 체로 쳐 보낸 고운 바람사택 울타리엔 노란 봄먼 산엔 붉은 봄하늘엔 뻐꾹 봄손등엔 쓰린 봄내 마음엔 산 너머 너머 언니가튼 손 씻어주던아직도 작년 봄시작 노트이 시는 옛날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낸 시다. 모자란 시이지만 시 속에서 말하지 못한 일로, 밝힐 게 하나 있다. 어렸을 적 나는 워낙이 숫기가 없었고 우리 집 형제들은 남자가 둘, 여자가 셋으로 여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여자들을 따라 형을 오빠라고 부르고 누나를 언니라고 불렀다. 나이가 먹어서도 좀처럼 쑥스러워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