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당나귀 신사 (12) - 붐벼야 장이지요

서석훈
  • 입력 2010.05.23 12:0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영창(소설가, 시인)
찾아온 기회를 발로 차 버린 사나이. 그 사람이 바로 자기라고 당나귀 신사 백팔만은 한탄하였다. 제대로 작전 걸린 주식을 쥐꼬리 수익만 먹고 제 풀에 놀라 팔아버렸으니 누굴 원망하겠는가? 증권회사가 흐뭇해하며 바라보는, 끊임없이 사고팔고의 대가가 바로 백팔만이었다. 그렇게 자주 사고팔면 어떻게 되는가? 물론 증권회사는 수수료를 자주 벌게 되며 파는 경우에는 국가도 수수료를 거둬간다. 백팔만은 금융업의 번창에 기여하는 거래중독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애인이 화장실 가는 시간도 못 참는 열혈 연인처럼 한 레인도 쉬면 안 되는, 끊임없이 달리는 경마팬이 계신다. 그의 첫째 과제는 매 레인에 참여하는 것이며 순위가 확정되는 짜릿한 극적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한 레인만 쉬어도 그는 마치 큰 기회를 놓친 듯 후회하며 슬퍼한다. 틀림없이, 순위에 들어온 말에 걸었을 터인데 하는 강력한 자기암시에 빠져든다. 이들은 큰 손이 아니어서 마사회의 수익에 크게 기여하는 건 아니지만 거래 활성화에 기여하는 공만은 지대하다고 볼 수 있다.
주식시장에서도 백팔만이 수수료 수입을 올려주면 얼마나 올려주겠는가? 그것보다는 백팔만 같은 개미들이 끊임없이 사고 팔 때 시장이 붐비는 것처럼 보이며 조바심치는 모습들이 반영됨으로써 시장의 긴장과 탄력을 높이는 것이다. 큰 손이라면 한 번 매매로 백팔만이 일 년 매매하는 것보다 더 큰 수수료를 증권회사와 국가에 헌납하겠지만, 시장을 시장처럼 보이게 하는 역할은 역시 수많은 백팔만이 맡아주어야 한다. 이 점에서 개미 백팔만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경마도 큰 손 몇이 노는 걸로 그친다면 그 금액이 아무리 크다 한들 무슨 흥이 나겠는가? 전력을 다해 레인을 뛸 때 소리는 조막손들이 더 지른다는 걸 말들은 알고 있다. 서민들의 애환이 살아 숨 쉬어야 장은 장답게 되는 것이다.

백팔만은 팔아버린 칠성테크가 상한가를 치는 걸 보고는 눈이 뒤집히며 기절할 것 같았다. 오직 백팔만 그 하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 주가가 화려한 쇼를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그냥 갖고 있었으면 앉아서 230만원을 추가로 벌었을 터인데 촐랑대며 은행주로 갈아탄 탓에 오히려 50만 원 손해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300만 원 가까운 돈이 허공에 떠버린 것이다. 몰래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마돈걸이 칠성테크로 상한가를 먹고 있는 걸 백팔만이 알 리 없었다. 마돈걸에게 상한가란 오르가즘이 지속적으로 폭발하는 느낌을 말하는 것이었다. 마돈걸은 축하파티를 백팔만 오빠가 아니라 딴 사내와 할 예정이었다. 백팔만은 그저 이곳에 불쌍하게 세워두면 되는 것이다. 그게 더 술맛을 돋우지 않겠는가? (다음 주에 계속)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