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이 화장실 가는 시간도 못 참는 열혈 연인처럼 한 레인도 쉬면 안 되는, 끊임없이 달리는 경마팬이 계신다. 그의 첫째 과제는 매 레인에 참여하는 것이며 순위가 확정되는 짜릿한 극적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한 레인만 쉬어도 그는 마치 큰 기회를 놓친 듯 후회하며 슬퍼한다. 틀림없이, 순위에 들어온 말에 걸었을 터인데 하는 강력한 자기암시에 빠져든다. 이들은 큰 손이 아니어서 마사회의 수익에 크게 기여하는 건 아니지만 거래 활성화에 기여하는 공만은 지대하다고 볼 수 있다.
주식시장에서도 백팔만이 수수료 수입을 올려주면 얼마나 올려주겠는가? 그것보다는 백팔만 같은 개미들이 끊임없이 사고 팔 때 시장이 붐비는 것처럼 보이며 조바심치는 모습들이 반영됨으로써 시장의 긴장과 탄력을 높이는 것이다. 큰 손이라면 한 번 매매로 백팔만이 일 년 매매하는 것보다 더 큰 수수료를 증권회사와 국가에 헌납하겠지만, 시장을 시장처럼 보이게 하는 역할은 역시 수많은 백팔만이 맡아주어야 한다. 이 점에서 개미 백팔만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경마도 큰 손 몇이 노는 걸로 그친다면 그 금액이 아무리 크다 한들 무슨 흥이 나겠는가? 전력을 다해 레인을 뛸 때 소리는 조막손들이 더 지른다는 걸 말들은 알고 있다. 서민들의 애환이 살아 숨 쉬어야 장은 장답게 되는 것이다.
백팔만은 팔아버린 칠성테크가 상한가를 치는 걸 보고는 눈이 뒤집히며 기절할 것 같았다. 오직 백팔만 그 하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 주가가 화려한 쇼를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그냥 갖고 있었으면 앉아서 230만원을 추가로 벌었을 터인데 촐랑대며 은행주로 갈아탄 탓에 오히려 50만 원 손해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300만 원 가까운 돈이 허공에 떠버린 것이다. 몰래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마돈걸이 칠성테크로 상한가를 먹고 있는 걸 백팔만이 알 리 없었다. 마돈걸에게 상한가란 오르가즘이 지속적으로 폭발하는 느낌을 말하는 것이었다. 마돈걸은 축하파티를 백팔만 오빠가 아니라 딴 사내와 할 예정이었다. 백팔만은 그저 이곳에 불쌍하게 세워두면 되는 것이다. 그게 더 술맛을 돋우지 않겠는가? (다음 주에 계속)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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