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침식사에 나의 벗을 한 번도 빠뜨린 적이 없다. 나의 벗인 커피를 빼놓고서는 어떠한 것도 좋을 수가 없다.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원두는 나에게 60가지 영감을 준다.˼ 베토벤 여길 가도 카페. 저길 가도 카페.눈 감고 아무 곳이나 걸어가면 또 나오는 카페.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 하는 사람이 보인다.친구와 함께 카페 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심지어 이 글도 카페에서 나왔다.어느새 우리의 일상 속 큰 문화적 지분을 차지한 카페.거리두기를 위해 집에 있노라면 문득 자주가던 단골 카페의 쌉싸름한 원두향이 그리워
민달팽이 달팽아 내 달팽아어찌 홀로 집이 없느냐한 켠 누일 관조차도 없구나넌 정말 유별나구나 나와 부모님은고요속에서 서로를 알았다우린 분명 서로를 사랑하지만우린 아마 서로에게 죄인이다 침묵 속 찢어지는 비명들리지 않음에도 들리는 울림평화를 종식하는 관현악 속에서조용히 웅크려 종전을 기다린다
노래를 읽는다는 것 간간 노래를 듣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한다. 순수한 호기심 혹은 작은 공감대를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눈을 보며 나는 기꺼이 “Yes” 라 대답한다.사실 엄밀하게, 오해의 소지 없이 말하자면 노래의 ‘음’ 까지는 느끼지 못한다. 박자에 맞춰 나오는 노래의 ‘가사’를 들을 뿐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랩을 더 좋아했다. 발음 교정을 위한 언어 재활치료도 아웃사이더의 랩으로 하곤 했다. 발음은 다소 나아졌지만 부작용이 있다. 가끔 말을 천천히 해줄 수 있냐는 부탁을 듣는다.요즘은 보청기로 미디어 매체의 소리를 들을 수 있
잠겨 죽어도 좋으니 밀려오라 최근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께 꾸지람을 들었다. 왼쪽 눈의 안압이 위험 수치로 높아 졌으니 이젠 술을 멀리 하라는 전언이었다. 하지만 나는 못 지킬 약속은 하지 않는다. 노력은 해 보겠다 하고 나왔다. 올려다본 하늘은 뒤지게 맑다.시큰하게 흐릿한 눈 속 초점이 안 맞는 술병을 보며 둘과의 추억을 회상했다. 나는 본디 술을 싫어했다. 정확히는, 비효율적인 것을 혐오했다. 굳이 돈을 들여가며 몸을 망치고 중독되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제 주량을 감당하지 못해 어불성설이 되는 꼴을 보면 우스웠다. 숙취에
거리두기와 상실 누구나 초등학교 시절, 내가 상상하는 100년 후 미래의 포스터를 그려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당시 학급에선 과학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미래는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가 도래할 거라는 그림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본인은 절대적인 디스토피아 옹호자였기 때문에 대기 오염과 전염병 등으로 모두가 마스크와 방독면을 착용하고 다니는 미래인의 모습과 뿌연 하늘의 미래를 그려내곤 했다.그런데 100년, 50년 이후도 아닌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벌써 디스토피아가 도래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거리에 나올 때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나는 카페에 갈 때 메뉴를 고민하지 않는다. 메뉴 가짓수가 적든 많든 내 선택은 항상 정해져 있다. 에스프레소, 더블 샷. 나는 에스프레소가 좋다. 카페에 가면 항상 에스프레소만 주문한다. 테이크 아웃이 안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에스프레소를 주문한다는 것은 곧 카페인 중독자들에게 뿌리내린 아메리카노 체제에 반하는 것이다. 주문할 때마다 주위 아메리카노 광신도들에게 (이 유형이야말로 추운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이해할 수 없는 유형이다.) 신기한 시선을 받는 건 이미 적응됐다. 확실히 평범한 기호는 아닌 듯하다. 내
친구여, 나는 오늘 그대에게 평소의 사담이 아닌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자 합니다. 내 본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는 외행성에 불시착한 표류자의 마지막 고백이자 기록입니다. 자아의 상실에서 오는 두려움을 친구여 당신은 아시나요? 이름 모를 병원. 나를 껴안고 우시는 부모님. 귓속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지금도 생생히 되감기는 장면입니다. 내가 처음으로 보청기를 장착한 때이고, 처음으로 내 이름 석 자를 들었던 때입니다. 이때 내 몸을 지배한 것은 ‘듣는다’라는 환희가 아닌 ‘들린다’라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처음 접하는 감각. 내가 원하지
“나가서 좀 걸을까?”시끌시끌한 술자리가 벌어지고 있는 펜션의 조용한 방구석 한 켠 함께 있던 그녀에게 고심 끝 멘트를 던졌다.동기들과 함께 가는 대학교 첫 MT. 동기 단톡방 속 과대의 인원 조사 투표에서 어렵기만 한 선배들이 안 따라온다는 말에 흔쾌히 참가표를 던졌다. 청각 장애로 인해 사람들과 어울리는게 어려워 학과 모임 및 행사에도 일절 불참했던 나였지만 그래도 내심 동기들과 친해지고 싶은 터에 잘됐다 생각했다. 동기 MT의 목적지는 가평. MT 선발대에 합류한 나를 반겨준 것은 보기만 해도 속이 뒤집혀지는 소주 한 궤짝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