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3. 17. 10:56머뭇거리는 마음. 동생들과 사소한 농담을 하다가 멈칫하는 나를 발견한다. 짧은 순간 어떤 판단을 한 것 같다. 일종의 자기 검열이었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게 적절할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덧붙여 말하자면 내 말이 상대방에게 어떤 생각이 들게 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특히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하는 나날이다. 예전에는 타인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기에 바빴다. 그게 소통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더 중요했다. 지금은 아까 말한 것처럼 말할 때 자주 멈춘다. 아니, 시작하기 전에 생각해 본다.
2023.03.14.01:39.연기에 가하는 목적 없는 채찍질. 근 며칠간 정말 많은 영상을 찍었다. 오디션 영상이기도 하고 촬영 영상이기도 했다. 첫 영상 까지는 마음이 괜찮았다. 그런데 오늘 연기를 보니 엉망이다. 하나씩 촬영하면서 나는 뭔가가 잘못 됐음을 직감했다. 준비도 부족했고 연기에서 어떤 것도 빛나지 않았다. 그저 조잡한 기술 몇 가지만 있을 뿐이었다. 타성에 젖어서 하던 대로 하는 연기. 장면과 인물에 대한 통찰력도 독창성도 없었다. 그래서 마음이 괴로웠다. 보통 같으면 문제를 짚어 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채찍질
살인자와 프로파일러는 앤 울버트 버지스가 쓰고 김승진 님이 번역하고 북하우스에서 2023년 2월 24일 초판이 나왔다. 가장 최근에 나온 범죄 프로파일링 기법 책이다.저자는 1936년생으로 보스턴칼리지 간호대학원 교수며 법과학, 정신 의학 전문 간호사로 20년 넘게 FBI와 일했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낙인찍는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는데 앞장섰다.책이 두께에 비해 어렵지 않게 읽힌다. 자기 얘기를 덧붙이며 쉽게 친숙하게 썼으며 사례를 들어 지루하지 않다. 사례가 너무 자세해서 놀랍지만 생생하게 범죄에 대해 접근할 수 있다. 범
갈필, 못다 쓴 편지 / 김주선 이보게 용식이. 한문 서체보다 한글이 서툴렀음에도 아버지는 매번 이름만 반복해서 써 보고는 종이를 접곤 했다. 글씨 쓰기를 연습하는지 붓의 결을 테스트하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모필에 먹물을 흥건하게 묻혀 쓰는 매끈한 글씨체도 아니고 뻣뻣한 갈필로 쓰는 비뚤비뚤한 글씨였다. 게다가 먹물도 잘 먹지 않는 붓인지라 글씨의 획은 각질이 생긴 발뒤꿈치처럼 텃고 거칠었다. 삼십여 년 전 엄마의 거울처럼 맑은 달이 뜬 밤이었다. 제삿날에 지방紙榜을 쓰는 듯한 정갈한 자세로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먹을 갈았다. 지금
2023. 02. 28. 01:33.요즘 글 쓰는 것이라든가 내 생각이라든가 깊게 고민할 겨를이 참 없다. 다른 사업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생계에 대한 집중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삶의 노예가 된 것 같다. 삶이라는 수레바퀴를 굴리기 위해서만 살고,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는 고민하지 않는 노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자꾸 짧아져서 무심코 타인에게 배려심을 갖추지 못한 대꾸를 하곤 한다. 나는 이내 미안하다 말하지만 상대방은 분명 상처가 됐을 것이다.아마도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요즘을 사는 중인 것 같다. 그래서 나밖에 보지
2023.02.21. 16:12현장에서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기는 상당히 어려운 경우다. 그래서 동갑인 배우나 연출, 스텝을 만나면 더 말을 많이 걸고 친해지려고 하곤 한다. 생각하는 범위와 겪어온 삶의 기록들이 비슷하기 때문에, 공감하기 쉽기 때문에. 그런 이유들로 동갑인 사람을 만나면 금방 속에 있는, 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함께 생각한다. 우리의 나이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결혼과 연애. 오랜만에 동갑내기 연출을 만나서 식사를 하게 됐었다. 우리 나이에 흔히 하는 말이니까, 연애는 안 하냐고 물었다. 기억을 더
돌의 재발견/김주선 섬마을의 정오, 함박눈 내리는 날, 귀향, 언덕 위의 빨간 집, 독거촌의 만설, 노인과 바다, 그리고 남과 여. 이 모두가 수석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 이름이다. 크게는 산수경석과 형상석이지만, 고가의 작품이라고 할 정도로 지방자치단체에서 보호하고 관리하는 수석이다.어느 애석인의 석실을 탐방하는 유튜브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푹 빠져들었다. 자연이 그린 그림이라고 하기엔 그 문양이 경이로움과 신비 자체였다. 처음 수석을 보았을 때는 그저 돌덩어리일 뿐, 별다른 감흥을 못 느끼던 차에 유난히 눈에 띄는 문양석에 그만
2023. 02.12. 01:33.꿈이 있어서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 아직 모르겠다고 했다. 운동 관련 일을 할지, 시험을 볼지, 옷 관련한 일을 할지. 고민하는 모습에 나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성급한 편이라 직업을 정하는 데에 망설임이 없는 편이었지만,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고심하는 모습이, 나에겐 없는 모습이라 멋있었다. 고민의 흔적은 결과물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니 분명 좋은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고민한 흔적이 좋은 과정이다. 좋은 과정인지 알기 위해선 때론 과정이
2023. 02.01.00:03.요즘 들어 쓰는 내 글들을 보면 나는 피동형 문장을 자주 쓴다. '하다' '한다' 같은 말보다는 '된다' '됐다' 같은 문장을 만드는 것이다. 왜 그럴까 고민하다 보니, 내 심리를 더 자세하게 나타낸다는 거라고 으레 짐작한다. 사실 대부분 능동형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굳이 그렇게 쓰고 싶지가 않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음이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된다' 내 의지로 하긴 했지만 뭔가 내 의지 밖의 무언가에 기대게 되는 느낌이다.실제로 삶이란 노선에서 내 맘대로 혹은 내 의지대로 되는 경로가 있던
2023.01.30. 03:22.말하는 대로 2023. 말하는 대로 이뤄진다는 강한 믿음이 있다. 그래서 매년 이루고 싶은 것들을 말하고, 이루어진 것들을 적어보곤 한다. 작년에 자주 말했던 것은 일억 모으기였다. 집을 사고 싶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집값이 폭등을 한 작년이었다. 그래서 일억으로는 경기도에서도 집을 살 수없게 됐다. 본질적인 이유는 집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부수적으로 말했었다. 그런데 작년을 돌아보다가 문득 생각해 보니 비슷한 목표를 이미 이뤘다. 물론 다 완벽하게 만족스럽지는 않다. 그러나 정
2023. 01. 20. 16:58연애편지. 일기나 글에 연애 이야기를 거의 적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에도 미래에도 도움 될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발목만 잡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관계가 끝날 때에는 마치 나만 상처받고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곤 한다.이석원, 라는 책을 읽는데 무수한 연애 이야기가 나온다. 사랑했던 글, 사랑하던 글. 짝사랑 같은 글. 나는 일기에도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썼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다음 사람에게 일기를 들키고 싸움의 구실을 만든다.
2023.01.17.01:39우울감, 우울감이 느껴지는 날이 있다.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우울감. 오늘이 그런 날은 아니다. 그런 날은 몸이 축축하게 늘어져서 100g 정도 되는 펜이 마치 10 kg처럼 느껴지고 글을 적겠다는 의지도 생기지 않는다. 대략 한 달 정도 우울감이 왔다 갔다 하는 과정을 겪었다. 항상 좋은 기분을 유지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것도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겠거니 하고 넘겨짚는다. 그렇게 좋아하는 촬영장에 갔다가 와서도 그렇게 기쁘지가 않은 것이다. 더운물로 몸을 덥힌다. 많이 추운 촬영이었었다. 처음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