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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 쓰는 감정] 목적 없는 채찍질

이진성
  • 입력 2023.03.1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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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4.01:39.

연기에 가하는 목적 없는 채찍질. 근 며칠간 정말 많은 영상을 찍었다. 오디션 영상이기도 하고 촬영 영상이기도 했다. 첫 영상 까지는 마음이 괜찮았다. 그런데 오늘 연기를 보니 엉망이다. 하나씩 촬영하면서 나는 뭔가가 잘못 됐음을 직감했다. 준비도 부족했고 연기에서 어떤 것도 빛나지 않았다. 그저 조잡한 기술 몇 가지만 있을 뿐이었다. 타성에 젖어서 하던 대로 하는 연기. 장면과 인물에 대한 통찰력도 독창성도 없었다.

그래서 마음이 괴로웠다. 보통 같으면 문제를 짚어 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채찍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냥. 목적이 없는 자기 비하는 그냥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앞으로 잘하라는 격려가 아니라, 그동안 왜 그렇게 나태했어. 하면서 후려 갈기는 것이다. 스스로를 조롱하고 욕한다. 비아냥대면서 예술성 어쩌고를 논한다. 내 화가 사그라들 때까지. 나는 마치 <갈매기>의 뜨레플레프 같은 말을 지껄인다. 맨날 새로운 형식 형식 어쩌고 하면서 정작 증명은 못한 주제에. 새로운 형식 운운하면서 결국 새로우려고만 하고 정작 연기 본연의 가치는 잃었다. 본적 없는 연기를 보여 주겠다고 호기 부렸지만 결국 증명 못한 꼴이다. 멋진 말로 스스로를 꼬셨던 그 세치 혀는 아까의 호기를 잃었다.

어떤 날은 이렇게 자기 가학적인 날도 있다. 다시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치만 다시 찍는다고 뭔가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그러기엔 당장 눈앞에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엄두가 잘 나지 않는다. 다시 쌓아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다시 해결하도록 신경을 쓰자. 침착하게 문제를 생각하자. 그러고 보니 자기 학대 채찍질이 효과가 있는 것인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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