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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 쓰는 감정] 머뭇거리는 마음

이진성
  • 입력 2023.03.23 02:13
  • 수정 2023.03.23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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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3. 17. 10:56

머뭇거리는 마음. 동생들과 사소한 농담을 하다가 멈칫하는 나를 발견한다. 짧은 순간 어떤 판단을 한 것 같다. 일종의 자기 검열이었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게 적절할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덧붙여 말하자면 내 말이 상대방에게 어떤 생각이 들게 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특히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하는 나날이다. 예전에는 타인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기에 바빴다. 그게 소통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더 중요했다. 지금은 아까 말한 것처럼 말할 때 자주 멈춘다. 아니, 시작하기 전에 생각해 본다. '이 말을 해도 되는 것인가, 무슨 말을 할까. 어떻게 들릴까.' 아마도 이렇게 변하게 된 이유는 코로나 이후로 책을 읽다가 생긴 버릇 같다. 책에는 내가 없고 오직 타인만 있다. 소설에는 인물이 있고 에세이에는 작가가 있다. 공감할 수는 있는 나라는 존재도 있지만 이내 나는 책 속에 있는 다른 자아의 생각을 따라간다. 인물의 생각과 시선, 감각을 따라간다. 무얼 보고 무얼 느끼는지 나는 그 사람이 되어서 상상을 펼친다. 그리고 수필에서 나는 작가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작가의 생각을 한 음절씩 읽어간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점점 많이 만나게 된다. 그 인물들과 작가의 반응에 자주 놀라곤 한다. 내가 상처받지 않는 것에 깊게 상처받고 또는 내가 화날 일에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그러면서 배운다. 우린 서로 다르다는 것을.

그동안의 무례함에 속죄한다. 내 삶으로 나와서 말 한마디로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주의하며 말하려 애쓴다. 쉽게 다가가지도, 쉽게 멀어지지도 않는다. 말에도 관계에도 자주 머뭇거린다. 꽤나 괜찮은 습관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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