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입을 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돌아온 이유나 아이 아빠의 정체, 그간의 행적, 현재 마음 상태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던 여자는 일주일이 지난 아침, 밥을 먹기 전에 부탁의 말부터 꺼냈다. 목소리도 달라진 듯했다.“영민아, 나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산부인과?”“진통이 시작된 느낌이야. 문도 열린 것 같고….”남자는 여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전에 알아 둔 산부인과에 전화부터 했다. 남자는 여의사가 있을 것, 집에서 가까워야 할 것, 산후조리를 잘할 것을 근거로 여자가 온 다음 날부터 산부인과를 알
‘인간은 당신처럼 전지전능하지 않아. 그래서 실수할 수밖에 없고 아플 수밖에 없다고. 저 여자를 봐. 이혼했어도 곧 털어 내고 자기 자유와 즐거움을 찾아 씩씩하게 진군하는 것 같지? 진실로 진실로 여자의 아픔을 체휼하고 있는가? 타고난 편력에 상처까지 더해져 자기 착취를 일삼는, 그 즐거운 고통을 알기나 하는가? 당신은 너무 오래된 구식인이라서, 텔레비전도 비행기도 없던 시절에 나귀 따위나 탔던 인물이라서, 60억 인구로 그득그득한 이 세대를 살아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 결코 알 수 없을 거야.내가 현실을 가르쳐 줄까? 선한 행동보
유령 해변이 아름다운 작은 도시에서 사는 G는, 바다라면 연상되는 태양 빛에 그을린 탄탄한 피부를 갖고 있지 않았다. G가 하얀 머플러를 바람에 휘날리며 산책하는, 단순히 바다를 좋아하는 소녀인줄 알았다. 거의 한달 동안 바다바람에 까맣게 탄 내 얼굴은 G의 하얀 낯빛과 대비되어 보였다. 그녀는 산에서 살았던 늑대아이처럼 야성적이면서 어찌 보면 숲의 요정처럼 기묘하게 아름다웠다. 오후 해변이 보이는 거리를 산책할 때마다 나는 G와 조우했다. 우리는 가벼운 인사와 눈웃음을 나눌 뿐이었다. 하루는 그녀가 내가 두 달 예정으로 묵고 있는
인생엔 예외가 필요하다 40대의 동영상 제작자는 일거리를 찾고 있는 여배우 민아 앞에서 시종일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녀는 이 작자가 이토록 여유를 갖고, 무슨 말을 해도 ‘그렇지’ ‘그렇군’ ‘그러게 말이야’ 같은 소리를 하며 가볍게 맞장구까지 치는 걸 보고 매우 의아했다. 저 여유만만과 저 염화시중의 미소와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아등바등하지 않는 모습이며, 테이블 주위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조금의 언짢음이나 적의 없이 너그럽게 바라보는 이러한 것들이 그가 알고 있던 그 영화감독 그 인간이 맞는가 하는 생각을 품게 하였다.
`누가 관계를 리드하는가?`가 지난주에 던진 질문이었다. 남과 여, 그 중에서도 유부남과 유부녀의 만남, 이들에게서 우리가 연상하는 건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고 하겠다. 유부남과 유부녀가 만나면 무엇을 하는가? 만나서 차 마시고 드라이브 하고 밥 먹고 술을 곁들이고, 노을이 질 무렵 또는 노을이 지기 전 거주할 곳을 찾아 잠시 몸을 뉘이니 이때 육체관계는 따라오는 것이며 모든 것이 끝난 다음의 고즈넉함과 약간의 막막함도 온전히 그들의 것이다. 대저 남자란 욕구의 충족이 마무리되는 즉시 그 장소를 떠나 다른 신천지로 재빨리 피신하거나
수상한 카페의 마력적인 마담 ‘살찐 뱀’이 이제 겨우 환갑이 된 어머니와 고 3 사내놈과 중3 계집애와 반전세집에서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이 지난주에 밝혀졌다. 고 3이 집안에 하나 있다면, 사내건 여자아이건 그 놈은 완전히 집 안의 공기를 바꿔놓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또는 동네 학원에서 고액 비밀과외까지 돈이란 돈은 있는 대로 빨아들이는 흡혈귀이자, 때로는 기울어가는 집 안의 희망으로 앞날에 뭐가 될지 모르는 꿈나무로 벌써부터 그 존재감이 두드러져 보이는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중3으로 말하자면, 될
옥수삼랑(玉首三浪) 윤 한 로임금님이 오줌을 누시네부르르 얼룩 진저리를 떠시네임금님옥 같은 거기에 이윽고 맑은 이슬 세 방울 맺히네똘똘똘터시네이, 이!다시금 떨떠름하니 되시어세상 건너다보시는데가물치 상을 쓰시네시작(詩作) 메모옛날 임금님 소피를 볼 때 다 누곤 꾸욱 짜내고 나서 남는 오줌 방울을 옥수삼랑(玉首三浪)이라던데. 임금님 거기를 `옥수`로 친다면 마지막에 맺히는 방울을 마치 이슬 방울 세 개 `삼랑`이라 막음한 게 아부와 하염없는 자아도취의 극치이며 제법 절묘하기까지 하다. 지럴. 나도 볼 일을 볼 때마다 거길 보고 자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