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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대통령이다 #마지막] “서로 주고받는 사랑, 삼위일체 신비입니다.”

이용준
  • 입력 2017.07.21 00:00
  • 수정 2020.07.1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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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난만, 순진함, 시작을 뜻하는 프리지어다. 여자는 프리지아라고 부르며 이제야 진정한 자유를 찾았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프리지어를 들고 남자와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에게 불행한 모습은 결코 찾을 수 없었다.

여자가 입을 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돌아온 이유나 아이 아빠의 정체, 그간의 행적, 현재 마음 상태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던 여자는 일주일이 지난 아침, 밥을 먹기 전에 부탁의 말부터 꺼냈다. 목소리도 달라진 듯했다.

“영민아, 나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
“산부인과?”
“진통이 시작된 느낌이야. 문도 열린 것 같고….”

남자는 여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전에 알아 둔 산부인과에 전화부터 했다. 남자는 여의사가 있을 것, 집에서 가까워야 할 것, 산후조리를 잘할 것을 근거로 여자가 온 다음 날부터 산부인과를 알아봤었다. 그러고는 옷가지며 세면도구며 생필품이며 이것저것 후다닥 챙기더니 여자를 부축해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나더러는 집을 잘 지켜달라는 말을 남기는 걸 잊지 않았다.

오후가 되어서 소식이 궁금해진 나는 여자가 좋아하는 사과와 복숭아를 짊어지고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노형오거리 근처 한나산부인과를 찾았다. 1인실에 입원한 여자는 진통이 계속되는지 아파했다.

내일 새벽이나 아침에 출산할 예정이니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달라고 남자가 부탁했다. 남자가 내민 종이에는 속옷, 양말 외에도 산모용 패드, 위생팬티, 수유패드, 손목보호대 등 생소한 것들이 적혀 있었다. 또 아기 내복과 기저귀, 배냇저고리 4개, 젖병 작은 것, 물티슈, 가제 손수건, 아기용 비누와 바스 샴푸와 같은 아기 물품도 있었다.

“1층에 유아용품 전문점이 있으니까 물어보고 사면 될 거야.”
“뭐가 이리 복잡하냐.”
“나도 계속 알아봤는데 장난이 아니네. 그래도 우리가 해야지.”
“미안해, 나 때문에…. 두 사람이 고생이네.”

간간이 찾아오는 진통 때문인지 미간 주름이 그새 더 깊어진 여자는 시선을 마주치지는 못하고 고개를 툭 떨군 채 미안함을 표시했다.

“미안할 게 뭐가 있니. 우린 친구잖아.”
생각보다 말이 먼저 툭 튀어나왔다.

“그래… 친구….” 여자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다음날 새벽, 본격적으로 진통이 시작됐다고 남자가 호출했다. 병원에 갔지만, 분만실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아이 아빠만 들어갈 수 있다며 간호사가 제지했고, 남자가 아빠 자격으로 여자의 곁을 지켰다. 초산임에도 아기는 늦지 않게, 3시간 정도 지나서 세상 빛을 봤다. 3월 10일 오전 9시 50분, 남자아이였다. 남자는 마치 자기 핏줄을 본 것처럼 감동에 벅차 눈물을 흘렸다. 여자 역시 울었는데 나만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생명의 신비가 신기했을 뿐이었고, 두 사람이 나와 다른 세계를 경험한 것 같아 약간의 질투심도 생겼다.

회복실에 있다가 병실로 온 여자는 우리를 보자마자 미리 생각해 둔 아기 이름이 있다고 했다. 출산으로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이상하리만치 생기가 돌았다. 눈도 그 어느 때보다 빛났다.

“뭔데?”
“제이미.”
“외국 이름 같지 않니?”
“재임. 재임이라고.”
여자는 검지를 이용해 이름을 쓰며 아이를 각인시켰다.

“조금 촌스러운데? 남자 이름치고는 좀 여성적이고.”
“여자아이였어도 재임이라고 했을 거야. 남자 여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중성적인 이름이거든. 부를 때는 영민이 말대로 외국 아이 이름 같기도 하고.”
“미아는 원래 혼혈아, 돌고래를 닮은 아이 영혼이 찾아오기를 늘 기다렸어.”

남자는 마치 알던 여자가 남의 아이를 낳은 자리를 축하하러 온 것처럼 말했다. 그런데… 돌고래를 닮은 아이의 영혼이란 건 어떻게 생겨 먹은 걸까. 자유분방한 성격을 그린 건지, 중성적인 성 구분을 뜻하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 한자 뜻은?”
“그건 생각해 보지 못했어….”
여자는 한자를 몰라 부끄럽다는 듯 살짝 말끝을 흐렸다.

“음… 심을 재(栽)자에 수풀 림(林)자는 어떨까. 나무를 심는 아이라는 뜻으로.”
남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금세 이름 뜻을 지어냈다.

“그거 괜찮다.”
“나쁘진 않네.”
여자는 괜찮다고, 나는 나쁘지 않다고 했지만 그만한 풀이는 없어 보였다. 어떤 나무일지가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출생 신고는 어떻게 할까?”
나도 모르게 또 툭, 말을 내뱉었다. 잠시 적막이 흘렀지만, 이번에도 남자가 교통정리에 나섰다.

“당연히 미아가 원하는 대로 해야지.”
“…….”
여자는 말없이 한동안 고민하더니 질문부터 했다.
“아빠가 있어야 한다는 거지? 호적에 올리려면….”
“그렇지….”
남자는 이미 다 조사한 듯 바로 대답했다.

“영민이가… 재임이 아빠… 해줄 수 있지?”
말을 꺼내다 말고 여자는 또 울음을 터뜨렸다. 남자 눈에도 눈물이 글썽였다.
“물론이지, 그렇게 할게. 아빠가 될 수 있는 영광을 허락해줘서 고마워.”
“두 사람 앞날에 축복을 빈다. 늘 행복하자.”
“고마워….”
대답하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의 눈 속에서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말할 수 없는 사연이 읽혔다.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그러나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다.”

실로 오랜만에 하는 강해다. 처음 집전하는 혼인성사이기도 했다. 이미 면직한 신분이지만, 두 사람의 혼인을 축하하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로 했다. 두 사람 또한 내게서 축복을 받고 싶다고 했다.

“세상에는 힘들지 않은 사람들이 없습니다. 하지만 힘들다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힘든 것, 그것과 달리 남을 사랑하기 때문에 힘든 것. 둘 다 사랑하기 때문에 힘든 것이지만 그 방향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하나는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지만, 다른 하나는 자신의 안전을 포기하고 자신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는 자신을 짓누르는 십자가를 내려놓는 것이지만, 다른 하나는 자신을 짓누르는 십자가를 견디는 것입니다. 하나의 끝에는 내가 준비한 옷이 있지만 다른 하나의 끝에는 영광스러운 부활의 옷, 예수님의 옷을 입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나중에 어떠한 옷을 입게 될까요. 내가 마련한 옷일까요, 아니면 오늘 복음에서처럼 하느님께서 영광스럽게 해 주시는 예수님의 부활의 옷일까요.
오늘 본문의 예수님께서는 결단의 기로에 놓여 있으셨습니다. 자신이 죽게 될 예루살렘에 올라갈지 말지, 눈앞에 직면한 십자가를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단해야 했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십자가를 포기하던지 내가 죽더라도 십자가를 받아들이든지 결정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힘들어질 것을 아시면서도, 수난을 당할 것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십자가를 선택하십니다. 그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거룩하게 변화시켜 주십니다.
내 맘대로 되지 않아서 힘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려니 힘듭니다.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살아 내려는 사람은 수난을 겪기 마련입니다. 내가 아닌 남을 사랑해야 하는데 어떻게 나를 먼저 선택하고 내 걱정부터 하고 내가 앉을 자리, 내가 누울 자리부터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 앞에서 내 뜻보다 하느님의 뜻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여전히 망설일지 모릅니다. 아니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십자가를 내려놓을지 모릅니다. 그것이 결국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 예수님께서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십니다. 영광스럽게 변화한 모습을 당신을 따르는 세 제자에게 보여주십니다. 하느님께서 함께하고 계심을 말입니다.
십자가는 사랑하기 위해서 죽음까지 받아들이는 결단입니다. 그 십자가를 선택하신 예수님을 가리켜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그 길은 분명 십자가의 길입니다. 하지만 십자가를 통해 우리 안에 계시는 사랑의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빛나는 부활의 길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엇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자아 포기를 모를 뿐만 아니라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차지하고 싶다면 결코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를 찾지 마라.’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는다고 믿는 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입니다. 그 구원은 이기심을 비롯한 나 자신으로부터 해방되고 자기 죄에서 벗어나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모성, 그 신적 사랑이 드러나는 곳입니다. 사람을 가리거나 이해관계에 따라서 움직이는 세상의 사랑이 아닌 무조건적이고 모든 것을 품는 신적인 사랑이 우리에게서 빛을 발할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많은 순간 십자가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통해서 서로에게 순종하고,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이뤄내길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사랑의 결핍 때문입니다.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화를 내고,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지고, 질투합니다. 사랑은 나 자신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받는 사람에게 일부나 어떤 소유가 아니라 자신을 온전히 주는 것입니다. 성부 하느님께서는 성자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그 모든 것, 성령을 주셨습니다.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사랑의 신비를 깨닫게 됩니다. 서로 주고받는 사랑, 이것이 삼위일체의 신비입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 내야 할 대상입니다. 사랑만이 구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해 인간이 되셔서 우리에게 오셔서 가르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아멘.”
“아멘.”

제주에 있는 오름 중 유일하게 사전에 예약해야 갈 수 있는 거문오름. 예약 시간에 맞춰 해설사와 함께 오르면서 오름의 신비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분화구 내 울창한 산림 지대가 검고 음산한 기운을 띤다고 해서 거문오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분화구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움푹한 모양이지만, 거문오름의 분화구는 한쪽이 뻥 뚫려 말발굽 형태를 하고 있다. 분화구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흘러 흘러 월정리까지 왔고 그 중간에 생성된 동굴들이 유네스코 자연유산인 용암동굴계다.

두 사람은 이곳을 혼인 장소로 결정했다. 제주도 내에 있는 다른 섬들인 우도와 비양도, 가파도, 마라도를 고민하다가 이제는 한곳에 정착할 필요가 있다고 남자가 제안했고, 여자는 함께 가려다 때를 놓쳐 못 갔던 거문오름을 생각해 냈다. 남자는 친분이 있는 도청과 제주관광공사 관계자들에게 연락해 이곳에서 혼인식을 하겠다고 밝혔고, 도와 공사 측은 흔쾌히 허락했다.

탐방객들에게 불편을 줄까 싶어 센터가 휴관하는 11일 화요일로 날을 잡았다.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건물 밖, 우거진 삼나무 군락지가 펼쳐진 거문오름 탐방길 입구에 마련된 혼인성사에는 우리 세 사람 그리고 재임이 외에는 아무도 초청하지 않았다. 아니, 초청할 가족도 없었다. 고아나 다름없던 남자 쪽은 물론이거니와 암이 재발한 여자 어머니도 결국 죽었기 때문이다. 우리를 찾아오기 전날이었다고 여자는 담담히 말했다. 여자 아버지만이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었는데 아내의 부고를 전한 아버지와도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혼인성사 내내 재임이를 안고 있어야 했던 남자는 개량한복을 새로 맞춰 입었다. 흔한 드레스 대신 4월의 신부답게 여자는 온갖 꽃들로 장식된 갈옷 드레스를 입었다. 꽃들은 남자가 가꾼 정원에서 난 것들이다. 목에는 보라색 조가비를 엮은 목걸이를 했다. 바다에서 죽어 묻힌 조가비만이 본래 색이 유지된다며 여자는 보라색 조가비를 무척이나 귀하게 여겼다. 부케는 여자가 특별히 주문한 유일한 혼수였다. 식을 하루 앞두고, 그것도 내게 조용히 부탁했다.

“프리지아.”
“응?”
“노란색 프리지아를 부케로 받고 싶어. 그것만 있으면 돼.”

천진난만, 순진함, 시작을 뜻하는 프리지어다. 여자는 프리지아라고 부르며 이제야 진정한 자유를 찾았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프리지어를 들고 남자와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에게 불행한 모습은 결코 찾을 수 없었다.

“신랑은 신부 이미아만을 사랑하고 감싸주는 일이 자기 십자가라는 것을 이제 인정합니까?”
“네, 인정합니다.”
“해가 지도록 열심히 수고해서 신부 이미아만을 호사 누리게 할 것입니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신부 이미아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따라야 하는 것, 잘 알지요?”
“네, 이미아 말을 잘 듣겠습니다.”

맹세를 듣는 증인도, 웃어주며 축하하는 하객도 없는, 유일한 혼인성사리라. 절실하고 소중한, 성례다. 아직도 피로연은 하루 반나절을 할 만큼 제주도의 결혼 문화에는 전통적인 자취가 남았지만, 우리는 결국 또 어딘가로 떠날 사람들 아니겠는가.

“신부 이미아는 신랑 이영민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이제 인정합니까?”
“네, 인정합니다.”
“믿음과 소망, 사랑 가운데 사랑이 제일인 것을 믿습니까?”
“네, 이제 제가 믿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성심을 다해 신랑 이영민을 사랑하겠습니까?”
“네,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이제 한몸이 된 두 사람은 하느님 앞에 거룩하고 순결한 부부로 살아갈 것을 맹세했습니다. 오랜 시간 엇갈리고 힘들었지만,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을 뿐입니다. 이로써 신랑 이영민과 신부 이미아는 유일하고 다른 무엇으로도 영원히 풀 수 없는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두 사람을 영원히 축복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부부가 된 두 사람은 이제야 동시에, 애틋하게 대답했다.

by 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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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여자가 대통령이다’는 여성을 대표할 수 없는 한 여자의 유령이 한 나라를 집어삼킨 현재, 이 시대를 살아 내는 한 민초 여자와 동갑내기 신부 박용성, 경마 기자 이영민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재소설입니다. 작가는 “간통죄가 합헌이어도, 여자는 위헌”이라며, “우리를 대표한다는 대통령에게, 우릴 창조한 신에게만 유죄라고 통보한다”고 집필 이유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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