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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대통령이다] #28 ‘더는 은총을 베풀지 않고 내버려둔 심리는 뭐지?’

이용준
  • 입력 2017.07.13 00:00
  • 수정 2020.07.1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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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저 여자를 보라고. 왜 여자에게 은총을 베풀지 않지? 그만 잊어버린 건가? 외롭고 아무것도 모르는,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여자아이가 영혼을 팔도록 내버려둔 건 무슨 섭리지?

‘인간은 당신처럼 전지전능하지 않아. 그래서 실수할 수밖에 없고 아플 수밖에 없다고. 저 여자를 봐. 이혼했어도 곧 털어 내고 자기 자유와 즐거움을 찾아 씩씩하게 진군하는 것 같지? 진실로 진실로 여자의 아픔을 체휼하고 있는가? 타고난 편력에 상처까지 더해져 자기 착취를 일삼는, 그 즐거운 고통을 알기나 하는가? 당신은 너무 오래된 구식인이라서, 텔레비전도 비행기도 없던 시절에 나귀 따위나 탔던 인물이라서, 60억 인구로 그득그득한 이 세대를 살아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 결코 알 수 없을 거야.

내가 현실을 가르쳐 줄까? 선한 행동보다 악의 기준이 명확해진 시대야. 선보다 악이 상식이고 일상이 된 시대라고. 관용과 다양성, 자유의 이름으로 무고한 사람도 모자라 가족과 자기를 착취하는 짓거리가 일상이 된 시대기도 해. 자기 인생만이 중요해 혼자 사는 게 유행인 시대지. 하긴 당신도 어미를 향해 몹쓸 말을 했었지? ‘여자여,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했던가? 가족에게 불화를 주려는 이유가 당신만을 온전히 찬양하기 위한 것이라고? 원수의 어린아이들을 붙잡아 바위에 내리치면 복이 있다고? 그래서 전처와 아이를 죽인 남자, 내연남과 모의해 전남편을 죽이고 보험금을 타낸 여자가 흔해 빠진 시대가 된 건가? 외동딸을 겁탈하도록 남편을 방관하고 모의한 여자가 엄마라니!

당신이 그토록 경계했던 간음은 재미난 놀이로, 당신의 종들은 타락한 시대의 앞잡이이자 표본 죄인으로 전락했어. 여론은 이웃을 사형하라고 판단하고 요구하면서 개인은 은밀한 죄를 범한다. 규범과 도덕, 양심의 파괴는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벌금과 구류, 온갖 법적 제재가 무서워 도망치는 인간들이 피해자를 자처하기에 이르렀다. 아내를 때린 남자도 피해자고 돈을 뜯고 다니는 여자들도 피해자가 됐다. 가해자가 피해자이기도 한 이 시대에 각자의 아픔과 상처보다 더 꼬여 있는 건 구속당하기 싫으면서도 영원을 살고 싶은, 지옥불에는 들어가기 싫은 우리의 본성적 자아라는 게 내 결론이야.

왜 우리는 항상 나쁜 쪽으로, 타락하는 일에 대해서, 하강하고자 하는 의지에 대해서만 두려움을 못 느끼게 된 걸까. 되려 재미와 호기심만 이는 걸까? 선한 일, 자기 발전, 아이를 낳고 가족과 함께 사는 삶, 더 나은 직장을 구하고자 공부하는 일 그리고 천국을 향한 소망에 대해서는 두려움만이 남아 시도조차 안 하게 된 걸까? 타자의 행위가 죄냐 아니냐를 따지지도 못하기에 우리는 사랑할 방법도, 용서의 길도, 평화도 잃었다. 나르시시즘의 종착이기도 한 근본적 두려움 때문이지. 감히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어? 누구도 스스로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일부러 사고하지 않으면서 인간성을 포기하고 예비된 범죄를 자행한 뒤, 참회는커녕 후회조차 않는 집단 망각의 시대라고!

그래,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회전목마를 타고 똑같은 짓거리들을 반복하는 것뿐이었으니까. 인정한다. 잘못을 계속하기 때문에, 어둠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 짓거리를 반복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자신을 정죄한다는 것, 인정한다. 그런데… 우리가 배교했기 때문인가? 우리에게 자유의지라는 게 정말 있는가? 더 솔직해져 봐.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더는 은총을 베풀지 않고 방종하도록 내버려둔 심리는 뭐지? 고리타분한 시대에 태어나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했기에 오늘날 우리 인간들을 저주하려는 치졸한 음모는 아닌가? 데이트 폭력, 언어폭력의 시초는 바로 독단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당신 아니던가?

나는 당신에게 돌을 던지고 싶어. 우리가 아무리 타락했어도 당신 손아귀, 그 섭리 안에 있다면 우리 자유의지쯤은 무시하고 은총을 베풀고, 사랑해야 하는 거 아니야? 오늘날, 성숙하고 겸손하다는 그리스도인들조차 당신에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정죄밖에 남지 않았어. 당신도 스스로 정죄해야 해. 자식이 잘못된 건 모두 애비 탓이거든. 스토커도, 애정 결핍도 아니면서 끊임없이 반복해서 인류를 사랑한다고 속인 위선, 그 죄를 저지르지 않았는가. 당신을 찬양하기 바빴던 천사들을 두고도 우리 인간을 창조한 건 마음의 간음 아니던가?

오늘날 이 위대한 민족, 당신이 축복해서 경제 대국을 이뤄냈다고 믿는 이 대단한 민족, 당신의 아들을 저버린 유대 민족 다음으로 똑똑하고 수에 밝다는 이 민족 구성원들은 이제 세계화된 덕분에 당신이 아닌 다른 대상에서 행복을 찾고 있어. 돈, 권력, 섹스? 관계, 여행, 수양? 아니, 모두가 추구하는 방향은 다르지만, 결국엔 대단한 신적 존재를 찾고 있는 거야. 이 민족은 너무나 영악해서 젖과 꿀을 흘러넘치게 하는 그 행복이 신에게서 온다는 믿음 자체는 건국 때부터 지켜왔으니까. 오늘날 우리가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집단으로 강박하는 이유의 역설이지.

그 신은 당신처럼 문자나 음성으로 뇌까리거나 꿈 따위에서 계시하면서 학자연하는, 형이상학적 존재가 아닌 위대한 정신이야. 우울과 공허함, 뚫린 입과 아랫도리를 그때그때 즉시 채워주는 현존이기도 하지. 나를 유치한 자연신학자나 이신론자로 치부하지 마. 아빠의 부재를 말하는 게 아니야. 집을 비운 가장 따위 때문에 자식들이 타락했다고 넋두리하지도 않아. 위대한 정신을 믿기에 나는 기적도, 계시도 믿어. 당신의 존재도 아직 부정하진 않겠어. 애새끼들이 있다면 그것들을 싸지른 무책임한 놈이 있는 것은 진리니까. 당신이 불완전하다면 전지전능한 무언가를 반드시 만들어 내야 한다는 입장에 동의할 뿐이야. 오늘날 그 경계가 어그러지고 뒤죽박죽됐지만, 어쨌든 선과 악은 공존해야만 해. 그래서 당신도 ‘악’을 지켜보고, 현세 인류가 저절로 지옥불로 뛰어들도록 내버려두는 것 아닌가?

무엇이 진짜인지 알곡을 가려내려는 그 얄팍한 속셈 때문이겠지. 추수하기 좋은 가을 어느 날, 장차 예비된 풍성한 먹을거리와 안락한 잠자리, 공동체를 이룬 가족, 재능을 실현해 행복을 주겠다는 그 입바른 소리만 내세우면서 말이지.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건 풀칠이고 머리 뉘일 곳,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고까옷 하나 사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라고. 완전한 체휼을 하겠다느니, 십자가에 기투해 우리 마음과 영혼을 알고 있다느니, 우리를 창조한 주인이라느니 하는 헛된 망상 따위는 와 닿지 않아. 형이상학이든 체휼이든 기투든 십자가든 받아들일 수 없다고. 아니 이해조차 할 수 없다고. 우리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한 당신이 문제 아닌가? 우리더러 동굴 밖으로 나오라고 한 당신이 정말 신이란 말인가? 그러니 경제 활성화이니 복지니 세계화니 하는 가짜 가치들에 의미를 부여하고는 희망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거지. 전부 당신 때문이야. 인류를 축복하고 은총을 줘야 할 의무를 버렸기에 여자를 믿고 위정자에게 굽실대다가 착취당한 사실을 깨닫고는 우리끼리 난도질하는 거잖아.

이혼이 상식화되면서 오늘날 여성성은 불평등 조건이 아니라 무기가 됐다. 어리석고 답답하고 보수적인 남자가 여전히 존재한 탓이다. 이 모든 혐오와 비난에도 왜 남자는 여자를 사랑해야 하는지, 주인공이 되도록 조력해야 하는지 설득하고 싶은가? 조롱받고 멸시받고 비웃음당해도 왜 더 큰 사랑을 해야 하는지, 여자들은 왜 그런 사랑을 원하는지 설명하고 싶은가? 정신병을 앓는 여자들, 전통적인 우울증에 시달리는 여자들도 이제 스스로 설 줄 알아야 한다. 교회 밖 과부를 돌봐야 한다는 지상명령은 당신이나 지켜야지.

이제 더는 속지 않아. 당신 하나가 궁극적인 행복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인간의 특수한 성향이라는 건 무시해도 좋은 건가? 우리는 대표자를 뽑아놓고도 이즘에 빠져 서로에게 칼부림하고 대표자를 버리는 막장 세태야. 현실 직시는커녕 당면한 문제를 자유의 이름으로 회피하는 우리는 진실로 목적이 있는 자유인이라고. 혼자 있을 때 행복하다고 착각하고 자위하는 인간들, 실제 그렇게 느끼는 인간들, 정통과 고전이 고리타분한 다른 세대의 풍습이라고 여기는 인간들인데 당신은 왜 태초부터 지금까지 피조물들을 괴롭히는 거지? 그러다가 부모가 죽거나 아이를 가슴에 묻으면 철이 들려나 하고 고통을 주는 건가? 고통이 선물이라고? 당신이란 존재는 헤아릴 수도, 감히 우리 머리로는 이해 못 하는 신비라고 해놓고 사랑할 것을 요구하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

다시 한 번, 저 여자를 보라고. 왜 여자에게 은총을 베풀지 않지? 그만 잊어버린 건가? 외롭고 아무것도 모르는,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여자아이가 영혼을 팔도록 내버려둔 건 무슨 섭리지? 피아노를 곧잘 친 소녀, 남학생이 키스하려 들자 울며 도망친 여고생, 목사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처녀, 일부러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어울려 일하기를 선택한 사회 초년생, 자길 버리고 도망친 아버지가 그리워 온갖 남자들 품에 안겨 외로움을 달래다가도 울고 회개하며 교회와 성당을 찾았던 여자, 그런 여자라고! 당신이 그 위대한 신적 존재라고 믿고 싶어서 서른일곱 평생을 살며 당신을 기억하고자 했던 여자, 구원을 구걸하면서까지 항상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여자라고!

오늘날 어떤 여자든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이는 건, 남자가 끝이라면 끝나는 줄 알고 순응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당신도 끝이라고, 우리 너저분한 것들과는 이별이라고 통보라도 해야 예의 아닌가? 혼자 고민하고 침묵하니 답답한 건 우리 인간들이라고. 그게 가장 큰 고통이라고!

피조물들과 썸 타는 것도 아니고, 매일 새로운 영혼들 수만 개가 생겨나는데 그렇다고 바쁜 것도 아닐 테고. 그저 질린 건가? 돼지에게 진주 목걸이를 던지지 않겠다는 거겠지. 그래서 침묵하는 건가? 역사상 그 위대한 수백의 지성들이 그토록 싸지른 비난은 당신에겐 그저 투정으로 비쳤던 건가? 새로울 게 없어서 이 세태를 최악으로, 죄가 넘치고 선악의 구분은 사라지도록 몰아내친 건 아닌가? 자기반성은 당신부터 해야 하지 않겠는가!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은 적 없는 당신은 그저 질투만 하는 사디스트일 뿐이잖아. 그도 아니면 정말 사랑 그 자체인 건가? 우리한테 미안해서 그런 건 아니고? 당신이 신이라서, 예지가 있어서, 우월해서가 아니라 인간 대 신적인 존재로서 미안해서, 그래서 십자가에 달린 거야. 우릴 창조한 게, 자기 욕심 차린 게 미안해서. 그런데 그 또한 자기 착취 아닌가? 그 동기는 존중해 주겠어. 나는 당신 같이 속화된 신 따위보다 더 고귀하니까. 인간 세상을 살아 내는 존재이니까.

‘나머지 수백만 명의 신의 창조물들은 그저 조롱받기 위해서 창조되었음을, 그들은 자신의 자유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 수도 없음을, 이런 애처로운 반역자들에게서는 절대로 탑을 완성시킬 거인이 나올 수 없음을…’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 (민음사, 2007), p.551.

당신을 건드리지 않고 어떻게 예술을 할 수 있고 구원을 찾을 수 있겠는가. 한번 태어난 이상, 우리는 자기 몸으로 할 수 있는 짓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질량보존의 법칙에 따라 흙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인간들이 최후의 발악으로 서슴없이 하고픈 대로 산다는 건 정당한 정의 아니겠는가.

눈이 밝아질 때면 누가 그리고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결과가 드러나겠지. 당신이 그토록 사랑한다는 저 인류가 결국 소수의 무리에 들지 못할 걸 알고 자기 착취를 더 일삼을 건지, 그래서 가해자가 피해자를 자처하게 된 이 혼란과 망각의 시대에서 알곡들이 얼마나 나올지 두고 보자고. 그래, 사실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것들은 경험하지 않아도 삶의 비밀, 지혜 그 세련되고 고급진 비밀을 알고 대처하고 당신을 빽 삼아 사는 것들이기에 재수 없는 족속들이잖아. 그 알곡들이라는 게 저 혼자서 지복을 누리고 세세토록 안녕할 수 있을지 지옥불에서 이를 갈고 피눈물을 흘리면서라도 지켜보겠어. 신적 존재와 인간, 여자와 남자, 구원받은 천사와 나락에 빠진 악마 그 불평등의 근원적 법칙이 뭔지 그리고 허영과 탐욕, 혐오와 모욕을 만들어 낸 원인이 과연 우리 죄 때문인지를 밝혀내겠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응급실 침대 한구석에 엎어져 잠들었다. 그런데… 여자가 사라졌다. 링거를 그냥 뺐는지 피가 묻은 바늘과 종이테이프가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시간을 보니 새벽 2시였다. 간호사를 불러 환자가 어디 갔는지 물었다. 보호자도 모르는데 바쁜 우리가 어떻게 아느냐는 표정이다. 여자를 찾으러 나가려고 하자 바쁘다는 와중에도 나를 붙잡았다. 결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둘러 계산하고 응급실 문밖으로 나섰다. 제주대학병원은 시내에서 떨어진 곳에 있어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섬사람들이라 웬만해서는 새벽에 응급실을 찾지 않는 걸까. 큰 도로로 나오기까지 약 500m, 택시를 잡을 때까지는 1.4km를 더 걸어야 했다.

일단 호텔로 다시 왔다. 로비 직원은 나를 알아보고 어떻게 될지 몰라 문단속을 철저히 했다며 카드키를 내밀었다. 여자가 왔었는지 묻자 병원에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방으로 들어오니 여자의 외투와 카메라 가방은 그대로였다. 짐을 챙겨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노형동 집으로 왔다. 해수 사우나를 제대로 했는지 남자는 깊게 잠들어 있었다.

카메라 가방과 외투를 옷장 안쪽에 숨겨야만 했다. 여자를 또 놓쳤다. 잠수 탄 여자를 이제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남자의 말처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새벽녘, 동이 트기 시작했다. 냉장고를 여니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와 곰보빵이 있다. 꺼내 마셨다. 냉장 보관이 됐으니 별문제 없을 것이다. 싱크대를 마주하고 우걱우걱 입으로 욱여넣었다. 슬펐다.

by 이준 -Copyrights ⓒ말산업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편집자 주
‘여자가 대통령이다’는 여성을 대표할 수 없는 한 여자의 유령이 한 나라를 집어삼킨 현재, 이 시대를 살아 내는 한 민초 여자와 동갑내기 신부 박용성, 경마 기자 이영민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재소설입니다. 작가는 “간통죄가 합헌이어도, 여자는 위헌”이라며, “우리를 대표한다는 대통령에게, 우릴 창조한 신에게만 유죄라고 통보한다”고 집필 이유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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