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성용원 음악통신 176] Critique: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2.01 10:10
  • 수정 2020.02.01 11: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The Bringer of Hope, 위풍당당 코리안심포니! 코로나 바이러스 따위는 우주의 먼 행성으로 날려버리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 들어서니 썰렁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평소보다 관람객이 적구나 여겼다. 화장실에 들러 다시 한번 손도 깨끗이 씻고 동행한 지인과 로비에 앉아 담소도 나누면서 여유를 즐겼다. 그런데 갑자기 모차르트 협주곡 플루트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뭔가 이상하긴 했다. 오늘 코리안심포니가 연주하는 슈트라우스의 '황제 왈츠'도 로비에 들렸었다. 그냥 홀 안의 배경음인가 여기고 무심코 지나쳤는데 '아차!', 오늘의 음악회가 7시 30분 시작이라는 걸 나 혼자 멋대로 8시로 착각한 것이다. 나름 음악회 분위기를 만끽한다고 시작 30분 전에 와서 유유자적하면서 소중한 연주를 놓친 것이다. 후다닥 중앙의 모니터로 달려갔다. 아쉽게 슈트라우스의 '황제 왈츠'는 놓쳤지만 한여진이 연주하는 플루트 협주곡은 홀 밖에서라도 감상해야 한다.

위풍당당 정치용과 코리암심포니 그리고 위너오페라합창단
위풍당당 정치용과 코리암심포니 그리고 위너오페라합창단

홀 안에서 집중하면서 경청하지 못하고 외부에서 미디어 기기를 통해 들은 연주를 명색이 음악평론가라는 사람이 판단할 순 없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안정적인 호흡과 진행이 인상적이어서 더욱 아쉬움만 컸을 뿐. 모차르트 3악장이 끝나고 부리나케 입장해서 앙코르라도 들을 수 있었던 건 천만다행이었다. 어떤 곡을 선택할지 궁금했는데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치오 중 24번이다. 악기를 위해 작곡된 원곡이 아닌 '이식'된 작품은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는다. 원래의 악기가 가진 메커니즘과 생리, 기능에 최적합하게 작곡된 곡을 유명세와 대중성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악기와 편성을 위해 편곡되고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체형의 두 사람에게 같은 청바지를 입힌다고 해서 원 주인이 입었을 때처럼의 핏(fit)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 거와 마찬가지다. 그런 곡으로는 연주자에 대한 평을 제대로 내리기 어렵다. 앙코르라도 플루트를 위한 곡을 한여진이 연주하였더라면 좀 더 그녀의 플루티스트로서의 가능성과 잠재력, 기량을 가늠할 수 있었을 텐데.... 한 번의 착각은 이렇게 일을 꼬이게 만든다.

​모니터로 감상한 라이징스타 한여진의 연주 모습​
​모니터로 감상한 라이징스타 한여진의 연주 모습​

2부 구스타프 홀스트 '혹성'은 미디어아트와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불이 꺼지면서 합창석을 스크린으로 하여 영상이 쏴졌다. 음악에 맞춘 스페이스, 혹성들의 시각적인 퍼포먼스였다. 홀스트의 '행성' 모음곡 자체가 스페이스 오디세이로서 SF 장르에 자주 쓰이며 영화음악으로도 제격인 곡이기 때문에 화면과의 콜라보는 조화로웠다. 다만 홀스트 곡 자체가 내용과 장면에 맞춘 기능으로서의 영화음악으로 작곡된 곡이 아니기 때문에 화면은 각각의 곡들이 상징하는 7개의 행성의 이미지와 해당되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과 묘사를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쳤다. 가끔 겉돌기도 하고 음악과 화면의 합이 일치하지도 않아 싱크 안 맞는 20세기 초반의 흑백영화를 보는 거 같기도 하였다. 관현악 모음곡이요 각각의 악장마다 뚜렷한 캐릭터가 있으니 곡의 시작과 함께 화면에 화성, 금성 식으로 제목을 표기했으면 이해에 더 도움이 되었을 거라 여긴다. 또한 미디어 아트 작가인 최종범의 이름도 기입이 되었으면 좋았을터. 화면을 쏜다고 객석까지 소등해 버린 상태라 프로그램 북을 읽기도 힘들었으니....

정치용의 지휘와 코리안심포니의 연주는 항상 그렇듯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특히나 5곡 '토성'에서의 정치용 특유의 시간을 망각하는 듯한 '무겁게 끌어가기'가 진짜 황혼을 부르는 자와 같은 순간이었다. 입체적인 드라마와 다각도적인 조형을 만드는데 정치용은 일가견이 있다. 그런 그의 특성은 7곡 '해왕성'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되어 구조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이 용이했고 여성합창의 등장으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신비로운 묘사가 정점을 이뤘다.

기립박수! 어렵고 힘든 여건일수록 음악이 더욱 더 필요하다. 음악은 희망과 전파자(Bringer)다.
기립박수! 어렵고 힘든 여건일수록 음악이 더욱 더 필요하다. 음악은 희망의 전파자(Bringer)다.

앙코르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은 타당성 있는 선곡이었다. 영국으로 계속 가는 거다. 신년음악회라는 기운을 북돋고 감정을 고양시키는데 적절하다. 메인 프로그램의 연장이라 여겨도 좋을 만큼 납득이 가고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으며 연이어 '라데츠키 행진곡'이 터져 나오니 객석은 그야말로 희망과 기쁨의 덩어리가 되었다. 그래! 바로 이래서 음악이 필요한 거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전전긍긍하고 의기소침해 있을 때 음악으로 희망과 긍정의 에너지를 전파하는 거다. 필자가 시간을 착각해 늦게 왔으면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관객들이 안 오면 어떻게 되지라는 우려을 비웃기라도 하듯 마스크를 쓰고 삼삼오오 일행들과 같이 음악을 즐기는 우리 국민들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위안과 안심이 되었다. 우리 국민들은 이렇게 위기를 맞았을 때 한데 뭉치고 협력하는 특유의 기질을 발휘해 코리안심포니와 하나가 되어 이 국란을 이겨내고 넘어가리. 라데츠키 행진곡에 맞춰 손뼉을 치면서 그 순간만큼은 걱정과 근심, 불안을 벗어나 흥겨워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더군다나 오늘의 코리안심포니 연주회는 신년음악회 아닌가. 코로나 바이러스 따위는 우주의 먼 행성으로 날려버리고 위풍당당 행진곡으로 격앙된 감정을 라데츠키 행진곡으로 신나게 즐겼다. 콘섭트 프로그래밍과 음악회 성사를 위해 노심초사한 준비에 박수를 보낸다. 이런 시국일수록 음악이 더욱더 필요하다. 영화 '타이타닉'의 마지막 장면에서 침몰되는 배에서 끝까지 연주하면서 마지막까지 희망과 안식을 선사하는 현악4중주단의 모습, 그게 바로 음악인의 사명이자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같은 단체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